입력 2023.04.05 09:35

<암이 예술을 만나면>

암으로 치료 받다 보면 매일매일 ‘컨디션이 어떻지?’ ‘열은 안 나나?’ 하면서 온통 아픈 몸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럴 때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면 정신을 암이 아닌 다른 곳에 분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말 시키지도 말라’던 70대 환자가 있었습니다. 온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던 분입니다. 저는 가방에서 부드럽고 쫀득한 점토를 꺼내 그 분 손에 쥐여드렸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손 안의 하얀 점토로 빤히 바라보더니, “이게 뭡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이런 순간을 정말 소중한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분이 ‘지금, 여기’ 내 손바닥의 감각을 깨우고 대화하기 시작하는 장면이거든요.

“요즘은 점토가 이렇게 나와요. 느낌이 어떤가요?” 하고 물었더니, “요즘 세상 참 좋네요. 쌀 반죽 같기도 하고 밀가루 반죽 같기도 하고….” 점토를 만지작만지작하셨습니다. 그제야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셨습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시집을 갔는데, 어쩜 그렇게 제사가 많은지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고요. 그래도 만두와 송편을 꽤나 예쁘게 빚었는데, 그때마다 시댁 식구들이 예쁜 딸을 낳겠노라며 좋아했다던 얘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김태은 교수가 만든 인형
김태은 교수가 만든 인형
때때로 어떤 미술재료는 그 부드러운 감촉 덕분에 두려운 투병 과정의 위로가 돼주기도 합니다. 암 진단 이후 이어지는 치료 과정은 낯선 공간, 언어, 기계,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환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불안해집니다. 위안을 가져다주는 감촉을 느끼면 감정이 환기됩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다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모유수유하면서 3년 간 건강검진을 쉬었던 환자분도 있습니다. 4년 만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을 진단 받고 충격을 받은 젊은 암환자였습니다. 아이를 두고 병원에서 치료 받느라 아이를 안을 때 느껴지던 통통한 아기 볼의 감촉, 엄마 가슴에 파묻는 아이의 머리카락과 내복에서 나던 향기, 목욕시키고 안아주면 까르르 웃던 아이의 웃음소리 등을 떠올리시며 무척 그리워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환자의 남편에게 얘기해 아기가 신생아 때 사용했던 손 싸개를 받아, 그 안에 솜을 넣어 인형처럼 만들어드렸습니다. 환자 분이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한 쪽 손에 그 손 싸개를 잡고 있도록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내던 시간이 떠오른다며 큰 위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건강히 다닐 수 있도록 치료를 잘 마치겠다고 다짐도 하셨습니다.

사진은 저희 아들이 등교 불안이 심했던 때, 아이가 신생아 시절 입던 내복을 이용해 만들어 학교에 갈 때 쥐어준 인형입니다. 이 방법을 환자들에게 적용해, 자녀의 손 싸개로 인형을 만들어주곤 했습니다.

아픈 것에만 집중하고 계시진 않나요? 창밖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날의 꽃에, 나의 침상에 펼쳐진 이불과 베개의 감촉에, 좋아하는 빵집을 지날 때 나는 버터 향기와 커피 향기에, 휴대폰 버튼을 누르면 재생되는 좋아하는 음악에 잠시 감각을 맡겨보세요.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치료 때문에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어도, 지금 이 순간에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최대한 누리길 바랍니다. 오감을 깨워서 여러분의 오늘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 보세요. 오늘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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