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나를 살린 암, 가족을 살린 암”

입력 2023.03.14 08:50

<아미랑 인터뷰>

  대장암 3기를 이겨낸 정우창(45·경남 김해시)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장암을 진단받았지만, 간경화 투병 중인 아내를 생각하며 끝까지 암과의 싸움을 견뎠습니다. 정우창씨의 주치의인 삼성서울병원 대장항문외과 박윤아 교수도 함께 만나고 왔습니다.

정우창씨와 그의 주치의인 삼성서울병원 대장항문외과 박윤아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정우창씨와 그의 주치의인 삼성서울병원 대장항문외과 박윤아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하루라도 빨리 건강해지자’ 생각
정우창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15년 2월입니다. 평소 반주(飯酒)를 즐기던 정씨는 위가 상했을까 걱정돼 위 내시경을 받는 김에 대장 내시경도 함께 받았습니다. 위는 문제가 없었지만, 대장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습니다. 대장암 3기였습니다. 5cm 크기의 종양이 있었고 임파선 전이가 돼 있었습니다. 암을 진단 받는 순간 ‘왜 하필 나인가’라는 원망도 잠시, ‘간경화로 고생하는 아내와 10살 아들을 두고 죽을 순 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건강해져야 했습니다. 두려움이나 좌절감을 느낄 새도 없이 빨리 암을 받아들이고 치료에 임했습니다.

대장을 14cm 잘라내는 복강경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정씨는 다시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재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옥살리플라틴 주사약과 캡사이타빈 경구 항암제를 병행하는 보존 항암 치료도 진행했습니다. 3주 단위로 8번 투여했는데, 항암제 부작용으로 잇몸 출혈과 식욕 저하를 심하게 겪었습니다. 그래도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습니다. 정씨는 “나를 살린 건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고 말합니다. 2020년 2월, 정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시간
정우창씨가 대장암과 싸우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홀로 병원을 오가는 것이었습니다. 암을 처음 진단받을 때부터 수술, 항암 치료를 포함한 모든 투병 과정 동안 정씨는 혼자 경남과 서울을 오갔습니다. 치료가 예정돼 있는 날엔 오전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와, 또다시 기차와 버스를 타야만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두 시간 가량의 항암 치료가 끝나면 다시 네 시간 동안 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을 훔친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씨 주치의인 박윤아 교수가 큰 힘이 돼줬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박 교수의 얼굴에는 늘 밝은 에너지가 넘쳤고, “결과가 좋다”며 따뜻하게 웃어주는 주치의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씨처럼 지방에서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박 교수는 오랜 시간 걸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자’고 늘 다짐한다고 합니다. 최대한 긴 시간 동안 환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려 노력 중이기도 합니다.

당시 정우창씨의 아내가 간경화를 앓고 있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병원까지 동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아내 역시 마음으로나마 함께 있다고 느껴지도록 노력해주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아내는 항상 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습니다. “사랑해” “힘내자” “고마워” “건강하자”라고 주고받은 말들이 정씨가 힘을 내도록 도왔습니다. 정씨는 “아내도 아파서 힘들 텐데,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며 “아내가 없었다면 암 투병을 끝까지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간암
정씨가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던 해인 2020년,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아내에게 간암이 생긴 것입니다. 정씨가 대장암 진단을 받기 전, 정씨 아내는 17년째 간경화증을 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간 기능의 저하로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함을 쉽게 느끼며 코끼리처럼 다리가 퉁퉁 부어 보행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아내를 위해 정씨는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살았습니다. 해마다 서울까지 차로 다섯 시간을 운전하며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다녔고, 평소 아들의 숙제를 챙기는 것도 정씨의 몫이었습니다.

남편의 대장암 진단 후 심적으로 힘들었던 때문일까요. 정씨가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은 후부터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간경화증이 심해지면서 위 식도염 합병증으로 간암이 발견됐습니다. 다행히 암은 초기 단계여서 간암 색전술을 시행했지만, 진척이 없었습니다. 간 이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소식을 들은 박윤아 교수가 정씨게에 간 공여를 제안했습니다. 정씨는 자신이 암 환자였기에 간 이식이 불가할 것이라 생각해 좌절하고 있던 참이라, 박 교수의 말이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고 합니다.

완치 판정 후에도 건강관리를 열심히 한 덕분에, 정우창씨는 체중 감량이나 추가적인 관리 없이 곧바로 간 공여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박윤아 교수는 “지방이 하나도 없는 정씨의 건강한 간 상태에 놀랐다”고 말합니다. 암 진단 후부터 술과 담배를 끊으며 매일 한 시간씩 조깅하고 근력 운동을 한 것이 정씨의 건강 비결입니다. 먹는 것은 가리지 않되 간을 약하게 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해왔습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생선도 매일 먹었다고 합니다. 정씨는 “만약 내가 암에 걸리지 않고 이전처럼 생활했었다면 아내에게 간을 공여할 엄두도 못 냈을 만큼 간이 엉망이었을 것”이라며 “암이 우리 가족을 모두 살린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정씨의 아내는 정씨가 아닌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습니다. 개복해보니 아내의 간 손상 정도가 심해서 간 일부만이 아닌 혈관까지 이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수술을 제때 받을 수 있었고 경과가 좋았습니다. 정씨와 아내 모두 현재는 건강한 상태입니다.

<정우창씨>
정우창씨
정우창씨
-암 진단 전후로 생활이 많이 바뀌었나요?
“암을 진단받기 전까지는 친구, 술, 담배를 좋아하던 건강에 무관심한 40대였습니다. 1주일에 네다섯 번은 거나하게 취하는 애주가였고, 15년갑(15년간 매일 한 갑) 흡연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장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저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마음가짐도요. 이제는 건강과 가족이 제 최우선순위가 됐습니다.”

-가족에 대한 생각도 변하셨다고?
“암을 진단받기 전에는 ‘자신감’보다는 ‘책임감’으로 인생을 살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아내와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사는 그저 평범한 가장이었죠. 항암 치료와 수술로 암을 이겨내고 보니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비로소 생겼습니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도와준 우리 가족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고요. 이런 가족을 뒀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또, 내 가족을 위해 하지 못할 일은 이 세상에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 신경 쓴 것이 있다면?
“제가 암에 걸리기 전에도 아내의 건강을 생각해 건강한 한식 위주로 먹었습니다. 특히 생선과 채소를 좋아하는 경상남도 식단이었지요. 암에 걸린 후로는 먹는 것의 중요성을 더 알게 됐습니다. 잘 먹어야 체력이 돌고, 그래야 치료를 이겨내 완치의 길로 빨리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처럼 먹되, 채소를 더 다양하게 먹고 간은 약하게 했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그냥 무작정 먹었습니다. 센 불에 음식을 익히면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생선을 먹을 땐 좋아하던 직화 구이를 포기하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습니다. 하루하루 잘 챙겨 먹은 음식들이 저희 가족의 자양분이 돼서 완치의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지금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한 마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길 바랍니다. 암 투병이라는 것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 가지만 잘 한다고 해서 완치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나와 암과의 싸움입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자신을 믿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주치의인 박 교수님을 제 ‘싸움 코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든든한 백이 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나요? 코치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실천하세요. 여러분도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박윤아 삼성서울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박윤아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박윤아 교수./사진=신지호 기자
-오늘이 정우창씨의 마지막 내원일이라고?
“지난 2월 10일, 정우창씨에게 완치 판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환자들 중에서 재발·전이 위험이 높은 3, 4기에 해당하는 분들은 5년만 진료하지 않고, 그보다 더 오래 총 8년 동안 추적 검사를 합니다. 그 8년째 되는 날이 2월이었습니다. 정씨는 암 수술 후 지금까지 재발이나 전이 없이 아주 건강한 상태입니다.

치료 후 정기적인 검사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전이가 생기더라도 조기 발견만 하면 완치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정씨는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빼먹지 않고 매년 오셨고, 규칙적인 생활도 유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더 이상은 보지 말자’는 농담도 했습니다.”

-대장암 수술 외에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고?
“국내 대장암 치료 성적은 아주 좋습니다. 지난 20년간 대장암 5년 생존율은 25% 향상돼 현재 75~80%입니다. 향상된 생존율로 오래 사는 만큼, 삶의 질도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환자들의 배변 기능을 면밀히 살피고 이에 대한 환자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어 해소해주려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하는 편입니다. 암 재활센터 배변 관리 클리닉 통해 배변 횟수를 조절해주는 약과 배변 활동에 도움 되는 운동법도 가르쳐드립니다. 여러분도 암 치료뿐 아니라 삶의 질도 잘 관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우창씨처럼 30대에 걸리는 대장암, 대책은?
“젊은 대장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대장암 검진을 받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젊은 대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평소와 변의 상태가 달라진 경우라면 20~30대라고 해도 대장암을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젊은 대장암 위험 요소는 염증성 장질환입니다. 염증성 장질환은 주로 10~20대에 잘 생기는데, 이미 장에 염증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장암이 발생할 위험이 높습니다. 이런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장암 의심 증상이 없어도 40세부터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기를 권합니다. 가족 중 30대에 대장암 생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암이 생긴 나이보다 5년 먼저 검진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하면, 검진을 잘 받으시라는 얘기입니다.”

-투병 중이신 대장암 환자분들께 한 마디.

“대장암 중 직장암에 걸린 경우, 치료가 어려워서 환자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정씨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주치의와 많은 것을 상의하고 공유하시다 보면 환자에게 맞는 치료를 찾게 될 겁니다. 대장암 완치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국내 모든 의료진이 대장암 환자 곁에서 의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암에 걸리시지 않은 분들도 미리 겁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예후가 아주 좋습니다. 혈변, 변비 증상이 있을 때 단순히 ‘치질 때문일 거야’라고 혼자 생각하시지 말고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꼭 한 번쯤은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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