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과 신장암을 겪고 유전성 희귀질환까지 진단 받은 유정미(47·경기도 가평)씨의 투병기를 전해드립니다. 이곳저곳 성한 데가 없는 몸과 마음 상태였지만 끊임없이 노력해, 현재는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그의 주치의인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석훈 교수도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유정미씨(오른쪽)와 그의 주치의인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석훈 교수./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유방암 치료 탓에 빨리 겪게 된 갱년기 증상 2016년 2월, 유정미씨는 국가 암 검진을 통해 유방암을 진단받았습니다.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없는 호르몬양성 유방암 2기였습니다. 폐경 전 발병한 유방암은 폐경 후 발병한 유방암보다 전이나 재발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유방암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수치를 낮춰 유방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데요. 2016년 4월, 수술을 통해 2.4cm의 종양을 전부 제거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배 양쪽에 난소 기능 억제제(졸라덱스)를 맞았습니다. 이때부터 항 호르몬제(타목시펜) 치료를 시작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복용하고 있습니다. 타목시펜은 유방에서 여성호르몬이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치료제입니다. 수술 상처가 아문 5월 중순부터는 6주간 방사선 치료를 총 29회 받기도 했습니다.
호르몬억제 치료 탓에 여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져, 젊은 나이에 갱년기 증상을 겪었습니다. 손가락 관절통이 심해서 아침마다 아픈 손가락을 주무르기 바빴습니다. 체온 조절이 안 돼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재채기를 달고 살기도 했고요. 유씨는 연축성발성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호르몬치료로 이 질환까지 악화돼 힘들었습니다. 연축성발성장애란 후두 근육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축하는 질환입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호흡근육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밥을 먹다가 목이 경직돼 음식물이 목에 걸려 질식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숨을 쉬기도 말하기도 너무 힘들어 ‘정신 안 차리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도 있습니다. 유방암 치료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치료를 포기하면 언젠가 더 힘든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고통을 견뎠습니다.
‘암 스트레스 클리닉’ 도움으로 감정 다스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되자,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져 주위의 위로나 격려의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 판단해 서울아산병원 암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아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상담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 등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았는데요. 8개월 뒤인 2018년 12월, 주치의가 바뀌어 정석훈 교수를 만나게 됐습니다. 정 교수는 사소한 일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고 유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덕분에 불안한 마음을 덜고 암 치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처방받은 신경안정제(이펙사, 디아제팜)를 꾸준히 복용하니 널뛰던 감정도 점차 안정됐습니다. 처음에는 감정기복 조절을 위해 시작하게 된 클리닉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암 투병 중 생기는 여러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정 교수의 격려와 조언 덕분에 암 치료 후 빠르게 회복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 한 번의 암 선고 하늘도 무심했습니다. 2019년 5월, 정기검진에서 신장에 2cm 크기의 혹이 발견됐습니다. ‘왠지 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준비를 하며 결과를 기다렸고 신장암 1기였습니다. 그렇게 유방암이 채 완치되기 전인 2019년 9월, 신장암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덕분인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로봇수술로 신장 왼쪽 일부를 절제했습니다. 신장암은 1기나 2기에 조기 진단되면 대부분 부분절제술만으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5년 생존율 또한 90% 이상으로 다른 암 종에 비해 높습니다. 유씨는 신장 수술 당시, 마취에서 깨어난 뒤 고통이 너무 커서 다시는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신장 수술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유방암도 아직 의학적 완치 상태가 아니라 치료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난소 기능 억제제(루프린)를 6개월 간격으로 2년간 꾸준히 맞았습니다.
‘20만분의 1’ 희귀질환 발견 그렇게 암 투병을 이어가던 2020년 여름, 유씨는 유전성 희귀질환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 병을 발견한 건 SNS 덕분이었습니다. 유씨는 SNS에 투병 일기를 올리는 중이었는데요. 유방암과 신장암을 동시에 앓는다는 글을 읽은 한 환우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카우덴증후군인 것 같다’고요.
카우덴증후군 즉, PTEN 과오종 종양 증후군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유방암, 갑상선암, 자궁내막암 등의 위험이 정상인보다 높은 질환을 말합니다. 이 증후군은 상염색체 우성질환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진단됩니다. PTEN 유전자 변이가 부모를 통해 유전되거나, 가족력이 없어도 해당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 발생합니다. 20대 후반부터 피부, 위, 장의 점막에 작은 덩어리들이 생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외에 뇌의 부피가 커져 생기는 대두증이나 발달장애, 인지장애, 자폐증 등 증상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카우덴증후군 가족력이 있거나 이미 이 유전질환이 진단된 경우, 암 선별검사가 자주 권고됩니다. 여성의 경우 18세부터 유방 자가 검진을, 25세부터 매 6~12개월마다 유방검진을, 30~35세부터는 매년 유방단층촬영과 자기공명영상촬영을 하는 게 좋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초음파나 조직검사를 통한 자궁내막암 검진도 시작해야 합니다. 남성의 경우 18세부터 매년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35세부터 5년마다 대장내시경을, 40세부터는 1~2년마다 신장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18세 이하 소아청소년은 매년 갑상선 초음파 검사와 피부 검진, 신경발달학적 평가를 통한 꾸준한 추적관찰이 필요합니다.
유씨의 유전자 검사 결과, PTEN 과오종 종양 증후군이 맞았습니다. 유병률이 20만 명 중 한 명 꼴로 매우 희귀한 질환이라서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게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겼던 이유를 찾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암 고위험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재발 위험을 높이지 않으려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몸 관리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일상에서 삶의 의미 찾아 유씨가 육체적·정신적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씨는 암 진단 전부터 가평노인복지관에서 파견강사로 근무하며 스마트폰, 키오스크 활용 등 노인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을 처음 접하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고 말동무도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영상 편집 강의를 진행했을 때는 그분들이 영상을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꼈고, 그 덕분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족만큼 가까워진 어르신들은 유씨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반대로 유씨를 응원해주고 암 투병에 큰 힘이 돼주고 계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방암 진단 후 7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재발이나 전이 소견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신장암은 2019년 9월 로봇절제술을 끝으로 추가 치료 없이 매우 이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정미씨, 정석훈 교수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유정미씨>
유정미씨./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신장암 수술 후 바로 복귀하셨다고요? “네. 수술 후 2주 정도만 쉬고 바로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암을 진단받기 이전과 다름없이 내 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성취감이 좋았습니다. 암 환자는 투병 때문에 일로 복귀하는 게 어렵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제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 자체만으로 어색해하기도 하고, 당신들이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활용법을 모른다는 사실에 되게 미안해하셨어요. 친숙하지 않은 디지털기기 이용법을 모르는 건 그 분들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강의 때마다 긴장을 풀어드리려고 노력했더니 점점 마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손녀처럼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큰 위로가 됐습니다.”
-‘암 스트레스 클리닉’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고? “다른 그 어떤 치료보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암을 진단받고 나서 주변에서 해주는 위로의 말에 덜컥 화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희귀질환 투병 사실을 알고 나면 저를 유난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시선도 힘들었고요. 제가 아픈 게 마치 제 잘못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달랠 곳이 필요해 절박한 심정으로 암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았습니다. 너무나 잘 한 선택이었어요. 한 번 말문이 트인 이후부터는 이상하게 다른 누구보다도 정석훈 교수님께 제 마음을 털어놓는 게 편해졌습니다. 어떻게 지냈냐는 교수님의 안부인사가 이 세상 수많은 위로의 말보다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간 쌓인 마음의 짐이 다 풀어지는 듯했습니다.”
-정석훈 교수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정 교수님은 환자의 마음을 너무 잘 공감해 주셔서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열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있으십니다. 유방암, 신장암, 담낭염, 갑상선 결절 등 여러 질환을 겪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여러 의사를 만났습니다. 제가 만난 의사들 중 정석훈 교수님은 단연 명의이십니다. 제게 일어난 좋은 일은 본인 일처럼 기뻐해주셨고, 고충이 있을 때는 제 이야기를 더 주의 깊게 귀 기울여 주셨습니다. 든든한 지원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암 치료에 더 열심히 임할 수 있었습니다. 병이 제 잘못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걸 매번 확인시켜주셨습니다. 너무나도 고마운 분이십니다.”
-지금 투병 중이신 암 환자분들께 한 마디. “솔직한 제 심정은 유전성 희귀질환 판정을 받았을 때, 오히려 속이 후련했습니다. 암을 비롯해 제게 여러 질환이 생길 때 마다 대체 왜 그럴까 과거를 반추하며 원인을 찾기에 급급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PTEN 과오종 종양 증후군이 제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인터뷰에 응할 용기를 낸 것도 PTEN 과오종 종양 증후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PTEN 과오종 종양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암 진단 전과 후의 삶이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암을 경험해도 나는 나입니다.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분들은 건강검진을, 암 경험자 분들은 2차 암 검진을 철저히 받으셔서 건강을 잘 지키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암 환자의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한가요? “암 치료 과정에서는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고통도 동반됩니다. 이러한 고통을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하는데요. 흔히 불면, 불안, 우울 등의 증상을 겪습니다. 통증이나 식욕부진, 구역·구토, 피로 등의 신체반응도 함께 나타납니다. 생각보다 많은 암 환자들이 디스트레스를 겪습니다. 불면증은 당장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해 비교적 많이 치료받으러 오시지만, 불안, 우울감 등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여기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이 지속될 경우, 체내 염증 물질이 증가해 면역과 호르몬 기능이 저하됩니다. 따라서 암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암 환자의 삶의 질이 저하됩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겪는 디스트레스는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증상이 개선됩니다. 디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면 암 치료에 대한 반응도 좋아지고 결국 치료 예후를 긍정적으로 이끕니다. 우울증 치료 후 암 치료 순응도가 높아졌다는 등의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디스트레스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유정미씨처럼 적극적으로 돌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암 스트레스 클리닉’에서는 어떤 치료가 이뤄지나요? “클리닉을 방문하는 환자분들께 제가 공통적으로 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머릿속에 공포영화 틀어놓지 말라’입니다. 재발 걱정, 죽음 등 부정적인 생각은 몸을 갉아먹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릿속 공포영화를 끄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내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격려해주는 게 클리닉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환자의 상태에 맞는 적절한 약물 처방도 이뤄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코끼리만 계속 떠올라 한동안 부정적인 생각은 안 하게 될 겁니다.”
-유정미씨는 어떤 환자인가요? “유씨를 만난 지 어느덧 4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호르몬 치료로 인한 감정기복, 불면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셨는데요. 그러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암이며 유전질환이며 삶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잘 적응하셨습니다. 긍정적인 성향을 타고나신 분 같습니다. 암 치료를 잘 받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 것 역시 유씨의 긍정적인 마음가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좋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현재는 소량의 신경안정제 처방만 하고 있고, 암 스트레스 클리닉에서는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받으며 편안하게 보내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잘 지내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피곤하고 우울하다며 소파나 침대에서만 지냅니다. 우울함을 몰아내려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에너지를 써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취미활동 등 재미 요소를 찾아 활동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집안일이라도 하며 움직이세요. 몸을 움직이면 부정적인 생각이 전보다 훨씬 줄어드는 것을 느낄 겁니다. 가족들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가족들이 더 잘 알아주고 배려해 줄 수 있습니다. 표현을 할 때는 몰아붙이는 방식이 아닌 의사전달의 형태로 부드럽게 대화하세요.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금세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삶이 어렵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병원의 문을 두드리시길 바랍니다.”
✔ 외롭고 힘드시죠? 암 환자 지친 마음 달래는 힐링 편지부터, 극복한 이들의 노하우까지! 포털에서 '아미랑'을 검색하시면, 암 뉴스레터 무료로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