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회피하려 ‘뇌전증 발작’ 연기… 어떻게 진단하길래

입력 2022.12.28 18:03
배구선수 조재성
뇌전증 환자는 뇌 신경 교란이 불시에, 일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뇌파 검사로 뇌전증 환자를 100% 잡아낼 수 없다. 사진은 이번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된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조재성 선수/사진=연합뉴스
뇌전증 환자를 가장해 병역을 회피하는 수법을 쓴 일당들이 지난 26일 SBS를 통해 보도됐다.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조재성(27)이 이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된 가운데, 검찰은 배구를 제외한 다른 프로스포츠 종목의 선수들로 수사망을 넓힌 상태다. 뇌전증은 무엇이고 어떻게 진단되길래, 환자가 아닌 사람들도 뇌전증 환자로 둔갑한 것일까?

◇뇌 신경 회로 교란돼 ‘짧은 발작’ 일어나는 뇌전증

뇌전증은 뇌의 전기적 신경회로에 교란이 생기는 질환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신경 네트워크에 일종의 ‘합선’이 발생하는 것이다. 합선이 생기면 30초~1분 내외의 발작이 일어난다. 발작은 뇌전증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므로, 뇌전증으로 말미암은 발작인지 판별하는 게 중요하다. 보통은 피로나 건강 이상같이 발작을 유발할만한 요인이 마땅히 없는데도 발작이 일어날 때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이에 뇌전증으로 말미암은 발작을 ‘무유발 발작’이라 한다.

발작이 일어나는 양상은 환자마다 다르다. 우선, 신체 일부 또는 전신이 경련하거나 뻣뻣해질 수 있다. 발작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히 나타나는 때도 있다. 한국뇌전증협회 이사인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신동진 교수는 “고장 난 태엽인형처럼 계속해서 입을 쩝쩝거리거나 물컵을 만지작거리는 등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든지, 일상생활을 하던 도중에 1~2분씩 멍해지는 식으로 발작하기도 한다”며 “발작 중인 환자의 의식이 없을 때가 있고, 주변인들도 이것이 뇌전증 발작인지 몰라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성 탓에 뇌파 검사로 순간 포착 어려워

뇌전증 환자의 뇌에서 전기 신호 교란이 발생한다면, 뇌파 검사로 ‘진짜 환자’를 100% 가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뇌전증이란 질환의 특성 탓에 어렵다. 뇌전증 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합선’은 가끔, 불시에 일어나며 지속 시간도 짧다. 신체 일부가 떨리거나 몸이 경직되는 뇌전증 발작을 일으킨 적 있는 사람이라도, 뇌파 검사가 진행되는 바로 그 순간에는 신경회로에 교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상 증상이 일어나는 그 현장을 검사로 포착하기 어렵단 뜻이다.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부정맥 증상은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한 가지 검사로 확진되지 않는다. 다양한 검사를 여러 차례 수행해야 진단할 수 있다.

신동진 교수는 “뇌전증이 있어도 신경회로에 교란이 생기는 건 가끔이라 뇌파 검사로 그 순간을 잡아내기 어렵다”며 “그나마 검사를 여러 번 하면 포착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2~3번 검사하면 전체 뇌전증 환자의 60% 정도를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받은 환자 70%는 정상생활… 문제는 ‘편견’과 ‘악용’

뇌전증 치료약을 복용한 환자 70%는 발작이 일어나지 않는다. 약을 먹는다는 사실만 빼면 일반인과 다름없다. 약을 먹어도 발작이 사라지지 않는 환자에 한해 수술을 고려한다. 뇌의 신경 회로 교란이 일어나는 부분을 부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신동진 교수는 “뇌전증 약은 20가지 이상 출시돼있어, 환자에게 잘 맞는 약을 찾아서 복용하기만 하면 무탈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며 “발작이 생겨도 이것이 뇌전증 탓인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뇌전증은 약도 듣지 않는 무시무시한 병이라는 편견 탓에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들이 적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뇌전증 환자를 100%에 가깝게 가려낼 수 있는 진단 검사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병역 회피 목적으로 뇌전증 환자인 양 연기하는 ‘가짜 환자’도 문제다. 뇌전증 약이 듣지 않는 일부 환자는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발작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