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n번방’… 지독한 '트라우마' 어떻게 지우나?

입력 2022.09.29 07:00

디지털성범죄로 인한 피해 확산… 회피하는 대신 ‘적극적인 치료’ 필요

디지털성범죄 사진
디지털성범죄는 범죄 특성상 이미지 등이 유포되기 쉽고 영구적인 삭제가 어려워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힌다./사진=연합뉴스DB
디지털성범죄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메타버스, 오픈채팅을 이용한 성범죄가 성행하고 있고, 최근엔 '제2의 n번방'까지 등장했다. 제2의 n번방은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촬영하도록 강요하고 유포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지난 n번방을 추적했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에 교묘하게 접근했다. 이 같은 디지털성범죄는 범죄 특성상 이미지 등이 유포되기 쉽고 영구적인 삭제가 어려워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힌다. 그 과정에서 지워지기 힘든 트라우마가 남기도 한다.

◇트라우마,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 발병 원인 되기도

트라우마는 정신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신체적, 정서적 충격을 말한다. 어떤 사건 또는 상황의 피해자 모두가 트라우마를 입는 건 아니지만 몇몇 사람에겐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돼 고통을 야기한다.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소영 교수는 “피해자 중 일부는 트라우마를 잘 넘기기도 하고 피해를 보았다고 해서 무조건 트라우마를 입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국가트라우마센터 공식사이트의 자가진단 등을 통해 본인의 상태를 파악하고, 트라우마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 병원에서 치료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디지털성범죄는 영리목적으로 사진을 유포·수집하는 양상을 보인다. n번방과 최근에 다시 등장한 제2의 n번방 역시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를 협박해 사진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피해자의 사진, 영상을 수집했다. 이는 누군가 자신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유발한다. 성범죄 사건의 사례관리, 피해자 상담, 병원 연계 지원을 하는 ‘탁틴내일’ 이현숙 상임대표는 “사건 이후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성형수술까지 한 피해자도 많이 봤다”며 “피해자들은 증거가 사라져도 사라진 게 아닐까봐 늘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일상을 지낸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정서적 피해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유소영 교수는 “치료시기를 놓치면 정서적 어려움이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죄책감과 수치심 모두 정서적 어려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대한 공포감과 고통을 느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으면, 원하지 않아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르거나,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놀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자신의 상태 인지하고 공감받을 수 있어야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 치료법은 약물치료, 안정화 기법,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상담치료 등 다양하다. 불면이 심하거나 평소 무기력함이 지속된다면 증상에 맞게 약물치료를 적절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안정화 기법은 심호흡, 나비포옹법(자기 몸을 스스로 토닥여주는 행동) 등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은 트라우마를 떠올린 후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눈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치료법이다. 상담치료 기법 중 하나로는 인지치료가 주로 쓰인다. 이 밖에도 ▲놀이치료 ▲심리치료 ▲명상 ▲댄스테라피 ▲마사지요법이 있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주위에 상황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회복할 수 있다. 이현숙 상임대표는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며 주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온라인, 디지털 수법으로 진화한 그루밍성범죄의 경우 범죄상황을 인지하기 어렵거나 인지해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현숙 상임대표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협박당해 가해자에게 사진을 전송했을지라도 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 쉽고, 주변인도 피해자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가해자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사건에 대한 고민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치료는 완치가 가능하지만 치료방법과 치료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유소영 교수는 “사건의 정도와 환자분들이 가지고 있는 회복 능력, 사회적지지 등의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치료기간은 없지만 대개 1년 정도만 치료해도 대부분 증상이 좋아진다”며 “치료 방법도 의사의 판단하에 증상별, 사람별로 달리 적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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