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노인도 전신마취 가능한 시대… 수술 미루지 말아야" [헬스조선 명의]

입력 2022.09.26 17:0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노인 마취 명의’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

 

마취과 의사는 비행기를 모는 파일럿과 같다. 수술이 시작되고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는 때가 '이륙', 환자가 마취된 동안 본격적 수술이 집도 되는 때가 '활공',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고 수술이 끝나는 게 '착륙'에 비견된다.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는 노인 마취를 ‘몇몇 기능이 고장 난 비행기를 운행하는 일’에 비유한다. 불안정한 비행기를 몰땐 파일럿의 역량이 중요하다. 노인 환자의 전신마취 수술을 무사히 끝마치는 데도 전문의 경험치와 환자-전문의 간 소통이 필수다. 환자의 상태에 맞게 마취제의 종류와 투여량을 신중히 결정하면, '나이든 몸'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안전한 마취가 가능하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전신마취 수술을 꺼릴 필요가 없다.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 전신마취가 노인의 몸에 부담되는 이유?
마취를 위한 마취는 없다. 전신마취가 필요할 정도의 큰 수술을 해야 해서 전신마취를 하는 것이다. 그런 수술이 필요할 정도라면 이미 몸 상태가 악화돼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노인은 수술 시 발생한 문제를 몸이 스스로 보완하고 대처하는 ‘신체 예비능력’이 젊은이보다 부족하다. 노화 탓에 대부분의 장기 기능이 떨어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심폐기능의 저하가 가장 큰 문제다. 나이 들면 심근이 두꺼워져 심장 탄력이 떨어진다. 심장은 피를 일정량 머금었다가 몸 곳곳의 혈관으로 내뿜는데, 심장 탄성이 줄어들면 심장이 한 번에 붙잡아둘 수 있는 피의 양이 줄어든다. 수술 도중에 출혈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심장이 전신으로 내보내는 혈액량인 ‘심박출량’이 급격히 감소할 위험이 있다.

나이 들면 호흡할 때 사용하는 근육이 약해지고, 폐의 탄성이 떨어지는 것도 위험 요인이다. 노인 환자는 전신마취 수술을 마친 후에 폐쇄성 폐 질환이나 수면무호흡증 등이 생길 위험이 젊은 환자보다 크다. 혈액에 이산화탄소가 축적되는 ‘고탄산혈증’이나 혈액 내 산소량이 부족한 ‘저산소증’ 등이 발생했을 때 몸이 스스로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 수면마취와 전신마취 중 더 위험한 것은?
경비행기는 커다란 여객기보다 운전하기 쉽다. 그러나 사고가 덜 나는 쪽은 여객기다. 경비행기 운전이 쉽다 보니 안전장치가 상대적으로 덜 마련돼서다. 수면마취가 경비행기에, 전신마취가 여객기에 해당한다. 수면마취는 전신마취보다 마취 방법이 간편하지만, 위험에 더 단단히 대비하는 쪽은 전신마취다. 환자를 전신마취할 땐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호흡을 해, 돌발상황이 생기더라도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면마취할 땐 인공호흡을 하지 않는다.

수술을 앞둔 노인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시행할지, 수면마취를 시행할지는 환자의 몸 상태와 수술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수면마취는 비교적 간단한 설비만 갖춰지면 저렴한 비용에 간편하게 할 수 있다. 반면, 전신마취는 수면마취보다 의료진과 환자가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래도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 호흡을 의료진이 더 면밀히 통제하는 게 더 안전하리라 판단되면 전신마취를 진행한다.

결국, 수면마취와 전신마취 중 어느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의료진이 환자와 원활하게 소통해, 환자의 상태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마취하는 것이 안전사고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 전신마취 수술을 앞둔 노인 환자들이 수술에 앞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고령의 환자들은 여러 지병을 앓고 있어, 평상시에 다양한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수술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약 복용을 조절해야 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항응고제’다. 혈전이 생기는 걸 방지하려 먹는 약이라, 수술을 앞두고 이 약을 먹으면 지혈이 잘 안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약을 끊는 게 능사는 아니다. 수술 탓에 신체에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몸이 긴장해, 평소보다 피가 잘 엉겨붙는다. 항응고제를 먹던 사람이 수술 전에 약을 끊으면, 수술 도중에 혈전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약을 끊어야 한다’ 혹은 ‘끊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답할 수 없는 사항이다. 전문의가 환자 상태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수술 전에 몸 상태를 확인하려 이런저런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노인 환자는 심폐기능이 떨어진 경우가 많아, 심장 초음파 검사와 폐기능 검사를 자주 한다. 뇌혈관질환이 있는 환자는 뇌도 촬영한다. 자신도 몰랐던 병이 수술을 앞둔 상태서 발견되기도 한다. 수술 전에 발견된 질환부터 치료하다 보면 수술 일정이 미뤄질 수 있다. 심폐기능이 떨어져 있는 환자들은 수술 전에 ‘풍선 불기’ 같은 재활치료를 통해 폐 기능을 강화시키도 한다. 거동이 가능한 환자라면, 단기간이라도 가볍게 운동하는 것이 수술 전에 신체 기능을 끌어올리는 데 이롭다.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 전신마취가 이뤄지는 과정은?
마취는 크게 ▲도입 ▲유지 ▲각성 ▲회복 과정으로 나뉜다. 마취 도입 과정은 3~5분이면 끝난다. 의사가 수술대에 누운 환자에게 마취를 시작할 것이라 알린 후, 환자가 완전히 마취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전신마취 상태에 들어간 환자는 의식과 움직임이 없어, 기도를 확보한 후 튜브를 삽관해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비행기는 이착륙할 때가 가장 위험하고, 비행 중일 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마취 역시 도입과 각성 시기가 위험하고, 마취가 유지될 땐 비교적 안정적이다. 갑자기 출혈이 발생한다든지, 혈압이 곤두박질친다든지 하는 돌발상황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전문의가 다양한 장비로 호흡과 혈압을 감시한다.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기 3~40분 전부터 ‘자가 통증 조절 장치’를 부착한다. 진통제 기운이 돌아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도 통증을 못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진통제를 많이 투여하는 게 몸에 해롭단 오해가 있는데, 통증을 느끼는 게 몸에 훨씬 좋지 않다. 통증 자체가 유해 자극이라 몸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당뇨환자의 혈당이 더 많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술이 끝난 후엔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회복 상태를 약 30분간 관찰한다. 이때도 환자의 몸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기 위한 각종 감시 장치가 동원된다.

- 노인이 전신마취를 받은 후에 경험할 수 있는 부작용은?
마취는 늘 수술에 병행되므로, 전신마취 부작용이라기보단 ‘전신마취 수술’의 부작용이라고 하는 편이 더 알맞다. 마취도 부담이지만, 수술 자체가 환자의 몸에 가하는 충격도 못지않게 커서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 생각보다 통증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이 경우엔 진통제를 더 투여하면 된다. ▲구역·구토 ▲피부 가려움 ▲현기증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요저류’ ▲섬망(譫妄) ▲인지기능장애를 경험하는 환자도 있다. 요저류는 하루 정도 입원하면 보통 해결되는데, 수술 당일 퇴원했다가 배뇨 장애가 지속돼 재입원 하기도 한다.

섬망은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노인환자의 약 10%에서 발생한다. 날짜·장소·사람을 정확히 분간하지 못하거나, 주의력·언어력이 떨어지는 증상이다. 섬망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면 보호자가 환자를 집에서 돌보기 어려워,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퇴원이 연기될 수도 있다. 인지기능저하 역시 섬망과 더불어 개인차가 큰 부작용이다. 인지기능이 조금만 떨어질 수도,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 마취에서 깨어난 지 몇 주는 지나서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은 몇 주면 인지기능이 다시 회복되지만, 몇 개월씩 지속되거나 원상 복구되지 않는 환자도 있다.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 어떤 경우에 섬망과 인지기능저하 등 부작용을 많이 겪나?
섬망과 인지기능저하는 굉장히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어떤 환자에게 반드시 이 부작용이 생기고, 어떤 환자에게 생기지 않는지 단정지을 수 없다. 다만, 수술받기 전에 이미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는 환자나, 지병이 많아 평상시에 복용하는 약의 개수가 많은 환자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후에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 환자 대부분은 수술받기 전부터 인지기능 저하가 있던 사람들이다.

섬망와 인지기능저하가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지 예측하는 것보다, 이들 부작용이 생긴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우선,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진통제를 잘 투여해야 한다. 고용량을 오래 투여했을 때 섬망을 잘 일으킨다고 알려진 ‘미다졸람‘이란 약제는 용량 조절을 잘해서 사용한다. ‘덱스메데토미딘’이란 약으로 전신마취를 한 환자들에서 섬망이 비교적 적게 나타난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많아서, 최근엔 이 약을 많이 쓴다.

- 전신마취 경험이 있는 노인들은 치매 발생 위험이 크다는데, 사실인가?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후에 치매 위험이 증가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둘 사이에 별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치매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에 축적돼 나타난다. 그러나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 약 5000명을 25.9년간 추적 조사해 보니, 수술을 받은 적 있는 환자들의 뇌에 아밀로이드가 축적되진 않았단 연구 결과가 있다. 다만, 각성과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뇌 피질’이 약간 얇아진 것은 관찰됐다. 인지기능이 조금 떨어질 순 있단 뜻이다.

마취의학계에서 주목하는 건 그 반대다. 전신마취가 치매 위험을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치매 환자가 전신마취 수술을 받을 경우 마취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는 의료진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어려워서다.

- 전신마취 수술 부작용이 무서워 수술을 미루는 환자에게 한마디
과거엔 노인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적극적으로 안 했다. 그래서 뼈가 부러졌는데도 수술을 못 하고 누워 지내다 사망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 가까이 된 환자들도 전신마취 수술을 받는 시대다. 마취통증의학과는 신기술과 최신 장비들이 가장 활발하게 도입·활용되는 분야다. 전국 곳곳에 숙련된 마취 전문의가 분포해 있고, 환자의 활력 징후를 살피는 장치들이 굉장히 발달했으니, 전신마취가 두려워 수술을 피하진 않았으면 한다.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김태엽 교수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한노인마취통증학회 회장을 지내며, 건국대병원 교수로서 환자들의 안전한 수술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마취과 학문 발전에 대한 열정으로 국내외를 아우르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0년엔 ‘홍콩마취과학회’에 초청받아 ‘수술 중 혈액 희석에 의한 혈액 점도 변화와 임상적 의미’를 강연했다. 같은 해 전 세계 150여 개국 마취과 의사들을 대표하는 136개 이상의 마취과학회와 협회로 구성된 ‘세계마취과학회연맹(WFSA)’의 학술위원회 위원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