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보내는 편지>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가족들과 따뜻한 대화도 나누셨나요? 오늘은 암 환자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가족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이 글을 함께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환자와 가족은 서로를 섬기는 사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환자라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힘든 사람은 보호자입니다. 위로가 필요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함께 투병해나가야 합니다. 마주보기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묵묵히 동행하는 것이 좋겠고요.
몇 해 전, 남편 얼굴이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하던 환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왼쪽 유방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은 뒤, 림프절에도 전이가 생겨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와중에 남편과 함께 저를 찾아오신 분입니다. 진료실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던 중 남편 분에게 부인을 꼭 안아주라 요청했습니다. 남편이 포옹하는데도 환자분은 고개를 휙 돌리셨습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해보라는 요청에는 “왜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시키느냐”며 불평하셨고요. 그러던 분이 남편과 함께 면역치료를 받으러 2년간 꾸준히 저를 찾아오시더니, 나중에는 서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서로 울면서 위로하고, 감사 인사를 주고받고, 안아주면서 부부 사이가 전보다 훨씬 좋아진 겁니다. 지금은 “남편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며 “매일 함께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고, 아침에 함께 눈을 뜬다는 게 또 감사하다”고 말하십니다. 남편 역시 “아내가 암에 걸린 이후로 그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며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마음도 회복됐다”고 합니다.
이렇듯 부부 사이는 남편이 아내를 섬기고, 아내가 남편을 섬기다 보면 자연히 좋아집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면 자녀도 부모를 섬기고, 더 나아가서는 가족이 사회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건강도 찾아옵니다. 저는 때때로 환자의 집을 방문해 투병 환경을 확인하는데요. 가족 구성원 사이에 냉기가 도는 집의 문을 닫고 나오면 제 가슴에도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환자가 회복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족 사이에 훈풍이 도는 집을 만들어야 합니다. 관계가 회복돼야 암 투병의 결말도 좋아집니다.
대화 방식을 바꿔야 환자도 가족도 행복
가족관계는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먼저, 대화 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암에 걸려서 환자와 보호자로 나뉘는 순간, 남과 북에 있는 사람처럼 대화가 잘 안 통하게 됩니다.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환자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게 억울하고 슬프고 우울합니다. 마음이 그러니 말도 다르게 들립니다. 흔히 ‘환자가 되는 순간 사람이 변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변한 환경에 맞추어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땐,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화법을 바꿔야 합니다. 환자는 직접화법으로, 보호자는 간접화법으로 말해보세요. 환자는 보호자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낫습니다. “인삼이 비싼가?”라고 묻는 대신 “인삼이 먹고 싶다”고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보호자가 환자가 원하는 것을 수월하게 준비해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호자는 “잘 안 먹으니 몸이 성치 않지”라는 말 대신 “입에 쓰겠지만 한 술이라도 먹으면 좋겠다”고 에둘러 말하는 게 좋습니다. 보호자는 말로 환자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안 먹으면 어떻게 되겠어?” “당신이 안 먹으니 나도 덩달아 못 먹겠네”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는 아픈 사람입니다. 보호자가 환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건 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을 담아 진심을 전하세요.
환자 대접 말고 ‘구성원’으로 존중을
만약 힘이 나고 격려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말로는 어색하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포옹하거나 가만히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만 봐도 괜찮습니다. 말로 싸울 바에는 안아버리는 겁니다. 슬쩍 어깨나 손을 잡아주는 손길도 ‘오케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습니다. 관심을 주되, 환자 대접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보호자는 환자를 배려한다고 하는 행동이, 환자에게는 박탈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막연히 ‘도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환자의 생활을 결정하면 안 됩니다. 환자는 환자로 대접받는 순간 위축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약해집니다. 일상을 포기하면 생활의 활력이 떨어지고, 이는 암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환자의 자리를 지켜주세요.
가족의 사랑은 암을 낫게 하는 명약
세상에 가족만큼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을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환자를 꼭 살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가족입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길 바랍니다. 30대 중반의 위암 환자가 복막에 다 전이가 된 상태에서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수술이 어렵다고 해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남편과 함께 면역치료를 시작하셨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챙기고, 회사를 휴직하며 병간호를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지고지순한 돌봄을 받으며 사랑을 온전히 느끼셨습니다. 이 환자는 8개월 뒤, 위에 있던 암이 다 사라졌습니다. 남편의 지극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하늘이 고쳐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족의 사랑은 암을 잘 이겨내도록 돕고 심지어는 암을 낫게도 해줍니다. 모든 것은 함께 나누면 가벼워집니다. 가족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사랑을 채우고,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껴보세요. 본질은 사랑입니다. 긴긴 투병 생활 동안, 가족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세요.
저 역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