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도박, 로또... 미래를 '운'에 맡긴 젊은이들

입력 2022.05.19 10:42

스티커·인형부터 주식 종목 선정까지... '무작위 선택'의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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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선택을 운에 맡기는 사람이 늘었다. 관련 상품이 늘어나는 등 사회도 변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슬며시 우리 일상에 파고든 ‘관행’이 있다. 바로 추첨, 확률형, 로또, 랜덤 등 다양한 이름을 불리는 무작위 선택 방식. 최근 10년 새 랜덤 박스, 확률형 아이템 등 상품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소셜미디어(SNS)와 뉴스 포털 등 정보를 공유할 때도 무작위 알고리즘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살 집을 마련할 때조차 우리는 내가 걸리길 간절히 빌며, 랜덤 기계를 돌릴 주택공사에 등록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저 운으로만 작게는 포켓몬 빵 띠부띠부 씰부터, 크게는 집과 천금(코인)까지 얻을 수 있다. 왜 우리는 무작위 선택 방식에 이렇게까지 열광할까?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일상 파고든 무작위 선택
무작위 선택은 천천히 일상을 파고들었다. 2016년 인형뽑기방이 전국적으로 흥행했고, 2018년부터 코인 인기가 급증했다. 점점 무작위 선택이 적용되는 분야가 다양해졌다. 온라인 게임, 인스타·유튜브 등 알고리즘, 청약 등 다양한 곳에 이 방식이 스며들었다. 물론 무작위 선택은 오래전부터 자주 사용된 마케팅 기법이지만, 전 국민이 주목할 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았다. 열광하는 사람이 늘면서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 실제로 띠뿌띠뿌 씰을 넣은 포켓몬 빵은 사람들을 새벽녘 편의점 앞에 줄 세웠다. 도박에 빠진 사람도 많아졌다. 가톨릭대 산학협력단 연구팀이 도박을 경험한 성인 204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도박 중독 유병률이 2020년 2018년보다 1.8%p 높아졌고, 도박 행동 경험률은 약 10% 가까이 증가했다. 주식은 아예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공부하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향만 보고 뛰어드는 주식 중독 인구가 늘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는 주식 중독으로 상담을 한 횟수가 2019년에 비해 2020년 64%나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작위 선택 방식의 대표 주자, 로또도 성황이다. 통계청은 월평균 복권 구입 비용이 2021년 동안 2019년(1~3분기 기준)보다 30.6%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중독 비율이 높다. 전체 온라인 불법도박자의 78%가 20~30대고, 20대 가구주의 월평균 복권 구입 비용은 313.8% 급증했다.

◇성공하기 힘든 시대, 내 옆 사람은 로또 맞았다?
왜 이렇게까지 무작위 선택에 열광하는 걸까?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취업도 안 되고, 집값도 오르는 등 희망이 없는 불황 시대에는 불확실성에 기대는 상품이 인기가 많다"며 "포켓몬 빵 등 작은 것은 큰 투자 없이 작은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 코인 등 큰 투자는 단기간에 쉽게 돈을 벌고 싶은 욕구가 커져 인기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가 어려울 때 도박 요소가 있는 무작위 선택 방식이 도입된 상품의 인기가 올라간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2008년에도 복권이나 스크래치 카드 구매 등 도박 행위가 늘었다. 노력해도 실질적인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운으로, 쉽게 벌 수 있는 방법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투기 심리에 더 빠지기 쉽다"며 "압축 경제 성장 등으로 실제로 내 옆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는 걸 봤기 때문에,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20~30대 젊은이들은 특히 취약한 세대다. 사회에서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어본 적 없어 박탈감과 무력감이 큰데다, 코인 등으로 큰돈을 번 사례가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작위 선택 방식은 모두 같은 상황에서 같은 기회를 얻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개인도 사회도 병들어 가
전문가들은 절대 좋은 변화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곽금주 교수는 "적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는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투기 심리가 커져 중독된다"며 "개인의 병이기도 하지만, 사회도 병들어간다"고 말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안에 중독과 관련된 정신 건강 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뇌도 변화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인간은 예상하지 못한 것에 큰 쾌락과 기쁨을 느낀다"며 "불황 등으로 우울해서 이런 쾌락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 무작위 선택 상품에 빠진다면 뇌내 기능이 저하돼 다른 것엔 즐거움을 잘 못 느끼게 되는 무쾌감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점점 강력한 자극에 집중하게 돼, 일상생활 유지가 안 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뇌 손상은 10~20대 뇌가 다 성숙하지 못했을 때 더 크게 입기 쉽다. 곽금주 교수는 "기회의 창이 많아지고,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예상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부는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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