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이 '코로나19'를 치료한다?

증상 완화에 꽤 효과
상용화까지 추가 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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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울제인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중증 증상 완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루복사민과 관련 없는 사진./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많은 나라가 ‘위드 코로나’로 기조를 바꾼 가운데,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다. 위드코로나 중심에 있는 유럽은 10월 한 달간만 해도 신규 확진자가 전달 대비 55%나 늘었다. 결국 코로나19가 사그라들기 위해서는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제가 빠르게 보급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유망한 치료제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 보급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존에 사용되고 있던 저렴한 약제가 코로나19 증상 완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어떨까? 보급은 당연히 쉬울 것이다. 안전성을 확인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최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항우울제인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루복사민,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한다는 연구 나와
최근 권위 있는 영국 의학 학술지 ‘랜싯 글로벌 헬스(The Lancet Global Health)’에 플루복사민이 중증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해 입원율을 줄일 수 있다는 미국 워싱턴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 논문이 게재됐다. 플루복사민은 1971년 처음 합성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약물로, 강박증,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사용된다. 연구팀은 지난 1~8월 동안 백신 미접종자 중 코로나19에 걸린 브라질인 1497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 연령은 중증 위험이 큰 50대로 선정됐다. 741명에게는 플루복사민을 복용하도록 했고, 756명에게는 위약을 제공했다. 연구팀은 약을 100mg씩 하루 두 번 10일간 투여한 뒤, 28일간 증상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플루복사민 복용 그룹에서 코로나19 증상 완화와 사망률 감소 효과가 명확하게 나타났다. 복용 그룹에서는 11%가, 위약 복용 그룹에서는 16%가 응급실을 가거나, 입원 치료가 필요했고, 사망자는 각 1명, 12명 나왔다. 연구에 참여한 미네소타대 의대 데이비드 보울웨어(David Boulware) 교수는 “이번 연구는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중증 증상 완화에 꽤 효능이 있는 것을 증명한다”며 “코로나19 감염 초기 일부 응급 환자나 고위험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토카·혈전 생성 줄여
우울증약이 어떻게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걸까? 코로나19 중증으로 진행하는 많은 경우가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돼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에 일어난다. 사이토카인은 면역세포로부터 나오는 단백질 면역조절제로, 면역 반응이 일어나도록 각 기관에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플루복사민이 사이토카인 생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플루복사민은 뇌신경세포 중 시그마1 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물”이라며 “시그마1 수용체의 여러 역할 중 하나로 사이토카인 생성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플루복사민이 사이토카인 과다 생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플루복사민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한 합병증 중 하나인 혈전증 위험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혈전증은 코로나19 백신을 맞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으로 먼저 알려졌는데, 코로나19 자체가 혈전 유발 확률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홍진표 교수는 “항우울제인 플루복사민은 일명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며 “세로토닌이 가장 많이 분포돼있는 곳이 혈액 응고 역할을 하는 혈소판이라, 플루복사민을 먹으면 혈소판 기능이 떨어져 이론적으로는 혈전이 생기는 것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루복사민, 항우울제 중 시그마1에 가장 강하게 작용
왜 여러 항우울제 중 연구팀은 굳이 플루복사민을 임상 연구에 가장 먼저 사용한 걸까? 시그마1 수용체에 작용하면서, 세로토닌 재흡수를 차단하는 약물로는 설트랄린과 에스시탈로프람 등도 있다. 게다가 설트랄린이 항우울제 중에서 부작용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진표 교수는 “플루복사민이 시그마1 수용체에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며 “또한, 플루복사민은 2019년에 패혈증에서 면역반응이 과다하게 나타나는 것을 줄여주는 효과 있다고 동물 실험으로 입증된 바가 있어 코로나19 증상 완화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플루복사민은 부작용도 적은 편이다. 생길 수 있는 부작용으로 메스꺼움, 설사, 현기증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정신과협회(NAMI)는 지속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점차 개선되는 것으로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서 진행된 플루복사민의 양인 하루 100mg 2회는 강박증 치료에서 사용하는 용량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량이다.

◇상용화까지는 추가 연구 필요해
그렇다면 상용화가 가능할까? 치료제를 아예 처음 개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식품의약품(FDA)에서 항우울제로 승인받았기 때문에, 효과가 입증 돼 추가적용증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의사의 임상적 판단에 따라 코로나19 치료제로 플루복사민 처방이 가능해진다.

만약에 쓰이게 된다면, 백신 접종률이 낮거나 자원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서 먼저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저렴하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머크사(Merck) 코로나19 실험용 항바이러스제는 1회당 700달러(약 83만원)인 반면, 플루복사민의 10일 치 처방 가격은 4달러(약 4700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보편적인 치료제로 쓰이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아직 추가 연구가 여러 번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약과 병용했을 때 효과와 안전성은 어떻게 되는지, 내성은 안 생기는지, 백신 접종자에게는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등이 증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코로나19 증상 완화를 위해 필요한 플루복사민 용량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미네소타대에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