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결핍 따른 뇌의 변화... 어긋나는 아이들

입력 2021.11.04 07:30

학대로 망가진 뇌 신경망, 사회성 발달 막아
적극적인 치료로도 회복 힘들어
신경학적 치료까지 고려한 사회 제도 필요해

학대 받는 아이
학대는 뇌에도 생물학적인 변화를 유발해 사회성이 발달되지 못하게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쯧쯧, 가정교육을 못 받았나 봐.'

간혹 주변에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보면 누군가 하는 얘기다. 다시 보자. ‘가정교육을 못 받은 아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학대받았지만 살아남은 아이’다.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채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올해에는 9월까지만 해도 1만 9582건의 아동학대 112 신고가 들어왔다. 당장 지난 1일만 해도 대로에서 아이를 차고, 때리고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알려졌다. 가해 여성은 주변에서 말리려고 하자 “내 자식 내가 때리는 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외쳤다. 수많은 어른의 잘못된 인식 속 아이들이 다치고 있다. 학대는 뇌에도 생물학적인 변화를 유발해 평생 고통받게 한다. 본인 감정에 대한 이해도, 타인에 대한 공감력도 떨어지는 등 전반적인 사회성이 떨어져 고립되게 된다.

◇해마·전전두엽 등 쪼그라든 뇌, 사회성 발달 막아
사회성은 어릴 때 뇌가 형성되면서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과 성장하면서 20대 후반까지 대인관계를 통해 얻는 것 두 가지가 합쳐져 형성된다. 학대는 두 측면 모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한다. 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신의진 교수는 “태어나서 세 돌이 되기까지 뇌의 신경세포망이 활발하게 형성되는데, 이때 학대로 애착 관계가 틀어지면 제대로 신경망이 형성되지 못해 뇌 자체에 결함이 생기게 된다”며 “자기 조절력이 떨어지고, 공격성이 강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기억을 저장하는 부분인 해마와 감정조절, 집중력, 충동성 등 사회성과 밀접한 영역인 전전두엽의 부피와 두께가 줄고, 다른 신경망과 연결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등의 신경전달물질 농도에도 변화가 생긴다. 실제로 유아기 스트레스로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되면 사회적 행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미국 뉴욕대 그로스만 의대 연구팀 연구 결과도 있다.

학대받은 아이는 자라면서도 사회성을 형성하기 어렵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해마 기능이 떨어지다 보니 기억력도 떨어지고, 인지 능력도 떨어져 학습을 잘 못 하게 된다”며 “때문에 긍정적인 경험을 잘 못 기억하는데, 부정적인 것은 오히려 각인된 기억이라 비슷한 상황이 오면 과각성해 훨씬 기억을 잘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상황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게 성장하는 것이다. 전전두엽 기능도 떨어져 긍정적인 표정은 인식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이 없는 무뚝뚝한 표정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긍정적인 경험을 할 환경도 형성되기 어렵다.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민수 교수는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맺는 관계가 모델링이 돼 다음 대인관계를 맺게 된다”며 “학대받은 아이는 기본적으로 세상이 믿을 곳이 아니라는 경험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낮은데, 좋은 대인관계를 맺어본 경험조차 없으니 또래 아이나 선생님 등과 긍정적인 경험을 할 가능성도 당연히 작다”고 말했다.

한편, 학대는 신체에 상해를 주는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 폭력, 인격이나 감정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등 정서 학대, 기본적인 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하는 방임, 성학대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적극적인 치료로도 회복 어려워
문제는 뇌에 생긴 신경학적 변화로 인한 사회성 결핍은 차후 적극적인 치료로도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승민 교수는 “회복하기 힘들고, 하더라도 정말 더딜 가능성이 크다”며 “학대당하는 모습을 어릴 때 보기만 하더라도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고, 실제로 학대당한 아이는 회복이 잘 안 된다는 연구가 최근까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 꾸준히 관심과 신뢰를 주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신의진 교수는 “정서적·사회적 발달이 안 되다 보니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데, 학습 의욕도 없어 치료하기 힘든 아이들을 실제 현장에서 많이 봤다”며 “차후를 보이려면 아이 개개인에 맞는 상담, 인지행동치료와 경우에 따라 도파민, 세로토닌 등을 조절하는 약물치료를 동반하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 시각으로 대책 세워야
아이에게 가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승민 교수는 “최대한 빨리 개입해야 하고, 개입한 후에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입양 당시 생후 8개월이었던 여자 아이(정인이)가 정착할 집을 찾은 지 16개월 만에 끔찍한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난 사건, 대전에서 20개월 된 딸아이를 잠들지 않는다며 때리고, 허벅지를 비틀어 부러뜨리고, 성폭행까지 저질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등 끔찍한 아동학대 사례들이 쏟아졌다. 그제야 성급한 대책들이 쏟아지듯 진행됐다. 아동학대 가해자에게서 즉시 아이를 분리하는 즉각분리제도, 학대피해 아동 쉼터 추가 설치,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추가 배치 등이다. 배승민 교수는 “즉각분리제도는 학대받은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분리가 되면 아이들이 잦은 이동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데, 여기에 버려졌다는 공포심까지 더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신의진 교수는 “돌봄 교사도 꾸준히 한 사람과 관계를 맺도록 해 신뢰를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지금은 한 보호시설에서 아이가 만나는 교사가 하루에 3번씩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놀이 치료 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각 아동에게 맞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승민 교수는 “신경망에 입은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영양 배분이 잘 돼있는 규칙적인 식사와 정기적인 운동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신고가 들어오면 이전보다는 빠른 대처가 가능해졌다. 지난 1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양측 신고정보 시스템을 통합해 공유하기로 했다. 아동학대 신고는 112 접수보다도 지방자치단체 핫라인 상담 전화로 오는 경우가 많아 분리된 시스템으로는 피해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다. 학대예방경찰관(APO) 시스템과 복지부의 국가아동학대시스템 공유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어, 연말이면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겪는 학대, 사회적 문제 될 수도
어릴 적 겪은 작고 큰 학대가 청년 시기 자해와 극단적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신의진 교수는 “최근 자해, 극단적 시도를 한 매우 많은 10~20대가 병원을 찾아온다”며 “들여다보면 정도는 다르지만 아동 학대가 없었던 아이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한다면 차후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커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해·극단적 시도를 자행하는 청년층이 매해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5년(2016∼2020년) 동안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4.9명에서 6.5명으로, 20대 자살률은 16.4명에서 21.7명으로 각각 32.5%씩 올랐다.

배승민 교수는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커서 감정을 소화해내는 능력이 부족해, 자해·극단적 시도 등 더 큰 심리적 충격을 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고민수 교수도 “어릴 때 학대를 당하면 충동 조절 등 전전두엽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참고 해결하려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자해, 극단적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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