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낼 땐 망설였지만..." 장기기증, 유가족들에게도 큰 감화
아무리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장기기증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혹여나 기증 절차를 거치며 남은 가족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장기기증자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은 종종 들려오지만, 실제 기증이 이뤄진 후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가족의 장기기증은 유가족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동생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기증이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막상 가족을 떠나보내는 순간이 오면 망설이게 된다. 직접 장기이식을 담당하는 의사인 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 손봉수 교수에게도 그랬다. 그의 동생은 업무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후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대학병원 교수인 그에게도 이미 뇌사에 빠진 동생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 교수는 "그동안 아픈 환자들을 위해 수없이 많은 수술을 했지만 내가 기증자 가족이 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힘겹게 기증을 결정하고 난 후, 동생의 일부분이 살아있고 다른 분들이 동생의 장기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까 동생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생 손현승 씨의 장기기증으로 3명의 사람이 심장과 좌·우 신장을 얻어 새 생명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아빠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나이, 유나는 7살에 아빠를 여의게 됐다. 생전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유나 아빠는 평소 장기기증에 뜻이 있었다. 그는 지주막하 출혈로 입원 10일 만에 뇌사에 빠진 후 3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로 떠났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유나는 아빠가 해외 출장을 갔노라고 둘러대곤 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할머니 임귀녀 씨는 그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기증자 유가족을 모아 합창단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던 유나에게 이를 권유했다. 유나는 '생명의소리 합창단' 공연을 하게 되면서 "아빠가 좋은 일을 하고 하늘나라에 갔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됐다. 당당히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유나는 반장까지 맡게 될 정도로 씩씩해졌다. 임귀녀 씨는 "유나는 생명을 나눠주고 간 아빠가 들을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며 "아빠처럼 장기기증 희망 서약도 하고 싶다고 한다"고 말했다. 유나는 자기도 아빠 뜻에 따라 살겠다며 곱게 기른 머리를 잘라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기증하기도 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이 꼭 이름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남긴 이들의 이름은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더욱 뜻깊게 남는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송아신 씨 역시 생전 고운 마음으로 장기기증을 다짐했었다. 송아신 씨의 콩팥은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20대 여성에게 기증됐다. 아버지 송종빈 씨는 딸이 남긴 책 1500권을 정선군에 위치한 작은 고등학교에 기부했다. 학교는 그의 이름을 따 '아신문고'를 만들었고, 시골 마을에서 책 한 권이 귀했던 아이들에게 귀중한 양식이 되고 있다. 송종빈 씨는 나눔에 뜻이 있던 딸의 마음을 이어받아 아신장학회도 만들었다. 앞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유나도 아신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았다. 송종빈 씨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마련된 온라인 추모공간에서 "생전에 이름 알려지는 것 싫어했던 딸이지만, 딸의 의미 있는 삶을 남들이 알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딸은 우리보다 높은 데 있으니 충분히 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