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치매'를 위해… 지친 가족부터 어루만져야"

입력 2021.09.17 17:22

[전문의에게 묻다]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치매로 평생 살아온 기억을 잃어가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있을까.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치매 어르신과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상에 제약이 생기면서 치매 환자들의 병세는 악화되고, 곁에서 가족들은 지쳐만 간다. 

다가오는 9월 21일은 치매의 날이다. 치매의 날을 맞아, 코로나 시대 치매의 고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을지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을 만나 들었다. 그는 국내 손꼽히는 치매 전문가로, 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이자 강북구 치매안심센터장이다.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코로나로 치매 어르신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지난해 대한치매학회에서 코로나를 겪으면서 얼마나 치매가 악화됐는지 조사를 했다. 치매 환자의 50% 정도가 우울증, 불안 그리고 초조 증상을 더 많이 보였다. 치매 어르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인지 기능 저하 증상과 함께,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신경 행동 증상’이 늘었다. 신경 행동 증상은 치매로 공격성을 띠며, 누군가를 의심하고, 집밖을 나가는 이상 증상을 말한다. 치매는 원래 뇌세포가 파괴되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일상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병이다. 신경 행동 증상이 동반되면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들은 더 힘들어진다.

-왜 신경 행동 증상이 증가했나?
치매 어르신은 일상 행동 반경에 제약이 큰데, 코로나로 그마저도 제한돼 집에만 있게 되면서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문제는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들의 스트레스도 크게 늘었다는 점. 실제 진료실에서 체감하는 것은 치매 어르신에게만 불안·우울·초조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불안·우울도 함께 증가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상황이 끝이 보이고, 언제까지다’하면 참아줄 수 있는데, 상황이 끝이 없이 계속되다 보니 참는 데 한계가 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대한치매학회에서 최근 치매 어르신과 보호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첫째, 치매 어르신의 ‘일상’을 지키라는 것. 일상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규칙적으로 아침에 일어나고, 식사하고, 산책하는 것들이다. 코로나로 여러 가지가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찾아보면 함께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두 번째는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가족 등 보호자에 대한 내용이다. 가족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할 지 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이 코로나에 걸리거나 아플 때를 대비해야 한다.

세 번째는 치매 환자 눈높이에 맞는 방역 지침이다. 예를 들어 ‘손 씻어라’ 방역 지침을 강조해도 치매 어르신 혼자 손을 잘 씻지 못할 수 있다. 누군가가 손을 씻겨 드려야 한다. 치매 어르신의 개인 위생을 도와드리고 생활 속에서 방역 지침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 조언을 담았다.

-요양원에 있는 치매 어르신은 어떤가?
지금은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요양원에 상주하는 치매 어르신을 만나기 어렵다. 1년 반 이상 생이별 상태인 것이다. 다행히도 치매 어르신들은 이제 거의 백신을 맞았다. 가족도 적극적으로 백신을 맞아 치매 환자와 접촉을 늘려야 한다.

-가족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치매 어르신을 집에서 돌보는 가족들은 지금 스트레스가 크다. 코로나 상황이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치매 어르신에게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이 많다 보니 갈등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가족 입장에서는 내 엄마, 아빠, 아내, 남편이 이런 모습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을 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들은 치매 어르신에게도 전달된다. 기억력은 없지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예민도는 아주 높다. 치매 어르신이 예민해지면 본능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오랜 시간 같이 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모습들을 자꾸 보게 된다. ‘나쁜 치매’가 되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치매는 인지 기능이 떨어져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병이다. 그러나 공격적이고 매사 의심을 하는 등 예상 밖의 행동들을 보이면 가족 입장에서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치매 가족에 대한 대책이 있을까?
치매 어르신을 진료하면서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이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선 신체적 건강을 지키라고 당부하고 싶다. 보호자가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도 나빠진다. 그러려면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해야 한다. 또한 치매 어르신과 잠시 떨어져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치매 어르신을 보호하는 것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라 생각하지 말고, 친척이나 자녀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치매 어르신을 돌봐주고, 보호자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치매안심센터 등의 운영은?
지금 주간보호센터는 열려 있다. 그러나 치매안심센터는 아주 일부만 운영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다 닫았다. 치매안심센터 뿐만 아니라 노인 관련 모임 시설이 거의 닫혀 있다. 치매 어르신은 대면해서 대화하고 스킨십을 나누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려운 상황이므로 비대면 프로그램이라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많은 치매안심센터에서 동영상으로, SNS로, 학습지로 치매 어르신과 접촉을 하려고 하고 있다. 눈과 눈을 마주치지는 않지만, 치매 어르신이 학습지라도 풀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비대면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 접촉이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주변에서 치매 어르신에게 전화라도 한 번 더 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대한치매학회서 10년간 진행하는 ‘일상예찬’ 캠페인은 어떤 것인가?
대한치매학회에서 2012년부터 시작한 일상예찬 캠페인은 치매 어르신과 가족들에게 다양한 문화·미술 활동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치매 특성을 고려해 만든 특화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의 특별함을 스스로 표현, 정서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 치매로 기억력이 좀 없어져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치매 어르신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일상 활동을 할 수 있는 ‘예쁜 치매’라면 큰 문제 없이 노년기를 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된 캠페인이다.

-일상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은?
혼자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시장·은행을 가는 등의 ‘일상’이 무너지면 어르신의 존엄성이 훼손된다. 치매로 인지 기능이 좀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일상이 가능하다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예쁜 치매’로 만들기 위해 가족들이 노력해야 하고, 치료도 열심히 받아야 한다.

-한국형 치매 진료지침도 만들었다?
2020년 대한치매학회에서는 치매 교과서 3판을 발행했다. 2012년에 2판을 발행하고 10년만에 발간한 것이다. 달라진 점은 치료 부분이 보강된 것이다. 진료 지침은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는 중이다. 

-치매 치료 부분에 있어서 희망적인 것은?
최근 ‘아두카누맙’이라는 약이 미국 FDA 인증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약은 치매의 한 원인인 독성 단백질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로 치매 극복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치매 어르신은 이미 뇌세포가 많이 파괴돼 있는 상태에서 병원에 온다. 이 상태에서는 치매 원인만 제거한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 파괴된 뇌세포를 복구할 수 있는 치료제가 필요하다. 치매의 원인은 상당히 많은데, 그 중 베타아밀로이드가 원인인 알츠하이머병 치매 초기에만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한계다.

-지금 사용되는 치료제는?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기억력이 떨어지면 기억력을 보충해주는 약을 쓴다. 치매 어르신이 망상을 하거나 배회하거나 우울에 빠지거나 잠을 못 자는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각각의 치료제도 있다. 이들 치료제를 적절히 사용해서 좀 더 ‘예쁜 치매’를 만들어드리는 것, 우리 사회에서 치매 어르신을 받아들이려는 문화를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 치매를 장기적으로 치료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치매 환자가 코로나에 감염되면 특이 증상이 나타난다?
그렇다. 평소 편안하게 지내는 치매 어르신이 갑자기 혼돈 상태나 초조한 상태가 나타난다면 코로나에 감염됐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코를 통해 감염되면, 코와 뇌는 연결이 돼 있어 바이러스가 뇌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면서 치매가 크게 악화되고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코로나에 감염이 되면 면역체계들이 갑자기 활성화되면서 뇌가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치매 환자가 갑자기 이상 증상이 생겼다면 한번쯤은 코로나를 의심해야 한다. 열·기침 같은 코로나의 전형적인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증상이 없는 코로나도 있고, 비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 시대 치매를 슬기롭게 이겨내려면?
코로나는 종식되기 어려워보인다. 치매 또한 종식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무서우면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가 치매를 왜 무서워하는가 생각해 볼 때, 잘 몰라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치매를 잘 알아야 한다.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65세 이상 인구의 10명 중 1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고령화 시대 치매는 ‘상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치매 환자를 안을 수 있다. 이런 사회라면 비록 치매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환자 자신이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사회 안에서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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