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최소 수혈’, 순천향대 서울병원의 뚝심

입력 2021.06.24 15:12

[피 부족 시대⑤]
국내 최초 환자혈액관리 시스템 도입
부적격 수혈 사례 거의 없어

사용할 수 있는 혈액이 부족하다면, 수혈의 부작용이 크다면, 환자 자신의 피를 아껴서 활용하자는 개념인 PBM(환자 혈액 관리)이 국내에서 화두로 던져진 건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환자 혈액 관리를 실천해 온 병원이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이다. 다른 병원들은 이제 막 도입하거나, 아직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이미 PBM 시스템 도입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박선영 무수혈 및 환자 혈액 관리 센터장(마취통증의학과)과 이정재 부병원장(산부인과)을 만나 도입 과정에 관해 물어봤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박선영 무수혈 및 환자 혈액 관리 센터장, 순천향대 서울병원 이정재 부 병원장
순천향대 서울병원 박선영 무수혈 및 환자 혈액 관리 센터장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순천향대학 서울병원 이정재 부 병원장./사진=순천향대 서울병원

◇처음부터 익숙했던 PBM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PBM은 처음 해외에서 제기된 10년 전부터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아예 수혈을 거부하는 종교 ‘여호와의 증인’ 소속 환자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1996년부터 무수혈 치료를 해 왔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턴 수혈의 부작용을 걱정해 종교와 상관없이 최소수혈을 원하는 환자들도 따로 관리를 시작했다. 5년 전부턴 본격적으로 자체에서 개발한 혈액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환자 혈액 관리(PBM)’개념을 실현했다.

PBM이 낯설지 않은 병원답게 최소수혈을 위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박선영 교수는 “자체 혈액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혈액을 처방할 때 정말 필요한 수혈인지 사유를 적도록 하고, 적절 수혈처방 체크리스트와 환자 혈액 검사 결과가 보이도록 하고 있다”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혈 전 철분제, 조혈제 등을 수술 전 고려하도록 해 수술 중 수혈 가능성을 줄이고 있으며, 자가 수혈기인 셀세이버, 사용하지 못한 혈액을 장기간 보관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혈액 냉장고, 환자 혈액 관리 관련해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여러 과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한 다학제 진료 소통 채널 등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달 월례회의를 통해 최소수혈 통계 결과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연구 등 최신 지식에 대한 의견 공유도 하고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 도입 이후 1년 반 동안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적혈구제제를 사용한 사유를 분석해 봤더니 부적격 사유로 수혈을 진행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한 수혈학회지에 2019년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2016년 9월~2018년 2월 동안 순천향 서울병원에서 수혈한 사유로는 헤모글로빈(Hb) 수치 7g/dL 이하인 만성 빈혈 환자인 경우가 전체 22.1% (3570/ 16138)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Hb 수치 7g/dL 이하인 경우에만 수혈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10g/dL 이하만 돼도 수혈할 수 있어 관습적으로 7g/dL 이상일 때도 수혈하는 경우가 많다. 또 순천향 서울병원에서는 안정된 PBM 시스템을 적용해 중증 빈혈 환자도 수혈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임상 결과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혈액을 보관하고 있는 냉장고
혈액을 보관하고 있는 냉장고/사진=순천향대 서울병원
◇PBM 도입에 가장 필요한 건 …의료진의 협조, 적극적인 리더십
익숙했기 때문에 변화는 비교적 쉬웠다. 환자 혈액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구성원의 협조’이기 때문이다. 수혈을 줄이면 감염률, 재입원율, 사망률, 재수술률 등이 모두 감소한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는 당장 환자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데, 무수혈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박선영 교수는 “PBM은 결과적으로 수혈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는 규제의 모습을 띠고 있다”며 “환자 중 수혈하지 않으면 악화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도 담당 의사의 결정을 제한하게 돼 PBM 도입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는 의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무수혈 치료에 익숙했기 때문에 의료진의 PBM 필요에 대한 인식률이 높았다. 병원 차원에선 인식 교육도 지속했다. 2009년부터 수혈관리위원회를 통해 혈액제제 사용량이 높은 병동과 부서에는 가이드라인 책자를 배포하는 등 주기적으로 교육, 관리해 왔었다. 이 때문에 PBM을 일반 환자까지 확대해 치료하는 것에 대해 구성원의 거부감이 적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이정재 부 병원장
순천향대 서울병원 이정재 부 병원장이 설명하고 있다./사진=순천향대 서울병원

물론 아예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선영 교수는 “과마다 수혈의 중요성이 다르기 때문에 초반에는 모든 과를 아우르기 힘들었다”면서도 “이때 최대한 많은 과를 모아 함께 논의하는 분위기를 만든 적극적인 리더가 있어 안정적으로 환자 혈액 관리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리더는 전 무수혈 및 환자 혈액 관리 센터장이던 이정재 교수다. 이정재 교수는 “PBM 도입은 의사 개개인이 환자 혈액 관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진 상태로 내부 반발이 아닌 협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며 “수혈밖에는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은 혈액종양내과, 심장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수혈을 줄이기 위해 많은 관심과 심려를 기울여야 하는 마취통증의학과 등 최소 수혈이 어려운 과와 계속 논의하면서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 결국 안정적인 PBM 도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모든 환자 최소 수혈 실현이 다음 과제
환자 혈액 관리 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다음 목표를 물었다. 박선영 교수는 “결국 목표는 가급적 모든 환자에게 최소 수혈 치료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더 확대하기 위해 관리를 위한 인력, 시스템 정비 등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 과의 의료진이 무수혈 및 환자 혈액 관리 센터에 들어와 있다”면서도 “더 세부 분야별로 나눠 참여 시켜 더 적극적으로 모든 환자가 적절한 혈액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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