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부족 시대②] 청년들에게 기댄 헌혈… 수술실서 낭비​

입력 2021.05.13 09:00

수혈 최소화하는 ‘환자혈액관리(PBM)’ 개념 등장

손으로 혈액 팩을 꽉 쥐고 있다
모이는 피의 양은 줄어들고, 사용하는 피의 양은 늘고 있다. 해결책으로 피를 적재적소에만 사용하는 ‘환자혈액관리(PBM)’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는 명백한 피 부족 국가다. 지난해 혈액 적정 보유일 수(5일분 이상)는 85일로, 160일이던 3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정부가 헌혈을 권장하는 재난 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피 부족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힘들게 모인 피가 관리조차 제대로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고령화로 모이지 않는 피
헌혈량이 줄어들고 있다. 무소속 전봉민 의원실이 혈액 관리본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3년간 헌혈량 실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량은 243만명 수준으로 3년 전보다 무려 27만 9000명이 줄었다. 수술 등 회복을 위해 국내에서 사용되는 혈장은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 금액만 974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혈액이 부족해 질 건 예견된 사태였다. 저출산 고령화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혈액은 헌혈에 의해 공급되는데, 헌혈인구는 심각할 정도로 청년층에 몰려있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혈액사업발전계획에 따르면 헌혈 공급 연령층으로 10~20대가 71%, 30~40대가 24%, 50~60대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출산으로 청년층은 줄어들고, 수혈이 필요한 중증질환자가 많은 노년층이 많아지면 혈액 수급은 당연히 점점 더 힘들어진다. 벌써 헌혈 청년층의 수는 급격하게 빠지고 있다. 2015년까지 100만명 이상을 유지해오던 10대 헌혈자는 91만명대까지 떨어졌고, 16세부터 29세까지 헌혈자는 5년 만에 무려 20만8000명이나 줄었다. 대한적십자사는 혈액 수급과 관련한 중장기예측 보고서에서 2030년에는 필요한 헌혈량의 77%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겨우 모은 피, 수술실에서 낭비되고 있어
어렵사리 얻은 피를 우리나라는 낭비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보고한 2015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적혈구제제 공급량 자료를 보면 일본은 26.3유닛, 호주는 27유닛, 캐나다는 21.1유닛인 반면, 우리나라는 41유닛이나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선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할 때 78%가 수혈을 하지만, 호주는 14%, 미국과 영국은 8%만 수혈한다. 심장 수술 때도 우리나라는 수혈률은 76~98%로, 29%인 미국보다 2~3배 많이 사용한다.

왜 이렇게 피를 많이 사용하는 것일까? 건국대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는 “수혈의 심각한 잠재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 의료진이 수혈 치료를 가장 쉬운 치료법으로 간주하여 선택해왔으며, 수혈을 방지하거나 수혈량을 줄여준다고 알려진 다른 치료 전략 사용엔 무관심했다”며 “결과적으로 외국보다 과다한 수혈 빈도나 혈액 사용 현실을 초래하게 됐다”고 말했다. 과도한 수혈은 오염 위험이 크고 면역변형도 일으킬 수 있는 등 위험 인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 의료계에선 수혈하면 환자 회복이 빠르게 관찰되기 때문에 쉽게 수혈치료를 선택하는 관행이 고착화돼 왔다. 제도도 거리낌 없이 피를 사용하도록 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수혈할 때 이유를 명시할 필요도 없고, 수혈량이나 횟수를 제한하지도 않는다. 수혈을 결정할 때 필요한 기준도 낮다. 헤모글로빈 수치 10g/㎗ 미만이면서 이전보다 수치가 10% 이상 감소했다는 기준에만 부합하면 된다. 정상 수치는 13~14g/㎗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호주,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7g/㎗ 이하일 때 수혈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7g/㎗ 이하가 권고사항이지만, 관행이 우선되는 곳이 많아 수혈 사용이 줄지 않고 있다.

당연히 수혈 양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수혈 이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고용량 철분 정맥제를 넣는다면 헤모글로빈수치가 높아져 넣어줘야 하는 피 양도 줄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수혈 전 철분 정맥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험도 되지 않아 가격도 비싸다.

◇혈액 부족, 적재적소에만 쓰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헌혈은 줄어들고, 과도한 수혈의 위험 요소도 드러나자 최근 현대 수혈의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어왔다. ‘환자혈액관리(PBM)’란 개념이다. 수혈이 필요 없는 환자에게는 수혈하지 않고, 필요한 환자는 자신의 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외국에선 해당 개념을 도입해 상당량 피를 아끼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1차 혈액관리 기본계획안(2021~2025년)’을 마련해 한국형 혈액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계획안에서는 ▲헌혈목표관리 및 헌혈참여 저변 확대 ▲혈액 안전 및 사용 관리 ▲국가 혈액관리 책임성 강화 등을 3개 과제로 선정했다. 아직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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