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칼럼]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 대안이 있는데, '없습니다'

입력 2021.04.01 07:15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이찬주 교수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이찬주 교수/세브란스병원 제공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올해 초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문을 냈다. 그는 코로나19 시대의 지난 1년이 인류에게 남긴 교훈으로, 과학의 성취와 정책적 의사결정의 실패를 꼽았다.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 치료 현장에도 하라리의 지적이 꼭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급여 기준 문제다. 다른 치료 대안이 없던 환자를 위해 혁신적인 신약이 등장해도, 급여가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약이 있는데 없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기약없이 이어진다. 과학의 혁신이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의사결정의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형접합성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름도 생소한 이 질환은 젊은 나이임에도 혈액 내 저밀도지단백(LDL) 콜레스테롤를 제거하는 LDL 수용체 및 관련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혈중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위험한 합병증이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시한폭탄 상태가 된다. 일반적인 고지혈증 환자에게 쓰는 약도 이들에게는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희망은 있다. 기존 치료제들로는 관리되지 않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줄 수 있는 항체치료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항체치료제는 안타깝게도 ‘있는 데 없는’ 바로 그 치료 대안이다. 급여 기준 때문이다. 이 치료제는 급여 기준 상 특정 유전자 변이나 황색종이라는 임상적 특징이 증빙이 되어야만 쓸 수 있다. 문제는 해당 유전자 변이나 황색종이 확인되지않는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들도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으로는 해당 유전자 변이나 황색종이 감지되지 않아도 이형접합형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적인 진료 가이드라인도 가족력과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만으로도 진단할 수 있다고 권고한다. 실제 임상적으로 이형접합형 가족성 고콜레스테롤 혈증임에도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원인 유전자가 있을 수 있으며, 다수의 유전자(Polygenic cause)가 관련하였을 수도 있는 점, 유전자 검사의 기술적 한계 등이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급여 기준은 유전자 변이가 있어야만 항체치료제에 건강보험 혜택을 지원한다.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지 못한 환자들은, 임상적으로는 이형접합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임에도 유일한 치료 대안에 건강보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임상 현장의 의사들과 연구진들은 과학으로 질병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아직까지 풀리지 못한 질병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 의료진들이 계속해서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급여 기준과 같은 사람의 결정과 사회시스템에 달린 문제로 치료가 제한되는 상황은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형접합형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들 가운데 증상이 심각한 환자들은 10명 중 6명이 심혈관질환 때문에 사망한다. 치료 대안이 있는 질환이므로, 보험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들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환자들이다. 부디 건강보험 제한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어 많은 이들이 힘겹게 이룬 과학의 성취가 환자들에게도 온전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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