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의 힘 ①] 신종 감염병은 왜 '박쥐'에서 시작될까

입력 2021.03.19 08:15

수많은 바이러스에 감염… '슈퍼 면역력' 얻어

박쥐
박쥐는 특이한 면역체계로 인해 인간보다 바이러스에 잘 대응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1년이 넘도록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 지난 2012년에 발생한 메르스(MERS-CoV), 2002년 사스(SARS-CoV)까지… 이들은 모두 박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바이러스다. 박쥐 매개 바이러스가 주는 고통은 10년 주기로 계속 찾아오고 있다. 박쥐는 어째서 이런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됐으며, 정작 박쥐는 왜 바이러스에 걸려 멸종되지 않는 걸까. 인간이나 다른 동물과 달리 박쥐만이 가진 '특별한' 면역체계를 알아봤다.

◇바이러스가 박쥐를 좋아하는 '이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어야만 생명력을 얻고 증식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숙주와 만나 힘을 얻게 되는 것을 우리는 '감염'이라고 부른다. 감염이 100%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바이러스는 질병으로 이어진다. 같은 바이러스라고 해도 숙주에 따라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특정해 감염을 확산하고자 하는 '숙주 특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류독감과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지 못한다. 다만, 숙주 특이성은 돌연변이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종의 숙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에겐 '팬데믹'을 불러온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박쥐에서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96% 유사한 바이러스가 중국의 중간관박쥐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박쥐는 생태학적으로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숙주다. 박쥐는 주로 숲이나 동굴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데다, 배설물 덩어리인 '구아노' 더미를 형성하는 습관이 있다. 충북대 미생물학과 김혜권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박쥐 무리에서 바이러스는 안정적인 숙주 환경 내에서 지속적으로 증식할 수 있다"며 "박쥐가 겨울잠을 자는 동안 바이러스 돌연변이 발생 빈도는 더욱 높아진다"고 했다. 실제 겨울잠을 자는 박쥐의 분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들이 검출되고 있다.

◇박쥐의 '슈퍼 면역력'은 그동안 싸워온 결과물
왜 박쥐는 그 많은 바이러스를 갖고 있음에도 멀쩡한 걸까? 답은 박쥐의 면역체계에 있다. 박쥐는 흔히 '슈퍼 면역력'을 가졌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지난해 독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박쥐의 유전자에서 항바이러스 능력과 관련된 'APOBEC3' 유전자가 특이하게 변형되고 복제된 흔적을 발견했다. 이는 박쥐가 처음부터 바이러스에 강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지금의 내성을 형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감염에 대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10개 이상이 비활성화된 흔적도 있었다. 또한 박쥐는 비행하며 움직이는 포유류인데, 비행 중에는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 면역 반응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에게 코로나바이러스는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지만, 박쥐에게는 이미 친숙한 존재일지 모른다. 김혜권 교수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로 봤을 때는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동물에게서 보이지 않는 순환을 하고 있다가 이제야 우리에게 다가왔을 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꼭 박쥐를 '먹어서' 생겼다고 볼 순 없다. 전문가들은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 변화가 코로나19를 발생시킨 여러 요인 중 하나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신종 바이러스 탄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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