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호산본초표본박물관' 중비 중인 김호철 경희대 교수
의약품은 정확한 원료를 정량 사용해야만 원하는 효과를 낸다. '레시피'에서 일탈한 약은, 약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한약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만큼 자란 약재를 쓰느냐에 따라 효과가 있는 약이 되기도 하고 먹으나 마나 한 약이 되기도 한다. 효과 없는 약, 건강기능식품들이 소비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연구자는 직접 '진짜 효과 있는 표준재료'를 제공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올 하반기 개관을 앞둔 '경희대학교 호산본초표본박물관'의 탄생 배경이다. 호산본초표본박물관 설립위원장인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 김호철 주임교수를 만났다.
◇효과 있는 원료 표준을 제시하는 호산본초표본박물관
복분자가 산딸기와는 전혀 다른 열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분자는 '복분자딸기'라는 식물의 열매로 일반 산딸기와는 성분도 다르다. 복분자를 먹고 '요강을 엎는' 효과를 보지 못한 건 복분자딸기가 아닌 일반 산딸기를 먹은 게 원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생김새와 이름을 가진 과일이라도 효과와 성분은 천차만별이지만 재료를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는 기업은 드물다. 천연물 특성상 채취시기, 재배방법 등에 따라 성분 함량 등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헌에 기록된 정확한 식물을 사용하기 쉽지 않다. 연구자들도 어떤 게 효과를 내는 '진짜 표준'인지 구분해내기 어려운 정도다. 결국 아쉬움은 소비자에게 남는다. 호산본초표본박물관은 누구도 이러한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세워지는 곳이다.
김호철 교수는 호산본초표본박물관(이하 본초박물관)에 대해 "이름 그대로 본초 표본을 교육적· 학술적 목적으로 전시, 보관함은 물론 실제 약이 될 수 있도록 분양까지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본초박물관은 석엽(腊葉)표본실, 한약자원 DNA은행, 동의보감소재은행, 표준한약재전시관, 추출물은행 등으로 구성된다. 기기분석, 유전자 분석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가장 정확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표본을 찾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본초(本草)란 생명체의 치료, 예방을 위해 사용하는 천연물을 의미하는데 동의보감에 등록된 천연물만 1233종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표본정리를 해줄 본초표본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다.
본초 표본을 전시하고 관리하는 곳은 한국한의학연구원, 허준박물관 등 몇 곳의 박물관이 있다. 본초박물관은 단순 교육,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박물관들과 달리 효과 있는 표준한약재를 채집하고 실제 사용 가능한 형태로 분양까지 책임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 국가기관과 대형병원, 제약사와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기업 등 총 70여개 기관과 100여명의 개인이 이미 서비스를 제공 중인 동의보감소재은행 회원으로 등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본초박물관의 서비스들은 선별된 표준 본초의 산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호철 교수는 "30년 이상 천연물 연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제대로 된 시료를 연구 가능한 만큼 구하는 일이었기에, 언젠가는 보다 많은 연구자와 기업이 실효성 있는 연구 결과와 상품을 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본초박물관은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공간이 되는 게 목표인 곳"이라고 밝혔다.
◇DB작업으로 천연물 활용도 높여… "더 많은 국민에게 도움되길"
한약처방에 많이 사용되는 당귀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서식하고 겉모습도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당귀는 '참당귀 (Angelica gigas)', 중국은 '중국당귀(A. sinensis)', 일본은 '일당귀(A. acutiloba)'로 모두 다른 식물종이다. 원산지에 따라 약효도 큰 차이가 난다.
본초박물관은 당귀와 같이 매우 유사하지만, 분명히 다른 천연물들을 정확히 분석하고, 분석결과를 DB로 만들어 본격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2012년부터 동의보감 소재은행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고 있는 천연물 DB에는 천연물의 산지 정보, 추출방법, 성분, 함량, 유전자 분석결과 등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본초박물관이 개관하면 DB업데이트 속도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정확한 천연물 정보를 확인하고,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과 건강기능식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호철 교수는 "본초박물관이 자리 잡게 되면 학술적인 가치도 크겠지만, 표준화된 천연물을 대량공급할 수 있게 돼 산업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호철 교수는 "본초박물관이 천연물 연구의 거점센터가 되어 많은 연구자와 기업, 더 나아가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경희대학교 호산본초표본박물관 개관은 천연물 연구개발 벤처기업인 뉴메드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뉴메드와 김호철 교수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2021년부터 2027년까지 7년간 총 1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