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건우병원 원장… 메디컬 에세이 통해 '발'에 관한 직설
산티아고 순례길 떠나려는데 무지외반증이 있으면 난감하다.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무지)이 휘는 질환이다. 통증으로 걷기 힘들고, 무릎·허리·목도 불편하다. 몸 전체가, 일상이 무너진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그냥 포기하고 말까. 오랜 ‘로망’인데……. 연세건우병원 박의현 원장이, 메디컬 에세이 ‘나는 발만 보기로 했다’를 통해 전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로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산티아고? 그때 무지외반증 환자 아니었나?
박 원장이 언젠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한 여성이 인사를 건네더란다. 얘기를 나누고 보니 박 원장에게서 무지외반증 수술을 받은 환자다. 치료도, 관리도 성실하게 받은 여성은 발도, 몸도 그리고 마음도 건강해졌다.
- 친구와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길이에요.
박 원장은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족부, 그러니까 발 하나만 보고 걸어온 것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출퇴근조차 두려워했던 환자가 강도 높은 도보여행을 떠나는 걸 보고 조금은 으쓱하기도 했다.
'인간의 숙명' 직립을 묵묵히 견디는 발
책 제목처럼 박의현 원장은 발에 빠진 사람이다. 정확히는 족부(발+발목) 치료에 전념해온 정형외과 전문의다. 그는 "족부질환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을 일찍부터 목표로 했다"고 말한다. 하고많은 신체 부위 중에 또 질환 중에 그는 왜 발을 택했을까. 박 원장은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재미는 의학도로서의 흥미를 넘어선다.
직립하니까 사람이다. 앞발이 손으로 진화하는 동안 뒷발은 발로 남는다. 그러나 그냥 남지 않는다. 하루 종일 걷는 사람의 온몸을 지탱해야 한다. 박 원장은 두 발로 서서 걷는 인간의 ‘숙명’과 그 숙명만큼이나 무거운 체중을 견뎌내는 두 발의 '묵묵함'을 얘기했다. 두 발의 '문명사적 매력'이 그를 족부질환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었다. 발만 보고 살게 만들었다.
수술 2만 건 시행한 '족부 질환 스페셜리스트'
인간의 숙명이 직립이라면, 박 원장의 '숙명'은 환자들의 아픈 발을 고치는 것이다. 그는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뒤 발에만 전념했고, 이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뤘다. 17만 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고, 2만 건 이상의 족부 수술을 시행했다. 다양한 족부질환 중 하나인 무지외반증의 국내 수술 통계만 봐도 확연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통계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있었던 무지외반증 수술 가운데 23퍼센트가 박 원장의 병원에서 이뤄졌다. 기록적인 수치다.
그러나 그의 자전적 메디컬 에세이 '나는 발만 보기로 했다'의 행간에 스며든 그의 삶은 순간순간 '의료'를 뛰어넘는다. 발 하나에 전념해온 그의 단아한 마음은 때론 인문학 하는 사람의 사유처럼 넓게 펼쳐지고, 때론 서정에 취한 사람의 심성처럼 깊어진다. 고생물학 전문가와 공룡·인간의 발자국에 대해 얘기 나누며 삶의 '흔적'에 대해 고민하는 그는 영락없이 인문학도다. 환자의 주관적 세계에서 울려나오는 나름의 '언어'로 통증을 정의할 때 박 원장은, 단어 하나하나의 음절에 귀 기울이는 시인이다.
한 분야를 깊이 궁구(窮究)하다가 만사에 정통(精通)하는 경우가 있다. 발에 대한 박 원장의 깊고 오랜 관심은, 만사는 아닐지라도 복잡한 세상사의 몇 가지 본질에 파고들 의지와 직감을 스스로 흔들어 깨워놓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