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체조, 그 험난하고 유쾌한 역사에 대하여

입력 2020.10.20 17:37

 
유튜트 썸네일
국내 최고 의료포털 헬스조선이 유튜브 구독자 10만 돌파를 기념하며 선보인 ‘좌우남녀노소 쉽게 따라할 수 있는-국민체조 8비트’ 영상. /헬스조선 DB

2020년 늦가을, 유튜브 인기 영상 중 하나가 ‘국민체조’란 사실은 기이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유튜브만큼 치열한 콘텐츠의 격전장이 없다. 신경 회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온라인의 망(網) 위로, 계급장을 뗀 아마추어와 프로의 영상들이 명멸한다. 조회수와 구독자수를 놓고 벌이는 개인과 법인들의 격전은 가히 세계 대전이다. 그렇게 창의와 자본이 한데 얽혀 벌이는 불꽃 전쟁 속에서 ‘국민체조’의 선전은 무엇 때문일까. 영상의 내용, 세련도의 측면에서 기껏해야 구시대의 유물일 뿐인데.

조회수 500만 국민체조 영상… 이쯤 되면 ‘전설’

유튜브에서 국민체조를 검색하면 형식을 달리한 ‘국민체조’들이 수두룩하게 뜬다. 가장 상위, 원본에 가장 가까울 것이 분명한 ‘국민체조-다시보기’는 조회수 530만을 넘겼다. 바로 밑엔 국가대표 체조선수들의 시연 영상이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국민체조들이 뒤를 잇고, 그 중엔 오래 전 유행한 ‘졸라맨’ 버전도 있다.

급기야 국민체조 2배속, 3배속 영상까지 인기몰이를 한다. 다양한 국민체조들이 일제히 수만~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참 이상하다. 구시대의 대표적 집단 체조에 대한, 집단적 시대착오 아닐까.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던 역주행, 그것도 수십 년의 세월을 뒤집는 역대급 역주행이다.

 
국민체조의 탄생을 알린 1977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 기사
국민체조의 탄생을 알린 1977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 DB

43년 전 새마을운동 시대 ‘고전적 체조’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1977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은 ‘새 국민체조 확정’ 제목의 기사로 국민체조의 출범을 알린다. 대한체육회 사회체육위원회가 국민체조를 ‘제정’했고, 그 다음 달인 4월부터 “각급 학교 및 직장을 통해 전국에 보급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덧붙여 언급된 취지에는 ‘새마을운동’이 등장하기도 한다. ‘새마음운동’도 있었나보다.

“체육의 생활화를 기하고 국민체위를 향상시켜 건전한 사회기풍을 조성함으로써 새마음운동, 새마을운동에도 기여하기 위한 것.”

그런데 국민과 사회를 위한 체조는 ‘새마을운동에도 기여하기 위한’ 국민체조가 처음은 아니었다. 국민체조의 특성을 전하면서 기사는 국민체조의 간략한 전사(前史)를 알려준다.


신세기체조 → 재건체조 → 국민보건체조

국민체조 이전, 신세기·재건·국민보건체조의 ‘실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사는 다만 “(과거 체조들의) 동작을 가급적 피하고”라고 적는다. 국민체조와 그 이전 체조들의 모습이 사뭇 다를 것임을 짐작케 한다. 국민체조가 당시로선 상당히 획기적인 동작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국민체조는? 간단하다, 운동량이 크다, 그리고…

전 시대의 체조들과 차별화를 선언하며 탄생한 총 소요시간 4분 25초의 국민체조는 그래서 과연 어떤 특성을 가졌을까. 기사가 요약하는 새 체조의 특성은 지극히 간략하다.

⓵ 간단하다.
⓶ 운동량이 크다.
⓷ 실시자가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다.

단순명쾌한 기준이다. 그런데 이후로 40년 넘게 이어진 국민체조의 영속을 설명해주는 건,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최소의 기준이 아닐까. 군더더기 없는 기준으로 만들어낸, 군더더기 없는 동작의 군더더기 없는 체조……. 그러나 그 기준을 가만 들여다보면 사실 난감하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간단하면서도 운동량이 큰 동작을 고안하고 채집하는 건 대단히 정교한 관찰과 지리한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과거 체조들의) 동작을 가급적 피하고”란 해설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얘기다. 국민체조는 과거 체조들의 번잡한 요소들을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떼어내는 방식으로 탄생했다.


덩더꿍체조에서 새천년건강체조까지 쏟아진 도전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체조는 탄생 이후 43년 간 수많은 도전을 받는다. 일단 세월 자체가 생존을 담보하기엔 너무 길다. 1970년대 유신의 시대에 만들어진 무언가가, 정치와 사회와 문화의 대격변을 겪은 뒤 살아남은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게 변하지 않았나. 변했다기보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나. 세상의 급변과 오랜 세월을 동시에 관통해내는 건 지난한 일이다. 게다가 단순명쾌의 미덕을 지녔다고는 하나, 국민체조에 군사문화의 잔재가 묻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체조에 녹아난 절도 있는 호령과 단선율의 음악은 사실, 군대 연병장에 가장 잘 어울린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명백히 단점이다.

구체적인 도전들이 있기도 했다. 다양한 버전의 체조들이 세련과 과학으로 무장한 채 국민체조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덩더꿍체조, 청소년체조, 건강생활체조, 새천년건강체조에 늘품체조까지 ‘첨단 인체 과학’의 세례를 받은 동작들이 국민체조의 원형적이고 단순한 동작을 위협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국민체조는 그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끝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얼마 전엔 ‘해외 수출’이라는 쾌거까지 달성했다.


국민체조의 끝없는 진화, 그리고 ‘8비트 국민체조’

국민체조의 생존과 약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국민체조 자체의 끝없는 변신 노력이다. 국민체조는 그 동안 단순한 동작은 최대한 보존하되 다양한 버전을 선보이는 방법으로 진화했고(체조선수들, 애니메이션, 2배속, 3배속 등등), 급기야 ‘8비트 국민체조’까지 등장했다. 국내 최고의 의료포털 헬스조선이 자사 유튜브 채널 구독자 10만 돌파를 기념하며 내놓은 영상이다.

디자이너 유채영 씨가 제작하고 20일, 헬스조선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좌우남녀노소 쉽게 따라할 수 있는-국민체조 8비트’는 어쩌면 43년 전 만들어진 국민체조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버전일지 모르겠다. 지극히 기본적이고 단순한 동작으로 만들어진 ‘전설의 국민체조’를, 지극히 기본적이고 단순한 8비트의 디자인으로 재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민체조의 진화는 끝없을 것이다. 무릇 원형(原型)은 시대를 타지 않고, 자신의 족적을 아주 길게 멀리까지 펼쳐놓는 법이니까.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는 법이니까. 한국 현대사를 은밀하게 관통한 우리의 국민체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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