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 관리 '10년째 제자리'
◇소비자 측, "약국 가져가면 난색 표한다"
국민권익위는 작년 말, 국민 181명에게 폐의약품 처리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의 54%가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고 했다. "약국이나 보건소에 배출한다"는 답변은 26%에 불과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약국 현장이 이유를 알려준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용준(25)씨는 얼마 전 집에 있던 폐의약품을 버리기 위해 동네 약국에 들어갔다가 약사의 싫어하는 내색이 불편해 그냥 나왔다. 김 씨는 "괜히 미안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약을 사면서 말을 건 뒤 폐의약품을 버린 적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동네 약국들 중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세요"라고 말하며 폐의약품을 가져온 소비자들을 돌려보내는 곳도 있다.
◇약사 측, "정기적 수거 안 되면 운영 어려워"
약사들만 탓해야 할까. 약사들은 '지자체의 협조 부족'을 얘기한다. 중앙약국 이준 약사는 "과거에는 폐의약품 수거함에 약을 모아두면 지자체에서 그때그때 수거해갔지만, 언제부턴가 뜸해졌다"고 말했다. 압구정스타약국 이보현 약사는 "정기 수거가 이뤄지지 않으면 보관할 장소도 부족하고, 악취가 발생한다"며 "돕고 싶어도 도울 여건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선 약국들은 지자체의 협조 없이 폐의약품을 자체 처리할 수 없다. 그러나 폐의약품 수거와 관련한 조례를 갖추고 있는 지자체는 드물다. 국민권익위 조사 결과, 전국 228개 지자체 중 관련 조례를 갖춘 곳은 74곳에 불과하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폐의약품 수거를 정례화하지 않으면 약국의 부담이 심하다"며 "결국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데 폐의약품 수거를 약사회의 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자체·약국은 '핑퐁', 정부는 '나 몰라라'
4월 국민권익위의 권고 이후 지자체들은 각 지역 주민센터에 폐의약품 수거함을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주민센터의 폐의약품 수거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각 동에 하나뿐인 주민센터로는 약국들이 감당 못하는 폐의약품을 모두 수거하기에 역부족이다.
정부부처들은 이미 발을 뺀지 오래다. 환경부는 폐의약품을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분류해 반드시 소각 처리하도록 규정은 했으나(폐기물관리법), 폐의약품 수거는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폐의약품 수거는 환경부 주관으로 지침을 마련해 지자체에서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명확한 관리 주체가 없다보니 폐의약품 수거·폐기 등과 관련해 전국적인 관리·감독도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에서는 정부·제약사가 부담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담당하는 제약사가 폐의약품 수거 관리 주체에서 빠져있는 것도 문제다. 해외에서는 정부와 제약사가 공동 혹은 단독 부담하고 있다. 미국은 제약회사와 중앙정부의 마약단속국이 공동 부담하고, 캐나다와 프랑스는 제약사가 단독으로 부담한다. 폐의약품 관리 체계가 확립된 것으로 평가받는 프랑스는 판매량 기준으로 부담 비율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호주는 중앙정부에서 전부 부담한다.
영남대 약학대학 이인향 교수팀은 '국내외 제도 비교를 통한 폐의약품 관리 개선 방안' (한국임상약학회지, 2019)에서 "제약사는 국민과 건강보험체계를 바탕으로 이윤을 얻는 핵심 이해당사자"라며 "폐의약품 관리 개선을 위해 제약사의 적극적인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