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를 돌보는 신경과 교수의 소회- '첩약 급여화' 갈등을 지켜보며

입력 2020.07.22 11:21

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조경희 교수
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조경희 교수/고려대안암병원 제공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오는 10월부터 3년간 뇌혈관질환(뇌졸중) 후유관리,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3개 질환을 대상으로 한의원에 매년 500억 규모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지난 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하여, 오는 24일 본회의에 보고될 전망이다.

뇌졸중 환자들은 다양한 후유증으로 고통받기 때문에, 급성기 치료뿐만 아니라 만성 후유증을 잘 치료해주는 것 역시 뇌졸중을 치료하는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뇌졸중 전문의로서 15년 이상 환자들을 만나온 경험상 뇌졸중 환자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후유증을 꼽으라고 한다면 통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 같이 누가 보기에도 힘든 후유증도 있지만 뇌졸중 환자들은 그에 못지 않게 힘든 여러 증상들을 호소한다.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힘든 점은 약제를 처방할 때 부딪히는 급여의 문제이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통증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약제를 시도해 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떤 약제의 경우 급여 기준에 뇌졸중 후 통증이 빠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급여로 처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일반적인 진통제로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에서는 가바펜틴이나 프레가바린과 같은 신경통증완화제가 통증관리의 핵심이 되나 정작 이들 약제는 급여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의 통증 수준에 맞지 않는 단순 진통제로 충분히 통증을 조절하지 못한 채 버티거나, 아니면 본인 부담이 크더라도 울며겨자먹기로 비급여로 약을 사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 통증이 심한 뇌졸중 환자들은 신경통증완화제 같은 약이 비급여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처방을 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뇌졸중 후 통증 이외에도 급성기 뇌졸중 환자에서 흔히 보이는 어지러움, 구역과 구토, 이로 인한 식욕부진 역시 의사로서 정말 흔하게 마주하는 상황이다. 뇌졸중 환자의 예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수적인데도 불구하고 처방이 필요한 항구토제, 식욕촉진제 등의 약제도 급여가 되지 않아 처방을 망설일 수 밖에 없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환자의 증상 완화를 위해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기본적인 약제조차 급여 기준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처방을 못하거나 당연한 치료에 대한 환자 부담이 높아지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이 약은 뇌졸중 환자에게는 보험급여가 안돼요” 라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증상 때문에 힘드시니까 비급여라도 한번 시도해봅시다” 라고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 속상할 뿐이다. 그 와중에 접하게 된 한방 첩약의 급여화와 관련된 소식은 일선에서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로서 현실적 괴리감에 주저앉게 된다. 무엇이 진정 환자를 위하는 정책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적절한 약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고통 감내하는 환자를 지켜보는 것이 의사로서도 감내하기 힘든데, 당사자인 환자에게는 이런 비합리적인 현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가 걱정스럽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는 질환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사망원인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증 질환이고 또한 재발률이 높고 다양한 후유증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부담과 비용을 높이는 중요한 질환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오는 2025년 국내 인구 100명 중 20명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고령사회에선 뇌졸중 환자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의사 입장에서 첩약의 급여화를 무작정 반대하고 보자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환자들에게 더 합리적으로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한방 첩약이 뇌졸중 치료제로써 건강보험제도권 안에서 포함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환자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는 거쳐야 할 것이다. 그간 다른 치료제에 요구되었던 약제의 안전성 및 유효성이 과학적인 검증 절차로 확인해 환자들이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우선 순위라는 것이 있다. 그저 상식적으로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것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