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석 달이 지났다. 신천지 교인을 만났고, 해외교포와 마주했고, 이태원에서 시작한 잠재적 n차 감염의 현장을 접했다. 코로나19 확진이 본격화한 3월 이후의 일이다. 주말이면 경기도 부천의 선별진료소로 나가 코로나19 진료를 봤다. 주중, 내 삶의 터전인 관절·척추 병원에서 하루 100명 가까운 환자를 본 뒤의 가욋일이었다. 가욋일이었지만 본업만큼 중요했다. 직원들에게 또 지인들에게 코로나 예방을 위한 잔소리를 주문처럼 퍼부었다. 언제부터인가 ‘코로나 어벤저스’란 별명을 얻었다. 부천시 의사회 코로나대책위원회 간사로서 당연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3월 초, 첫 번째 의료봉사를 나갔을 때 일이다. 대구의 신천지 확진자 규모가 정점을 찍을 때였다. 부천시에도 신천지 지회가 있고 3000명 정도의 회원이 있다고 들었다. 이 시기에 검사를 받는 분들은 주로 신천지 교인들이었다. 젊은 청년들은 혹시라도 감염되었을까 불안감에 떨었다. 내가 일하는 곳도 병원이니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환자들을 숱하게 본다. 하지만 다른 분위기였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들 젊은이들이 확진자로 판명된다면? 급격한 호흡 곤란, 이후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확진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들을 진료했다.
4월 중순의 의료봉사도 잊을 수 없다. 이 시기, 선별진료소에는 해외 입국자들이 많았다. 한국말이 어눌한 해외교포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체계적인 선별진료소 시스템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긴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검사장 분위기에 적응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긴장만큼이나 나도 긴장했다. 그들이 머물던 나라와 한국의 코로나 대처 방식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들의 ‘심리적 방역’을 위해서도 진료 내내 신경을 써야 했다.
5월 말 의료 봉사 때는 낮 기온이 27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런 날 두터운 방호복은 재앙이다. 검사를 진행하기 힘들었다. 부천에도 이미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다. 전 연령 층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았다. 평소에는 보건소에서 예약제로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날부터 코로나 의심자는 바로 방문해서 검사를 결정하고 진행했다.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감염은 인천의 학원 강사를 거쳐 부천까지 왔다. n차 감염의 불안과 우려는 지역 사회를 패닉으로 몰았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나는 다시 현업으로 돌아와 근무하고 있다. 진료실에 있으면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코로나 의심자와 의료진 그리고 보건소의 직원들. 특히 부천시 보건소 직원들은 주말도 반납하고 쉼 없이 일했다. 지칠 법도 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합류한 의료진과 굳건한 팀워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부천시의사회 의료진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평일엔 현업에서, 주말엔 당직의로 활동하며 코로나로부터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3월, 대구에서 감염이 ‘폭발’했을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단체가 대구시 의사회였다. 질병관리본부와 의협만의 힘으론 어느 것 하나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역의사회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했다. 감염에 대한 대비는 일상적이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염 예방을 위해 힘쓴 분들 덕분에 지역사회의 의료 대처능력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코로나는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 같다. 우한에서 시작한 것이 전 세계로 퍼졌듯이, 어느 한 나라에서라도 코로나가 남아있다면 언제든 다시 주변국으로 퍼질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코로나19와 함께 지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현장에서 노력하는 관계자, 의료진의 노고와 더불어 개개인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감시하자.
스스로 조심하자.
특단의 조치보다 더 중요한 게 일상의 실천 아니겠나.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하고 손소독제 사용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모임을 자제하자.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을 스스로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