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석원 화가

꽤나 오래전 일이지만 2000년대 초반의 늦가을, 조선일보 문화면에 술과 안주 얘기가 면을 털어 등장한 적이 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폿집 기행' 연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전국의 주당(酒黨)을 들썩이게 한 초유의 술집 탐방기를 쓴 이는 화가 사석원(59)이다. 기행을 핑계로 들른 대폿집 안주 가운데 하나였을까. 세밑, 서울 방배동 사석원의 작업실에 갔다가 김치찌개 얘기에 푹 빠졌다. 그냥 김치찌개일 리 없다.
"비계와 껍데기가 중요하죠. 돼지고기를 씹을 때 느낌이 다르니까요. 껍질을 툭 깨물면 비계가 확 터지면서 피로가 싹 가시는…."
그러니까 사석원의 소울푸드는 이름이 좀 길다. '껍데기가 꼭 붙어 있어야 하는 돼지비계 김치찌개'. 게다가 삼겹살은 안 되고 사태여야 한다. 힘줄 씹는 맛을 포기할 수 없으니. 그런데 껍질 붙은 채 비계 풍성하면서 힘줄 적당한 사태를 어디서 구하나.
"동네 정육점에 엄살을 떨어놨죠. 살코기를 너무나 싫어한다고."
어릴 적 할아버지가 즐기던 음식이다. 그 땐 총각김치도 들어갔다. 폭 익은 무와 색 바랜 무청이 껍질·비계 탱탱한 돼지고기 사이로 삐죽했다.

"외국서 전시 마치고 돌아오면 첫 끼니는 늘 돼지비계 찌개입니다. 말 안 해도 집사람이 준비해 둡니다."
이런 입맛은 시대를 넘어 대물림된다. 김치찌개를 두고 아이들과 한 상에 앉으면 비계 쟁탈전이 벌어진다.
"뿌듯하죠. 내 유전자를 받은 아이들이 맞구나 하는…."
전국의 후미진 골목을 지켜주던 대폿집들은 십 수년 전의 대폿집 기행과 함께 사라졌다. 추억의 허기를 달래며 사석원이 요즘 헤매는 곳은 시장이다. 일주일에 한 번, 신새벽의 노량진 수산시장과 마장동 축산시장을 찾는다. 사기도 하고, 구경만 하다 돌아오기도 한다. 화가의 눈앞으로 펼쳐지는 생선과 고기들의 향연. 무릇 미식가는 색(色)과 향(香)으로도 즐겁다.
☞ 화가가 돼지고기 한 조각을 질끈, 깨무는 순간 콜라겐(껍질)-지방(비계)-단백질(살코기)이 차례로 허물어진다. 쾌감 속에서 화가의 몸은 아미노산(콜라겐·단백질)과 지방산(지방)의 유입을 기대한다. 각종 무기질로 무장한 배춧잎의 가세. 느끼한 끼니 후의 귀국길 아니어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