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약 경고? 병원 처방 다 바꿔주려면 일 못해요"

입력 2019.12.17 09:20

[藥에 멍드는 노인들] [2] 겉도는 '약품 안전 서비스'
약사들, 병원 통화 어려움 호소… 약력 정보 부족… 일일이 물어봐야
'의무' 아니라 지키지 않는 곳 태반… 주치의·단골약국 등 개선책 필요

"중복 처방이 의사 컴퓨터에서 저절로 걸러져 불가능 할텐데요?"

'약에 멍드는 노인들' 시리즈 1회 기사를 본 한 독자의 반응이다. 이 독자는 "노인 10명 중 5명이 5개 이상의 처방 약을 복용하며, 이들 절반에서 동일 성분 중복·노인 주의 약물 처방이 발견됐다"는 내용에 의아함을 표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관리하는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이하 DUR·Drug Utilization Review)'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DUR은 환자들에게 부적절한 약이 처방·조제되지 않도록 예방해주는 전산 시스템이다. 중복 처방이나 노인·소아·임산부 등 특정층에 위험한 처방, 1일 최대 투여량을 초과하는 처방 등을 체크해 의사와 약사의 PC에 팝업창으로 실시간 고지해준다. DUR의 경고에도 특정 약을 쓰려면 사유를 기재해야 한다. DUR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적절한 처방을 걸러내지 못한다.

◇처방 변경 않고 무시… DUR 의무 아냐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총 7983만 여 건의 DUR 경고 중 실제 약물 변경으로 이어진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10건 중 9건의 변경 요청이 '무시'된 것이다. 그 중 처방의 변경률이 가장 저조한 유형은 '노인 주의' 약물이다. 2.9%만 반영됐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면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에서 검토해 '동일 성분 약이 처방된 적이 있으니 변경하라'는 경고 팝업창이 모니터에 뜬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면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에서 검토해 '동일 성분 약이 처방된 적이 있으니 변경하라'는 경고 팝업창이 모니터에 뜬다. 그러나 실제 처방 변경으로 이어진 경우는 10건 중 1건에 불과했다. /게티이미지뱅크
DUR 무력화의 첫번째 이유는 법령의 미비에서 찾아진다. DUR이 '금기' 팝업을 띄워도 사유를 기재하면 DUR의 경고를 무시해도 무방하다. 단순 '주의' 메시지일 경우, 사유 기재 없이 처방해도 된다. 한 마디로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다.

의사나 약사가 DUR의 경고 팝업을 무시하고 처방을 변경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시간을 들여 약물을 변경한다고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심평원 DUR관리부 이성훈 차장은 "많은 환자를 진료하느라 바쁜 의료 현장에서 DUR을 자세히 볼 시간이 없는 것 같다"며 "DUR 시스템을 끄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병·의원도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적절 약물이 점검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DUR 활용을 의무화 하자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제한적 정보… 전문가 소통 불가능

약국 현장을 보면 DUR 활용의 의무화가 중복 처방, 부적절 처방을 막아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서울 대형병원 근처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위장약처럼 '그냥 깔아주는 약'들에 대한 경고가 수시로 DUR에 뜨지만 무시하고 넘어간다"며 "약을 변경하려면 병원에 전화해 사유를 설명하고 답을 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통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DUR의 제한적인 정보 제공도 문제다. 모 종합병원 가정의학과장은 "DUR에는 'A와 B 약이 중복입니다'라고만 뜨고 환자가 실제 먹고 있는 약들을 일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서 "약을 재정비 해드리고 싶어도 타병원에 전화해 일일이 물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환자들이 "중복이어도 그냥 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노인 환자가 거동이 어렵거나 요양원에 거주해 대리인이 여러 병·의원에서 약을 처방 받는 경우, 대화를 통한 최소한의 확인도 어렵다. DUR 활용이 의무화돼도, DUR이 온전히 기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약력 안 뜨는데 노인 환자는 의료쇼핑

노인 환자들은 대개 다양한 만성 질환을 앓고 이 병원·저 병원, 이 약국·저 약국을 돌며 한 달에도 몇 개의 약 처방전을 받는다. 약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를 복용했는데, 부작용으로 고혈압이 나타나 칼슘 채널 차단제를 처방 받는다. 이 때문에 발목 부종이 나타나 이뇨제를 복용했더니 통풍이 생기는 식이다. 약물 이상 반응을 인지하지 못한 환자들은 정작 '나이가 들어 또 어디가 아픈가보다' 생각하며 다른 약을 또 처방 받는다. 약 처방의 악순환이다.

전문가들은 DUR의 한계를 인정한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말한다. 한국병원약사회 서예원 노인약료분과장(분당서울대병원)은 "주치의와 단골약국 등 노인의 약물 복용을 관리할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DUR도 노인 주의 약물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환자 동의를 얻어 전체 약력을 확인하고, 전산 시스템에서 의료진 간 소통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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