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태원 회장의 신약 개발 투자가 첫 결실을 맺었다. SK의 100%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이 전과정을 독자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가 22일 새벽,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번 성과는 최태원 회장이 27년간 바이오 개발에 대한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SK는 1993년 대덕연구원에 연구팀을 꾸리면서 불모지와 같았던 제약사업에 발을 들였다. 고령화로 제약∙바이오 사업은 고부가 고성장이 예상되고, 한국 ‘신약주권’을 향한 의미 있는 도전을 하자는 취지였다.
신약개발은 통상 10~15년의 기간과 수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1만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이 실패 확률이 낮은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SK는 신약 개발에만 매달렸다. 단기 재무성과에 목마른 기업 입장에서 큰 결단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최 회장의 비전과 확고한 투자 의지였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6년 6월 경기도 성남시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1993년 글로벌 신약 개발에 도전한 이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했다”며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룹시다”고 격려했다.
최 회장은 꾸준한 투자로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을 키워낸다는 비전이었다. 이에 따라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직을 2002년 통합해 신약 연구에 집중케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개발 조직을 따로 분사하지 않고 지주회사 직속으로 둬 그룹 차원에서 투자와 연구를 지속하게 한 것 역시 최 회장의 신약 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약 개발이야말로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비전이 담보돼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최 회장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수천억 규모의 투자를 지속했다.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했던 SK의 첫 뇌전증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2008년 출시 문턱에서 좌절됐을 때에도 최 회장의 뚝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에 SK바이오팜의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의 연구개발(R&D) 조직을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이때 역량을 강화했던 SK라이프사이언스가 이번에 FDA 승인을 얻은 엑스코프리의 임상시험을 주도했고, 발매 후 미국 시장 마케팅과 영업까지 도맡을 예정이다.
이후 SK는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최 회장은 의약품 생산 사업에도 공을 들였다. 2015년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했다. SK바이오텍의 전신인 원료의약품 생산사업부가 1998년부터 특허 만료 전의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을 글로벌 제약사들에 수출해온 경쟁력에 주목한 것이다. SK바이오텍은 2017년 글로벌 제약사인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통째로 인수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이 해외 생산설비를 인수한 최초 사례였다.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인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하는 글로벌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올해 10월에는 의약품 생산법인 세 곳을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했다. SK바이오텍과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등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시너지와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포석이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이항수 PR팀장은 “SK의 신약개발 역사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혁신을 이뤄낸 대표적 사례”라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사의 등장이 침체된 국내 제약사업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