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사고, SNS 타고 퍼진 공포… 일상 방해하면 '병'

입력 2019.06.21 09:08

현대인 공포증

회사원 김모(35)씨는 최근 잔인한 살인, 성폭행 사건 등을 뉴스로 접하면서 저녁에는 무조건 집에만 있는다. 범죄의 표적이 될까봐서다. 이로 인해 친했던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간지 오래됐고, 회사 회식도 대부분 빠진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져 걱정됐지만, 공포감 때문에 쉽게 생활 패턴이 바뀌지 않는다.

◇자신과 직접 관련 없는 사건에도 공포

SNS 등 다양한 매체 발달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위험한 사고까지 내 주변 일처럼 쉽게 접하게 되면서 '공포증'으로 인해 괴로운 사람들이 많다. 비행기 사고, 대형 자연재해, 범죄 사건 등 일반적으로 쉽게 겪지 못하는 사건, 사고들에 대한 소식을 수시로, 자세히 알게되기 때문이다.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서호석 교수는 "특히 스마트폰 발달로 자극적인 사건들에 대한 노출이 많아졌다"며 "이것이 공포증을 악화하거나, 없던 공포감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고유정 살인 사건 등 국내 범죄 사건으로 인해 '범죄 공포증'을 갖는 사람도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국내 공포증 환자는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공포증 환자 수는 지난 2010년 3만1424명에서 2018년 4만3863명으로 8년 새 약 40% 늘었다. 공포증은 자신이 느끼는 공포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통제하지 못해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것이다.

SNS 등을 통해 각종 사건, 사고 소식에 쉽게 노출되면서 공포증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
SNS 등을 통해 각종 사건, 사고 소식에 쉽게 노출되면서 공포증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공포증은 방치하면 우울증, 공황발작까지 악화되기 쉬워 증상 완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내버려 두면 공황발작·우울증까지

공포증을 내버려 두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갈수록 증상이 악화된다. 동국대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성민 교수는 "공포증 환자는 공포 대상을 회피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증상 강도가 세지고 심하면 공황발작까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공포증이 우울증이나 범불안장애(매사에 불안함을 느끼는 질환) 등 다른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재진 교수는 "특히 사람 많은 곳을 두려워하는 '광장 공포증' 환자는 사람을 회피하면서 고립되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을 느끼며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포증 초기에는 자신의 성향으로 치부하다가, 점차 증상이 심해져 삶의 질이 떨어지고 다른 정신과 질환이 동반되면 그제야 병원을 찾기 쉽다. 실제 공포증은 청소년기부터 20대에 가장 흔히 발생하는데,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기준 국내에서 공포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가장 흔한 연령대는 남녀 모두 중장년기인 40대(총 1만514명)였다.

◇범죄 공포 심하면 'SNS 중단' 고려

김씨 같은 범죄 공포증 완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호석 교수는 "범죄에 대한 일정 수준의 공포는 자기 보호에 도움되지만, 일상까지 지장이 생기면 문제인 것을 알고 증상 완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지 않고, 집 문을 걸어 잠그고, 낮선 사람과 둘이 엘리베이터 탑승하는 것을 꺼리는 정도까지는 정상이다. 하지만 김씨처럼 과도하게 집에만 있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시도조차 못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면 증상 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서 교수는 "이럴 때는 범죄 피해자가 될 확률이 객관적으로 높지 않다는 사실을 되뇌고, SNS 중단 등을 통해 공포감을 조장하는 사건, 사고 뉴스를 한동안 끊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외출이 어려운 사람은 친구와 동행해서라도 외출을 자꾸 시도해야 한다. 외출해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인식하고 체감할수록 공포감이 줄어든다.

비행기 사고, 교통 사고 등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려면 역시 공포 대상을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김재진 교수는 "예를 들어 비행기 공포증이 있으면 한 시간 정도의 단기 비행이라도 자주 시도하는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성민 교수는 "이런 시도 중 느껴지는 공포감 완화를 위해서는 심호흡, 온몸 근육에 힘을 줬다 빼는 '근육이완요법'을 시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30분 이상씩 달리기, 축구 등 고강도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뇌의 호르몬 분비 균형을 도와 공포감과 불안감을 완화한다.

공포증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극복이 안 되면 병원의 약물 치료나 인지 행동 치료를 고려한다. 약물 치료에는 항불안제 등이 쓰인다. 인지 행동 치료는 공포 대상에 환자를 점차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김재진 교수는 "환자의 60~70% 이상이 증상이 완화될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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