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개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2018 아시안게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무위원장으로 발탁되어 선수들의 신체적 컨디션 관리 및 부상 치료에 매진하며 현장에 머무른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는 선수들의 뒤에서 의무팀 역시 좋은 성적을 내는데 도움이 되고자 힘쓰고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놀란 것은 열악한 선수촌과 의무실 시설이었다. 모기, 벌레의 습격과 선수들이 편히 쉴 제대로 된 침대조차 없는 열악한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환경이었다. 그 와중에 서둘러 의무시설과 한국 의무팀 구성을 세팅해야 했고, 한국 선수들을 위한 현지 병원 선정과 유사시 국가대표 선수들의 응급치료가 가능한 모든 과정들을 미리 준비해둬야 했다. 개막식 직전까지 막바지 훈련 도중 부상에 시달리고 있던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한민국 의무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들이 새벽까지 치료에 몸을 아끼지 않으며 선수들과의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개막식 다음날 열린 펜싱 경기에 팀닥터로서 코트를 지켰다. 펜싱은 대한민국 금메달 유망 종목으로 리우올림픽(2016)에서 “할 수 있다” 기적의 승리로 유명세를 탔던 박상영 선수의 남자 펜싱 경기도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박상영 선수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고질병이던 무릎 통증과 함께 근육 경련이 발생하면서 경기장에 주저 앉고 말았다. 박상영 선수 치료를 위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회 규칙상 현지 의료진들이 1차 투입되고 우리나라 의무팀은 이를 뒤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 의료진이 하는 것은 고작 얼음 주머니를 대주는 것 외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것을 보다 못해 주심에게 우리나라 의무팀을 투입시켜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고 주심이 이를 허용하자마자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빠른 처치를 통해서 통증과 경련을 해소시켜 주었고, 경기로 복귀시킬 수 있었다.
경기 도중 응급 상황에서 선수의 응급 조치를 3분 이내에 완벽히 이뤄내 코트로 복귀시키는 것은 팀닥터로서의 능력이자 최우선 자질로 꼽힌다. 또 스포츠 닥터의 손길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기술들이 몇 가지 있는데, 소위 말하는 ‘쥐가 났다’고 하는 경우 근육 경련을 빠르게 풀어주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다시 경기를 하던 박상영 선수의 반대편 무릎에서 또 경련과 통증이 발생했다. 경기장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하는데, 다시 현지 의료진에 의해 저지당했다. 결국 현지 의료진들은 박상영 선수의 증상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 채 경기를 속행시켰다. 주심은 한국 의무팀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원래 펜싱 룰 자체가 팀닥터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경기장 진입은 불가능하다.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그 순간 우리나라 의무팀이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었다면 박상영 선수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이번 2018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의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가 기존보다 크게 향상되었다. 통계적으로 과거 아시안게임 대비 2배 이상 많은 선수들이 의무팀을 찾아오고 있고, 다른 어느 대회보다 닥터-치료사-트레이너들 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면서 전방위적인 선수 보호 시스템이 가동된 첫 대회이다. 의무위원장으로서 선수들의 신뢰만큼 큰 보상도 없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이 생기고 있는 대회다. 대회 첫날부터 큰 부상이 발생했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우슈의 미녀검객 서희주 선수는 연습 중 무릎에 큰 손상을 입고 의무팀을 찾아왔다. 현지 협력 병원과의 연계를 통해 MRI 바로 촬영하였는데, 십자인대 파열이 확인되었다. 경기 속행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려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권하며 4년 뒤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의무팀을 이끌다 보면, 이런 힘든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4년의 기다림이 얼마나 큰 것인기를 알기에, 가능한 선수들을 회복시켜서 어떻게든 메달을 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의무팀은 의무실에서의 진료와 치료뿐 아니라 경기 현장에도 파견을 나가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카바디 남자 준결승전이 있었다. 경기 스케줄이 급격히 변경되어서, 오전에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오후에 준결승을 치루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루 두 경기를 치뤄야 하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한국 의무팀은 즉각적으로 의무위원장과 수석치료사를 동시에 파견하는 지원책을 내놓았다. 의무위원과 수석 트레이너가 동시에 지원을 나가는 경우는 아시안게임 어떤 인기 종목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의무지원인데, 그 이유는 1000명 가까운 선수단에서 의료진은 7명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 중 2명이 한 종목에 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카바디 팀은 흔한 실업팀 하나 없고, 훈련장은 물론 트레이너조차 없을 정도로 기본적 지원이 열악한 소외 종목이다. 정식 종목임에도 소외 종목의 설움을 딛고 종주국 인도를 격파하고 준결승까지 올라온 청년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 나와 함께 수석 트레이너가 동시에 시합장으로 나가서 모든 의무지원을 제공했고, 이들은 승리하여, 결승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은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룩했다. 무명 청년들이 따낸 은메달은 그 어떤 것보다 값졌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의무지원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의무팀은 현재도 펜싱, 하키 소프트볼, 레슬링, 태권도, 수영, 소프트볼 등 다양한 종목에 전방위 지원을 펼치고 있다. 메달을 위해 열심히 뛰는 선수들 뒤에는 대한민국 의무팀을 비롯해 코칭 스텝 등 숨은 조력자들이 제 3의 선수라는 각오로 열심히 뛰고 있다. 때문에 매일 밤 11시까지도 진료가 계속되는 진풍경이 연출되는 것이 흔한 일상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승전보를 위해 선수들을 치료해 다시 코트 위로 돌려보내는 대한민국 의무팀 모두를 응원한다. 아시안게임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메달 획득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돌아갈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의무팀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