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3.20 08:00

흥미로운 약 이야기

마취 없는 수술, 상상이 되는가. 그러나 불과 170년 전까지 수술은 마취 없이 진행됐다. 많은 환자가 살을 가르고 수술을 할 때의 엄청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쇼크로 사망했다. 아산화질소, 에테르, 클로로포름 등의 마취제는 언제 어떻게 개발됐을까.

마취받는 남성

◇마취제 없던 시절… 고육지책으로 아편·대마초 사용

고대 로마의 황제 네로의 주치의 디오스코리데스는 당시 ‘마법의 식물’로 불리던 맨드레이크(만드라고라)를 포도주에 넣어 끓여 먹이면 감각이 마비된다고 했다. 1025년 이슬람의 의학자 이븐 시나는 대마·독미나리·맨드레이크·사리풀 등의 약초를 가루로 만들어 물에 푼 뒤, 스펀지에 적셔 수술받는 환자에게 흡입하게 했다. 1800년대 초반 유럽에서는 아편의 소비가 급증했다. 출산·수술 시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편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이 사용해서 장기 기능이 마비돼 수술이 더 위험해지기도 했다. 여전히 ‘수술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환자가 많았다.

19세기 말 영국의 발명가 험프리 대비는 아산화질소를 마시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내고 ‘웃음가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웃음가스는 병원이 아닌 유랑극단에서 먼저 쓰였다. 당시 풍선 하나에 담긴 아산화질소의 가격은 25센트. 관객들은 아산화질소를 마시고 흐느적거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쇼에 참가했다. 웃음가스 쇼는 당시 신문에 날 정도로 유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쇼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도 전해졌다. 1844년 미국의 치과 의사 호러스 웰스는 우연히 찾은 유랑극단에서 이상한 광경을 봤다. 웃음가스를 마신 관객이 의자에 부딪혀 머리에 피가 나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풍선을 사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확인했다. 이후 환자를 대상으로 아산화질소를 마취제로 사용한 수술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를 뽑을 때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나중에서야 환자는 웰스에게 자신이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산화질소가 마취제로 쓰인 공식적인 기록은 20년 뒤에 나온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치과 의사인 가드너 콜턴이 아산화질소를 마취제로 사용했다. 콜턴은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가스 주입 장치로 개량했다. 이후 아산화질소는 20세기 중반까지 마취제로 사용됐다.

◇환각파티에 쓰이던 ‘에테르’,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로

또 다른 마취제인 에테르는 19세기 중반 환각물질로 먼저 사용됐다. 당시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에테르를 맡고 환각에 빠져서 노는 에테르 파티가 유행했다. 외과 의사 크로퍼드 롱 역시 이 파티에 참가했다. 그는 여기서 에테르를 마신 사람들이 부딪히거나 다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 파티에서 만난 한 학생은 목에 종양이 두 개가 있었다. 이 학생은 수술이 무서워 종양을 제거하지 않고 있었다. 롱은 1842년 그를 메테르로 마취한 다음 통증 없이 종양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마취 성공 사례를 학회에 발표하지 않아 마취제를 사용한 최초의 수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버드대 의대의 찰스 잭슨 교수 역시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학생인 윌리엄 모턴에게 에테르를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해보라고 권했다. 야심 많은 모턴은 에테르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1275년 스페인의 연금술사 레이문두스 룰리우스가 처음 발견하고, 1540년 독일의 과학자 발레리우스 코르두스가 발명한 이 물질에 특허를 낼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모턴은 에테르 냄새를 없애는 첨가제를 넣고 ‘레테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46년 모턴은 자신이 발명한 레테온을 환자의 코에 주입하고, 동료 외과의사인 존 워런과 함께 환자의 목에서 고통 없이 종양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 수술은 공식적으로 이뤄진 최초의 전신마취 외과 수술로 기록됐다.

그러나 레테온으로 명예를 얻은 모턴은 돈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레테온의 화학 성분을 비밀에 부치려 했지만, 이내 레테온의 진짜 성분이 에테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결국 미국 전역에서 에테르를 사용한 수술이 진행됐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에테르는 수술용 마취제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사용한 ‘클로로포름’

모턴이 최초로 전신마취 외과 수술에 성공한 지 1년 만에 또 다른 마취제가 개발됐다. 에테르는 마취 효과가 확실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할 때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에테르를 사용했지만, 산모들이 에테르 냄새를 맡고 토하기 일쑤였다. 결국 1847년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은 클로로포름이 냄새가 약하면서 무통분만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클로로포름은 당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출산에도 사용됐다.

빅토리아 여왕이 세 자녀를 낳는 동안 아무런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클로로포름은 치명적인 심부정맥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 1930년 미국을 시작으로 클로로포름은 완전히 퇴출됐다.

◇‘자백 약’부터 ‘프로포폴’에 이르기까지

에테르는 냄새 외에도 마취에 걸리는 시간과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정맥으로 주사하는 ‘티오펜달’이 개발됐다. 주사액이 투여되면 45초 만에 마취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티오펜달은 마취 지속시간이 짧아 주로 단시간 수술에만 쓰였다. 오히려 티오펜달이 요긴하게 쓰인 곳은 병원이 아닌 미국 경찰과 중앙정보국(CIA)이었다. 범죄 혐의자에게 티오펜달을 주사하고, 용의자는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나 1963년 미국 대법원은 ‘자백 약’으로 얻어낸 정보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고, 티오펜달은 자리를 잃었다.

1956년 새로운 흡입 마취제 할로탄이 개발돼 에테르와 티오펜달을 대체했다. 마취와 회복시간이 짧으면서도 티오펜달과 달리 마취 지속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간 독성 및 심장근육 억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1980년 개발된 이소플로렌에 다시 자리를 내줬다. 이어 1983년에는 프로포폴이 개발됐다. 몇몇 부작용이 문제가 되지만, 프로포폴은 현재 가장 효과적이면서 안전한 마취제로 널리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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