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量에서 質을 넘어…병원도 格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고급호텔 서비스를 병원에 접목한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김진영 교수

병원에도 ‘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학교수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김진영
교수(의학교육학과)다. 김 교수는 호텔과 병원은 같은 산업에서 출발했다면서 이제 병원도 호텔 등의 고품격 서비스를 접목해 격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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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병원)이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유명한 동영상이 있다. 약 4분 분량인 이 동영상의 이름은 ‘공감(empathy)’이다. 380만 명이 봤다.
잔잔한 피아노·첼로 연주가 깔린 동영상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환자 수십 명의 모습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이어진다. 29일째 기증받을 심장을 기다리는 고령 여성, 아내의 수술이 잘 끝나 집에 쉬러 가는 남자, 아빠를 마지막으로 면회하고 병원을 나서는 딸…. 의료진도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7년 만에 암을 완전히 떨쳐낸 행복한 남자 의사가 등장하는 반면에, 최근 이혼해 마음이 복잡한 여자 의사도 나온다. 동영상은 이런 내용의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만약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있으려면,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느껴라.’ 환자를 치료 대상으로 보기에 앞서 ‘사람’으로 보라는 메시지다.

“이 동영상은 전 세계 의료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도 이전에는 치료 잘 하는 병원, 수술 잘 하는 병원이라고 병원을 홍보했어요. 이런 방식의 홍보의 한계를 절감하고 ‘공감하는 병원’으로 바꾼 겁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의 입장이 모두 다른데,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고 지금의 표준화된 의료 시스템에서만 보면 개개의 사람이 안 보이거든요.”

호텔과 병원은 똑같이 ‘환대 산업’이다

‘병원의 격’ 강조하는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김진영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삼성그룹에서 인력개발 및 인사교육전략을 수립했다. 호텔신라에서는 서비스드림팀을 이끌었고, 차병원 그룹 ‘차움’ 출범 시에는 특급호텔 서비스를 의료 분야에 적용해 화제를 모았다. 김 교수는 5년 전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병원의 시스템 및 서비스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사고가 일어난 후 3일째인 1월 29일 김 교수를 만났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불행한 사태이지만 지켜야 할 바, 있어야 할 바, 해야 할 바가 무너질 때 사고로 이어지고‘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격은 곧 ‘분수’인데,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김 교수는) 기업과 호텔의 서비스 혁신을 이끌었는데, 병원은 호텔과 다르지 않나요.

“사실 호텔(hotel)과 병원(hospital)은 뿌리가 같습니다. 둘다 환대(hospitality) 산업이에요.호텔의 장점은 서비스가 극도로 발달되어 있는 것인데, 이것을 병원에 이식하면 병원이 달라집니다.”

김 교수는 약 1년 전 출판한 책 ‘격의 시대’에서 “우리 사회는 양(量)의 시대에서 질(質)의시대를 지나 격(格)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격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질의 시대에서 격의 시대로 옮겨 가는 변곡점에 있습니다. 질이 완벽하게 보장돼야 격으로 갈 수 있는데 국내 의료는 질의 상향 평준화가 상당히 이뤄져 있습니다. 이제 선두에 있는 병원은 격으로 옮기지 않으면 계속해서 앞서가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의료에서 질의 시대와 격의 시대는 무엇이 다릅니까.

“의료의 본질은 큐어(치료)였는데, 이제 큐어에서 케어(돌봄)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병원은 의료의 질은 완벽하게 보장하면서 더 잘 케어해주는 병원이에요. 특히 선도 병원은, 질이 어느정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케어가 중요합니다.”

 

의료진은 벽을, 환자는 천장을 본다

의료에서 질과 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치료의 질도 있지만 (안전사고 등) 예방의 질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의료 선진국인 만큼 질은 도달할 만큼 왔습니다. 질의 시대는 기술을 팔았다면 격의 시대는 감성을 팝니다.”

병원에서 격은 케어와 감성을 중시한다고 이해되는데요. 쉬운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 의사와 간호사는 병원의 천장을 볼 일이 없습니다. 주로 벽을 보지요. 그러나 환자는 천장을 봅니다. 그런데 천장이 아름다운 병원은 별로 없어요. 세브란스병원은 완벽하진 않지만 눈부시지 않은 천장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창에는 성경 구절을 붙여뒀어요. 병실의 환자는 창 밖의 경치가 아니라 창에 새겨진 좋은 글을 보면서 불안을 달래고 위안을 얻는 데서 착안했습니다.”

이것은 교수님 아이디어인가요.

“제가 개념을 이야기했지만 시설 등 여러 부문이 힘을 합해서 실행합니다. 우리 병원의 암병원을 지었을 때는 환자경험위원회를 만들어 방향을 논의하고 방안을 만들었어요. 그 후에는 실무위원회를 만들어 지금도 실행 중입니다. 협력업체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에서 휴먼케어, 즉 치료가 아니라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고도 강조했는데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요.

“사고를 당해 병원에 가면 시스템에 의해서 검사하고, 시스템에 의해서 입원하고, 시스템에 의해서 진료를 해요. 사람들은 여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헬스를 케어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케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움직임이 선진국에서부터 있어왔습니다.”

사람 중심의 케어는 뭔가요.

“(시설, 장비 등) 하드웨어를 놓고 말하자면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은 7가지 디자인 조건이 있어요. 누구나 이용하기 쉬워야 하고 간단해야 하고…. 이게 적용되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의 복도 폭을 기존 병원보다 1.5~2배 넓게 만듭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갯수도 2배 이상 많아야 합니다. 고령 인구가 늘면 화장실 사용 빈도가 잦아지고 사용 시간도 길어집니다. 화장실 내부는 오른쪽 편마비 환자와 왼쪽 편마비 환자를 위한 설비를 모두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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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내 병원 홍보 동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진영 교수

돈 없는 중소병원도 ‘격’을 높힐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그렇게 되어 있나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낙상 방지를 위해 한쪽 벽에만 부착되어 있던 손잡이를 앞쪽에도 부착했습니다. 약한 단계지만 휴먼케어 쪽으로 가고 있는 사례지요.”

그나마 자금력과 인적 자원이 풍부한 대학병원은 몰라도, 동네병원이 격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빅5(국내 5대 병원)는 휴먼케어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공립병원인 적십자병원과 서울의료원도 잘 하고 있습니다. 중소병원의 경우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것만 생각하면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하드웨어보다 기존 환경을 어떻게 더 깨끗하게 하고, 서비스를 바꾸느냐를 먼저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주치의가 언제 회진을 하는지 아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부분 병원에서 회진 시간을 알려주지 않아서 ‘잠깐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주치의가 다녀갔다’ 등의 불만 사례가 많아요. 게시판에 회진 시간만 써붙여두면 해결되지요. 이건 돈 드는 것이 아니에요. 세브란스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도하는 의사 프로젝트(수술 전 의료진이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해줌) 같은 것도 돈은 들지 않고 정성의 문제입니다. 이런 사소한 것에 환자는 굉장히 감동합니다.”

중소 병의원을 위한 아이디어를 추가한다면요.

“공감 프로젝트입니다. 환자는 의료진이 자신의 입장이 돼서 공감해주지 않는 것을 가장 아쉬워합니다. 한마디만 더 들어주면 되는데, 말을 이상하게 해서 상처받게 하는 등의 사례가 너무 많아요. 돈 안 들면서 할 수 있는 것이죠. 의사, 간호사 등 현장 의료진이 환자 입장을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휴먼케어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클리블랜드 클리닉 동영상의 제목도 ‘공감’이지요. 병원에는 온갖 사람이 있는데 서로 공감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몇 년차의 누구인데 무엇 때문에 왔다’고 환자에게 설명하는 하는 의사는 없어요. 아무 말 없이 왔다가 가면 환자 입장에서는 주치의인지 당직의사인지 전공의인지 모르죠. 이런 것도 공감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의료진이 신분을 밝히는 것은 중소병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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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다

김 교수는 책에서 행복한 죽음을 의미하는 ‘웰다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웰다잉은 무엇일까?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웰빙’이라면, 3만 달러 시대는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하게 보면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병원도 삶과 죽음이 아예 다르다고 보고 돌아가시는 순간 다르게 취급하는데, 죽음을 우리 삶 속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입니다. 일본 도쿄 근처의 작은 도시에 있는 가메다 병원은 영안실을 13층 꼭대기에 뒀습니다. 그 병원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천국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되묻더군요. ‘천국은 하늘에 있으니 돌아가신 분 입장에서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모시는 것이 맞지 않은가’라는 겁니다. 영국의 메기센터의 암환자 프로그램에는 ‘암환자가 떠난 후 남은 가족의 삶을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격’을 강조해서 구체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업계에서 ‘휴먼케어의 효과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첫째는 사고(思考)의 변화입니다. 둘째, 헬스에서 휴먼케어로 옮겨오는 저변이 탄탄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모르게 병원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셋째, 휴먼케어의 결과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환자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웃음)”

김진영 교수를 인터뷰한 뒤 5일째, 공교롭게도 세브란스병원에서 화재가 났다. 불은 초기에 진화됐고 연기는 윗층으로 퍼지지 않았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안전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책 덕분이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48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격’과 ‘양’이 삶과 죽음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