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실패 적극 장려해야 블록버스터급 제품 나온다"

헬스 톡톡_ 홍정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진흥본부장

미국 R&D 성공률 9.6%인데
한국은 90%… 될 것만 하기 때문
대부분 개량 수준, 혁신 신약 없어

실패 면밀하게 분석해 연구·공유
성공을 위한 훌륭한 밑거름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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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진흥본부장은 “제약 선진국들은 무수한 실패를 겪은 후에야 여러 혁신 신약을 개발했다”며 “한국도 실패에 대한 시선을 바꿔야 제약 강국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11년간 26억달러(약 2조8000억원). 신약 하나가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다. 한국이 아닌, 세계 최고의 제약강국이라는 미국의 통계다. 1만개의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단 하나만이 신약으로 시장에 데뷔한다. 그만큼 제약 산업은 실패 위험이 크다. 그러나 미국에선 이 높은 실패 확률을 뚫고 미국에선 블록버스터급 혁신 신약이 연달아 나온다. 반면, 한국에선 아직 '혁신'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한 신약을 내기가 어렵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홍정기 R&D진흥본부장은 '실패'에 대한 시선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를 만나 제약 산업에서의 실패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제약 선진국과 한국의 R&D 성공률은 각각 얼마나 되나.
“미국의 경우 2006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임상 1상에서 신약 승인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진 사례가 전체의 9.6%에 그친다. 임상연구 실패율이 90%가 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R&D 성공률은 9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 분야를 포함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전체 성공률은 공식적으로 98.1%다.”

―한국의 신약 성공률은 왜 이렇게 높나.
“90%가 넘는 높은 성공률은 한국이 R&D를 잘해서 나온 기록이 아니다. 임상시험 실패 건수가 실제로는 적게 보고됐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연구 목표를 애초에 낮게 설정했거나, 온정적으로 평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성공률을 따지면 미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일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에서 혁신 신약이 나온 게 있나. 신약으로 표현되는 약은 모두 기존에 출시된 약을 조금 변경하거나 개량한 정도에 그친다. 당연히 성공률이 높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은 아직 없다.”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개발되지 못한 이유는?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투자자들이 더 온정적이어서 제약사의 길고 긴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 산업의 특성상 장기간 고비용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외의 연구결과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도약을 위한 경험으로 생각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제약 강국으로 거듭난 비결에는 이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허투루 보지 않고 차곡차곡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미국에는 ‘Journal of Negative Result in Biomedicine’이라는 제목으로 실패 기록을 모아둔 저널이 있다. 또,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는 ‘Drug rescu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 도중 실패한 약물이 다른 질환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은 아직 이런 분위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실제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됐던 사례가 있다면.
“블록버스터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의 경우 2003년 미국 FDA에서 3차 치료제로 승인됐다가 2005년 퇴출당했다. 폐암환자의 생존율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 FDA에서는 이레사를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승인했다. 이레사의 제조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전 세계 24개국에서 비소세포폐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다시 시행했고, 그 결과 EGFR 유전자 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블록버스터 항암제인 ‘레블리미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바이오기업인 셀진은 예측하지 못한 기형아 출산 부작용으로 40년 전 판매가 금지됐던 타리도미드를 개량, 항암제로 다시 만들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으로 셀진은 미국 바이오주 시가총액 9위까지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실패를 대하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일부 제약사를 중심으로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찰된다. 실제 상위 제약사들은 매출 대비 R&D 비중을 상당히 늘리고 있다. 한미약품 등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투자가 많아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그렇다. 신약 개발을 비롯한 보건의료 R&D는 1만분의 1 확률을 위해 도전하는 고위험 분야다. 지금보다 더 많은 실패가 필요하고, 그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정부는 실패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실패를 빨리 파악하고 나머지 예산을 다른 주제의 연구에 쓰도록 하면 오히려 매몰비용이 최소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실패 사례를 분석한 논문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연구에 실패했다는 내용을 보고서 한 장으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자료를 써서 어떤 실험을 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소상히 밝히고, 여기에 편집위원들이 실패 원인은 무엇인지 논평을 붙이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와 관련한 공청회를 이미 진행했고, 19일(내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안건으로 보고될 예정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논문 발간 작업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