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도 치매 위험 높일 수 있다

약문약답

백세시대를 눈앞에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질환이 치매다.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치매를 앓게 된다면 본인과 가족에게 큰 고통이다. 그런데 약 때문에 치매 증상이 생길 수도 있을까? 불행히도, 대답은 ‘그렇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감기약으로도 치매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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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고 코가 간질거리며 재채기를 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치료제나 종합감기약에는 항히스타민제라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이들 증상을 가라앉혀주는데 이때 항콜린 작용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나타난다. 일부 우울증치료약이나 요실금 치료약물에도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과거에는 항콜린 부작용이 있어도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5년 1월 미국 워싱턴 대학교 약대 연구팀에서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기약을 포함하여 항콜린 부작용이 있는 약을 장기 복용한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치매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약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복용하는 사람일수록 위험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여, 3년 동안 항콜린 약물을 복용한 사람은 석달 이하로 복용한 사람에 비해 치매 위험이 무려 54%나 높았다. 연구 결과가 많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또 다른 이유는 약의 사용을 중단한 뒤에도 높아진 치매 위험이 다시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바꿔 말해, 처음부터 이들 약의 사용을 최소로 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뇌 신경세포들의 ‘문자 메시지’ 방해

항콜린 약물이 뇌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우리 뇌 속에는 본래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일종의 메신저가 있어서,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뇌는 짧은 순간에도 여러 가지를 판단하고 느끼고 정보를 기억할 수 있도록 작동하는데, 이는 신경세포가 연락망을 만들어 서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때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게 신경전달물질, 쉽게 말해 신경세포들끼리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이다. 아세틸콜린은 뇌 신경세포에서 사용하는 대표적 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인데, 항콜린 부작용이 있는 약은 아세틸콜린을 차단한다. (항콜린이란 말 자체가 아세틸콜린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이쪽 신경세포에서 저쪽 신경세포로 문자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니까 마치 통신망이 두절된 것처럼 뇌에서 문제가 생긴다. 사물을 분별하여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감소해서 마치 치매 비슷한 증상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항콜린 부작용이 나타나는 약들이 많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양을 복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콜린 부작용이 있는 약을 하나만 복용해도 기억력 감소 또는 인지장애의 위험이 50%까지 증가할 수 있으며, 특히 가족 중에 치매나 뇌졸중 병력이 있는 경우에는 더 위험하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인체의 해독기능이 줄어들면서 약 부작용에 더욱 취약해지는데, 동시에 나이가 들수록 사용하는 약의 가짓수는 늘어난다는 점이다. 노인 환자가 항콜린 부작용이 있는 약을 모르고 여러 가지 복용하면, 부작용이 축적되어 뇌에 미치는 영향이 더 심해진다. 이러한 부작용 축적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각각의 약에 부작용 점수를 매겨서 표시한 것을 항콜린 부담점수라고 한다. 항콜린 부작용이 있는 약을 여러 가지 함께 복용하게 되면 항콜린 부담점수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난다. 마치 하루에 커피, 홍차, 탄산음료 등의 카페인 음료를 여러 잔 마시면, 카페인 과잉으로 잠을 못자는 것과 비슷하다. 앞서 설명한 인지장애나 기억력 감퇴에 더해서 눈에 눈물이 말라서 건조해지고 입에 침이 자꾸 마르는 것 또는 소변을 보기 어려운 것 역시 항콜린 부작용이다.

항콜린 작용 적은 약 구입해야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항콜린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은 사용을 최소로 하는 게 제일 좋다. 약의 선택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성 비염에 사용되는 항히스타민제들 가운데서 1세대 약물은 항콜린 부작용이 심한 편이지만, 2세대와 3세대 약물은 그런 부작용이 적게 나타난다. 또 항우울제 중에서도 삼환계 항우울제라고 불리는 약은 항콜린 부작용이 있지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라고 불리는 약에는 이런 작용이 훨씬 적게 나타난다.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성 비염약 중에도 항콜린 작용이 덜한 약과 심한 약이 있다.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름도 어려운 항콜린 작용이 있는 약과 없는 약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복용하는 모든 처방약과 일반약에 대한 상담, 관리를 단골 약국 한 곳에서 받는 게 좋다. 여러 선진국에서 큰 병원보다는 가까운 의원, 대형약국보다는 동네 단골 약국의 이용을 권장하는 대국민 캠페인을 많이 전개하는 것도 이러한 약 부작용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글에서는 항콜린 약물에 초점을 맞췄지만, 다른 여러 약들도 치매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수면제, 항불안제로 사용되는 약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지혈증 치료약인 스타틴을 복용하는 중에도 드물지만 기억력 감퇴나 인지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약 부작용이 의심된다고 의사, 약사와 상담하지 않고 스스로 약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갑작스런 약물 치료 중단으로 인한 상태 악화가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약이 문제의 원인으로 판명되는 경우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 약에 알맞은 방법으로 중단하고, 다른 약으로 대체해야 안전하다.

필요할 때만 짧게 감기약을 복용하면서 치매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매일 같이 물약으로 된 복합감기약을 마시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약을 끊기를 권한다. 부득이하게 치료 목적으로 항콜린 약물을 사용 중에 입이 마르는 등의 가벼운 항콜린 부작용 증상이 나타날 때는 물을 마시는 것보다 무설탕 캔디, 껌으로 침을 자극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약 복용 중에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평소와 달라지는 증상이 나타날 때는 전문가와 상담하여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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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