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대를 받고 시작했던 위험분담제가 도입 4년차를 맞아 첫 번째 재평가를 앞두고 있다. 이번 재평가 대상은 ▲소아백혈병 치료제 ‘에볼트라’ ▲직결장암 치료제 ‘얼비툭스’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 등 4개다. 위험분담제 도입 후 첫 재평가인만큼 제약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위험분담제(RSA, Risk Share Agreement)는 여간해선 맞지 않는 제약사·정부·환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제도다. 2000년 이후 새로 개발된 신약이 환자에게 충분히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됨에도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었다. 환자는 약을 필요로 하고, 제약사는 약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며, 정부는 재정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는 삼각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신약의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에서 112개 품목이 비급여로 평가됐는데, 이 가운데 10개 품목이 비급여 시 대안이 없는 항암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였다. 위험분담제는 이런 분위기 속에 등장했다. 보건당국과 제약사가 합의해 재정 부담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4년마다 재평가를 하기로 했다.
위험분담제, 환자 접근성 향상+재정부담 완화
위험분담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경로로는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았을 고가 신약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감소시킨 것이다. 최근 열린 보건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호서대 제약공학화 이종혁 교수는 “위험분담제가 지난 3년간 환자 본인부담금을 약 2900억원 절감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환자 1명당 절감액으로 환산하면 1773만원 수준이다. 이 교수는 “위험분담제도는 추가적인 재정부담 없이 비용효과적인 의약품을 등재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며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위험분담제는 특히 기존에 치료옵션이 제한적이었던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의 가격 결정에서 빛을 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뢰로 실시한 연구(연구책임자 이태진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위험분담제로 급여 등재에 성공한 얼비툭스의 경우 지난해 11월까지 위험분담제가 적용된 의약품 11개 가운데 환자의 비용부담이 가장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년간 3000명 이상의 전이성 대장암 환자, 두경부암 환자가 혜택을 본 것으로 파악된다.
재평가 앞두고 의사·환자 우려 목소리 높이는 이유는
정부와 환자, 제약업계 모두 동의하는 위험분담제는 그러나 재협상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 환자와 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재협상 결과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암치료보장성협력단(KCCA) 환자 대표인 백민환 회장(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은 “많은 암 환자가 재계약에 실패하는 약제가 있을까봐 우려하고 있다”며 “위험분담제 재평가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재협상이 실패한다면 최악의 경우 해당 약제가 비급여로 전환돼 사실상 약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유는 재평가를 앞두고 정부가 제약사 측에 제시한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올해 마련한 ‘신약 등 협상대상 약제의 세부평가 기준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계약이 1년 미만으로 남은 재계약 대상 약제는 등재 이후 발표된 임상효과 자료, 변경사항을 고려한 비용효과성 평가 자료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 경제성평가를 다시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제성평가 자체가 제약사에 큰 부담인데다, 경제성평가가 위험분담제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 환자와 제약업계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심평원은 지난 4년간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등 위험분담제의 성과를 재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영향을 줄이는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며 “비용효과성 외에도 위험분담제의 취지에 맞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민환 회장 역시 “위험분담제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위해 생긴 제도”라며 “경제성평가에 치중된 재평가가 환자의 치료 지속성이나 보장성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결과를 초래하진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입 취지에 맞게 위험분담제 재평가 이뤄져야”
학계에서도 같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위험분담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호서대 이종혁 교수는 “위험분담제는 도입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보다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은 제도”라며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발전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최초 등재 시 비용효과성을 입증했음에도 재평가에서 또 다시 경제성평가를 수행하는 것은 위험분담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등재되는 일반 신약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제약사는 위험분담제로 신청을 해도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급여결정 및 건강보험공단의 약가협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경제성평가가 불가능한 약제들을 위험분담제를 통해 등재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경제성평가를 통해 비용효과성을 입증해야 하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이종혁 교수는 약의 가치를 비용효과만으로는 따질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종혁 교수는 “영국·호주·북유럽 선진국 등에서는 경제성평가에 대한 한계가 지적돼 비용효과성뿐 아니라 신약의 다양한 가치를 담고자 하는 방안이 최근 몇 년 새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비용효과 외에도 질병의 위중도, 신약의 혁신성, 환자 편의성 개선, 환자 요구도 및 미충족 수요, 직간접적인 사회비용 등 다양한 가치에 가중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