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의 남성이 비틀거리며 약국으로 들어선다. 발을 질질 끌며 들어와서는 약국 직원에게 처방전을 간신히 제출한다. 반소매 옷 때문에 드러난 팔뚝에는 혈관이 불룩 튀어나와있다. 혈액투석 환자다.

“내 친구가 여기 약사님이 친절하다고 해서 왔수!”

그러면서 계속 특정회사의 연고, 특정회사의 란셋(바늘) 등을 달라고 요구한다. 약국에 없는 제품은 다음에 구해 주겠다 하고 약을 조제해드렸다. 저녁 때 전화가 왔다. 알레르기약, 무슨 약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으니 준비해놓으라 한다. 그 후에도 여러번 비틀비틀 약국에 와서는 한참을 나에게 잔소리를 하고 가셨다. 주말에는 약국 전화 녹음기로 무슨 약이 필요하니 도착하면 전화 달라고 한다. 약국에 오는 모든 환자가 고맙지만, 솔직히 이분이 오시면 너무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제해드린 약을 받고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계셨다. “내가 이 병원 투석실 오픈할 때 오픈멤버야. 벌써 10년이 되었어. 그때 같이 투석받던 친구들 거의 대부분이 죽었어. 나도 얼마나 살까? 내가 갑자기 안 오거든 죽은 줄 아슈.” 울컥 했다. 계속 그렇게 오래오래 약국에 오셨으면 좋겠다.

국내 신대체요법을 받는 말기 신부전환자는 2006년 4만6730명에서 2016년 9만3884명으로 10년 사이에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해마다 많은 혈액투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질환으로 인해 콩팥 기능이 나빠져서 투석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한다. 또한 혈액 투석으로 인해 생기는 합병증으로 또다른 약들도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노인 혈액투석 환자가 하루 동안 복용하는 약물 개수는 10개 미만이 약 32%, 11~15개가 약 37%, 16~20개가 약 18%나 됐다. 이들에게는 치료와 약 복용도 힘든 일이지만, 일주일 두 세 번 병원을 방문해 4시간 동안 투석을 받는 삶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 대부분이 정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시간제 일을 하거나, 가족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닐까 한다. 혈액투석 환자 중 특히 노인인 경우 배우자 또는 가족의 동거인이 있는 경우 약물 복용 태도가 좋거나 관련 지식이 많다고 한다. 또한 환자 가족의 지지는 환자 스스로의 간호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일상생활을 잘 적응해나갈 수 있게 한다는 연구도 있다. 별거 아닌 일 같지만,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독거 노인, 혼술·혼밥, 출산율 최저 등의 요즘 현실을 보면 가족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 됐다. 이제는 주변인들의 관심과 도움도 절실하다. 다른 예지만, 약국 환자 중 자살전에 약국에 들르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이에 일부 지역의 약국에서는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몇몇 자살을 막은 경우도 있다. 우리 약국의 잔소리 환자님도 결국은 내 특기인 ‘잘 들어주기’ 덕분에 자주 방문하고 전화 걸어 주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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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운찬판도라약국장. 숙명여대 약학부와 뉴욕주립대 예방의학과 석사를 졸업했고, 동국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다국적 제약사 및 의료기기사에서 임상시험 팀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시약사회 상임이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