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과 수장들 모여 골반질환 함께 돌봐… 돈 못 벌어도 환자가 우선이죠”

협진(協診)하는 의사

서울성모병원 김미란·이지열·이인규 교수

환자 한 명이 여러 개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거나 한 개 질환이지만 다른 장기까지 영향을 준다면, 관련 진료과목 의사들이 함께 진료·치료를 하는 ‘협진(協診)’이 환자에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병원·의사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수익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피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협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의료 행위다. <헬스조선>은 성공적인 협진을 통해 환자의 건강을 되찾아준 이야기를 소개한다. 세 번째 주인공은 20년이 넘게 골반질환을 함께 치료해온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와 비뇨기과 이지열 교수, 대장항문외과 이인규 교수다.

 

이미지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이지열 교수(좌)와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가운데), 대장항문외과 이인규 교수(우)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제법 서늘해진 9월 중순, 서울성모병원의 빈 회의실이 시끌벅적해졌다. 각 과의 ‘거물’로 일컬어지는 의사 세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대학병원 의사 세 명이 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김미란 교수는 산부인과 과장이자 가톨릭의대 산부인과학교실 주임교수이고, 이지열 교수는 비뇨기과 과장이자 최소침습및로봇수술센터장이다. 이인규 교수는 대장항문외과 분과장으로, 세 사람 모두 소위 말하는 ‘바쁜 몸’이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니, 이구동성으로 ‘시간에 비해 할 말이 많다’며 폭풍처럼 말을 시작했다. 오랜 기간 환자를 함께 치료해온 세 사람의 이야기.

 

이미지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이지열 교수(좌)와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가운데), 대장항문외과 이인규 교수(우)

헬스조선  세 분을 함께 모신 건 처음입니다. 함께 치료한다고 밝힌 ‘골반질환’이 무엇이며, 여러 과 교수님이 필요한 이유도 알려주세요.

김미란 교수  자궁내막증이 대표적입니다.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아닌 다른 장기에 붙어서 증식하는 염증성질환이에요. 어떻게 보면 암보다 어려운 질환입니다. 암의 경우, 해당 종양만 깨끗하게 도려내면 됩니다. 그런데 염증성질환은 염증이 주변으로 퍼져서 엉망이 돼요. ‘떡이 된다’고 하죠. 자궁내막증은 생리하면서 조직이 역류해 직장이나 콩팥으로 잘 가요. 그래서 비뇨기과와 대장항문외과 의사가 필요합니다.

이인규 교수  자궁내막증 같은 골반질환을 수술하면서, 직장이나 콩팥에 문제가 있는 상태라면 산부인과 의사가 문제가 되는 조직을 떼어내도 됩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보통 그렇게 하고요. 그런데 김미란 교수님은 각 장기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쪽 의사에게 요청한 겁니다. 본인이 조금 번거로워도 말이죠.

김미란 교수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다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해당 장기에 대해 깊이 공부한 의사가 환자에게 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조직을 잘못 떼어내다가 장기에 손상이 올 수도 있어요. 이 경우 병원에서 ‘알아서 하지 왜 시간 걸리고 복잡하게 다른 진료과목의 의사를 부르나’ 하고 눈치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환자를 위해선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못 하게 하면 안 돼요. 못 하게 하면 원장실로 시위하러 갔을 겁니다(웃음).

이인규 교수  외과 수술의 경우 완벽한 절제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수술하다 그때그때 부르는 게 아니라, 전부터 미리 회의를 통해 완벽한 준비를 합니다.

이지열 교수 골반에 있는 장기를 다루는 과가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잖아요. 자궁내막증이 대표적이지만, 방광암이 직장이나 자궁을 침범했을 때도 세 사람이 뭉쳐야 합니다. 아, 그리고 환자의 상태나 정보에 대해 이인규 교수와 제가 다 인지한 상태로 수술에 들어가요.이런 일련의 과정을 김 교수님이 주도하는데, 사실 많이 번거로운 작업이에요.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이미지
이지열 교수

헬스조선  세 분이 함께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이인규 교수  성모병원이 전통적으로 협진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각 과가 친밀해요. 산부인과와 외과,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비뇨기과와 외과…. 과끼리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선배 때부터 친밀하게 지내고 같이 수술 도와주는 게 전통으로 이어져서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서슴없이 출동합니다. 그리고 우리 병원은 주님의 은혜 안에서(일동 웃음) 뭉치기 때문에 의사 간 협진이 활발한 편이에요.

이지열 교수  김미란 교수와 저는 동기입니다. 방도 옆방이고요, 이인규 교수는 후배죠. 사실 개인적으로 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같이 환자 보자고 하는 게 보편적인 일은 아니거든요.

김미란 교수  가톨릭대 의대에서부터 공부를 함께 했기 때문에 허물없는 사이죠. 거기에 환자를 위해 도와달라고 하니, 시간 빼가면서 와주시는 거라 감사해요.

이인규 교수  그래도 저는 한참 후배죠.

김미란 교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웃음)

 

이미지
이인규 교수

헬스조선  골반질환 협진을 하게 되면 어떤 점이 환자에게 좋나요? 협진할 때 의사에게 어려운 점은 없나요?

이지열 교수  협진을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 환자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골반 근처 장기가 모두 성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대·소변 기능은 물론 성기능까지 어떻게 수술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천차만별이죠.

김미란 교수  생리통과 배변통이 극심해 병원을 찾은 한 환자가 기억나네요. 기존에 자신에게 자궁내막증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수술을 원하지 않은 채 그냥 지냈다고 해요. 그런데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병원에 왔어요. 검사해보니, 직장을 내막증이 뚫고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내막증이 양성질환이지만 암처럼 주변 장기를 침범해요. 이렇게 되면 변을 보려고 할 때 너무 아파서 막 울어요. 이인규 교수님과 협진해 자궁절제술과 저위전방절제술(직장 절제술의 일종), 문합술(장기끼리 봉합해 주는 수술)을 받았어요, 통증이 없어지고, 생활에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재열 교수님과는 자궁근종과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콩팥에 생기는 병인 수신증을 함께 로봇수술로 치료한 기억이 나네요.

이인규 교수  직장을 절제하지 않고 유착된 조직만 박리하는 등 직장 조직을 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환자를 위해선 이래야 하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되면 다른 과 의사는 돈을 못 받아요. 예를 들어 제가 김미란 교수님이 자궁내막증을 수술하는 데 협진으로 들어가, 심하게 망가진 직장을 절제하면 돈을 받습니다. 협진 수술에 대한 의료 수가(酬價)가 있거든요. 하지만 잘라내지 않고 직장 조직을 살리면서 종괴만 잘라낸다면 돈을 못 받습니다. 현 시스템상 크게 자르는 경우에는 돈을 받고, 문제가 되는 조직만 조금 떼어내면 못 받아요. 의료 환경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해요. 어폐가 있는 상황이죠. 그래도 저희는 합니다. 그냥 무료로 해요.

김미란 교수  이지열·이인규 교수가 도와주면 제가 ‘미안하다 밥 한번 살게’ 하는 정도죠. 의사들이 이런 게 어려워요. 암이 아닌 자궁내막증 같은 양성질환은 협진 진료 자체에 수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거든요.

 

이미지
김미란 교수

헬스조선  어떻게 해야 협진이 활발해질 수 있을까요?

이지열 교수  제대로 된 수가가 책정되면 좋겠습니다. 수가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일부 의사들은 팀워크나 의리 혹은 환자에 대한 사명감으로만 움직이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최고입니다. 외국에서도 앞다투어 공부하러 올 정도죠. 이게 성형외과 같은 구조일수록 유리합니다.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대부분 성형외과를 갔어요. 의대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죠. 왜냐? 돈이 되니까요.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돈이 됩니다. 산부인과나 외과, 비뇨기과는 ‘3D’ 수준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수준이 이만큼 되는 건 사명감으로 버텼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 의사들은 아직 버티고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버티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럼 수준이 점점 떨어지겠죠. 의사 되겠다는 사람도 줄어들 거고요. 비뇨기과 의사들끼리 ‘우린 은퇴 못 할 거다’는 농담을 하기도 해요.

이인규 교수  맞습니다. 인력이 많아야 해요. 그래야 이 환자도 보고 저 환자도 볼 수 있어요. 일례로 대장항문외과 같은 경우 대장암이 메인이지만, 자궁내막증 같은 다양한 수술에 관여해요. 모든 병원에 대장암 보시는 교수님들이 다 그럴 겁니다. 여기 저기 불려 가요. 이때 인력이 부족하면 협진이 어렵겠죠. 인력 면에서 풍요로우려면 병원에서 사람을 뽑을 수 있게 정당한 수가가 나와야합니다. 수술 협진 수가도 생기면 좋겠고요. 지금은 돈 벌려면 다 잘라야 하니까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좋은 구조가 아니에요.

김미란 교수  의사들의 능력 계발도 중요합니다. 수술해야 하는 의사는 개복, 복강경, 로봇수술 전부 자유자재로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서로 협진이 원활하게 됩니다. 환자에게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고요. 누구는 로봇할 줄 아는데 누구는 개복만 할 줄 알고 그러면 협진이 제대로 되기 어렵죠.

이지열 교수  비뇨기과에서는 로봇수술이 정교해 전립선에 좋다고 해서 복강경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병원이 많아요. 복강경이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환자 상황에 따라 복강경이 좋을 때도, 로봇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의사 간 원활한 협진을 위해서는 다양한 수술 테크닉을 배우려고 의사 스스로 노력해야겠죠.

헬스조선  마지막으로 헬스조선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미란 교수  협진도 협진이지만 의사가 수술을 안 해도 되는 상황, 즉 몸이 안 아프게 관리해야 합니다. 아프면 버티지 말고 미리 병원에 오세요. 그리고 협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입니다. 평소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해서, 협진이 필요하지 않은 초기에 치료하는 게 최선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