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석의 앤드롤로지
1832년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가 만든 2막짜리 오페라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에는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먹이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비밀의 약이 나온다. 오페라에서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이 연인의 사랑을 얻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알고 보니 그 사랑의 묘약은 싸구려 포도주였다. 여러 예술작품들에는 이러한 의학적 근거가 없는 약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사랑은 약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사랑의 묘약’은?
“한 잔 하실래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역사에 등장하는 사랑에 관련된 묘약들은 대부분 술이었다. 현재도 많은 남자들이 사랑을 위해서 여자들에게 술을 권한다. 한 잔의 술은 분위기를 살리고 심리적으로 용기를 주지만 사실 알코올은 사랑을 방해한다. 과음은 정신적 긴장감을 떨어뜨려 성욕을 억제하고, 혈관과 신경에 나쁜 영향을 주어 발기와 사정을 어렵게 하고 절정감을 감소시킨다. 잦은 음주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억제해 노화를 촉진하고 음경혈관에 나쁜 영향을 주어 발기부전을 일으킨다. 술은 여성들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많은 예술작품에서 사랑의 묘약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방해꾼이다.
성욕이나 성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고 소문난 식품이나 약물들은 많다. 서양에서는 아프리카산 요힘베 나무 껍질로 만든 요힘빈과 딱정벌레의 일종인 스패니시플라이 등 기능성 제품들이 팔리고 있고, 물개의 음경이나 코뿔소나 사슴의 뿔, 당나귀의 젖 등의 희귀소재나 엑스터시 등의 마약류들이 있다. 대부분 실제 효능이 의문시 되고 안정성에 논란이 많다. 성욕이나 정력이든 성기능이든 묘약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신체의 건강이니 평소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사랑의 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 식품들을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고급호텔 침대에 초콜릿이 놓인 이유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왜 하필 초콜릿이 사랑의 선물이 되었는지는 초콜릿의 효능을 보면 이해가 된다. 초콜릿은 아메리카대륙 발견 이후 원주민들이 먹던 카카오 열매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설탕과 우유를 혼합해 지금의 초콜릿이 됐다. 초콜릿에 들어있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 성분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높여 주며,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효과로 노화를 방지하며 신진대사와 욕구를 상승시킨다. 초콜릿이 사랑의 묘약으로 여겨지는 건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과 트립토판(tryptophan) 성분 때문인데 사랑이나 섹스의 감정에 관여하는 물질로 행복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18세기 경 유럽에서는 최음제로 취급돼 금지가 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고급호텔에 가면 침대 머리맡에 초콜릿이 놓여 있다. 실제 초콜릿을 정기적으로 먹은 여성이 성욕이나 섹스 횟수, 만족도 등에 있어 먹지 않는 여성에 비해 높았다는 이탈리아의 연구도 있다. 하지만 초콜릿을 먹는다고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비뇨기과적으로는 전립선비대증이나 과민성방광에서 배뇨장애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반식품들 중에서는 카사노바가 즐겨먹었다는 굴이 정력제로 꼽힌다. 굴에는 다양한 영양소들이 들어있는데, 이중 아연은 남성의 전립선에 필요한 영양성분으로 정자 생성에 도움이 되지만 강정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굴을 건강식으로 즐겨먹었고, 여성의 피부를 아름답게 하고 안색을 좋게 한다고 알려져 왔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토마토 역시 18세기 유렵에서는 최음제로 취급되기도 하였는데, 철분과 비타민, 그리고 베타카로틴이 풍부하여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성호르몬 생산과 임신에 도움이 된다. 그밖에 칼슘과 엽산이 풍부한 부추는 남성 성기능을 증진시켜준다고 하고, 마늘 역시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여 남성 성기능과 여성의 성적 쾌감에 도움을 준다.
‘돼지발정제’의 정체
어떤 물질이나 호르몬이 사랑에 관여하는지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성욕이나 쾌감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에서는 고환의 라이디히세포에서 생성되고 여성에서는 부신에서 생성된다. 결국 의학적으로는 이 테스토스테론이 얼마나 분비가 되고 잘 작용을 하는지가 사랑의 능력을 좌우한다.
최근 한 대선 후보가 과거 자서전에서 최음제로 사용하기 위해 흥분제를 구입한 적이 있다고 기술하여 문제가 됐다. 동물발정제는 교미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가축을 짝짓기 시킬 때 사용하는데, 짝짓기를 잘 하지 않는 돼지들에게 많이 사용되므로 돼지발정제로 알려져 있다.
가축용 발정제의 주성분은 요힘빈(yohimbine, C21H26N2O3)으로 서아프리카 요힘베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인데 교감신경 차단과 혈관 확장 작용을 한다. 성 중추 자극 효과와 성기혈관 확장 효과로, 비아그라가 발명되기 전에는 최음제나 발기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힘빈의 발기유발효과나 최음 효과는 거의 없고, 심계항진, 어지럼증, 경련 등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람에게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 식품의약품국(FDA)도 요힘빈은 독성과 부작용이 강하고 발기제나 최음제로서의 유효성은 거의 없다고 권고한다. 가축들의 교미를 유도하기 위한 약물로 사용됐으나 가축에서의 발정효과도 확실하지 않아 최근에는 인공수정을 위한 배란 촉진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욕을 높이고 성 능력을 강화시킨다고 알려진 사랑의 묘약은 없는 것인가? 정말로 있다면 필자가 이러고(?) 있을 리가 없다. 이것이 정답이다. 괜히 사랑의 묘약을 찾지 말고, 연인과 함께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나 들으면서 분위기를 띄워 보는 건 어떨까?

심봉석 교수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의학박사)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UCSF에서 연수했다. 이대 동대문병원 기획실장·응급실장·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비뇨기과 건강 서적 《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를 출간하는 등 비뇨기질환에 대해 국민들이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