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네게 들려주고파
남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여수는 풍요로운 해산물과 아름다운 해안 그리고 일출로 유명하다. 2012년 해양 엑스포 이후 국내 여행자가 부쩍 늘어 2016년에만 1200만 명이 여수를 찾았다.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국내관광지 10곳 중 하나에 포함된다. 그런 여수는 나의 고향이자, 내가 머무르는 삶의 터전이다. 나고 자란 여수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수많은 관광객이 여수를 찾는 이유로 '밤바다'를 빼고 말할 수 없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라고 시작되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는 여수를 한 번쯤 가고 싶은 여행지로 만들었다.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퇴근 후나 수업을 마치고 훌쩍 기차에 몸을 싣고 온 젊은 청년들도 여럿 보았다.
여수의 밤은 낮만큼 화려하고 북적인다. 오후 느지막하게 여수에 도착하면 해양공원으로 향한다. 삼삼오오 시원한 바다 바람을 쐬며 길을 걷는 사람들과 부둣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앞바다를 분주히 오가는 배들이 눈에 띈다. 여수와 돌산을 잇는 두 대교와 그 위를 공중제비 하듯 지나는 케이블카가 푸른 조명을 켜면, 본격적인 ‘여수의 밤’이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서 온 길거리 공연자들의 흥겨운 노래와 춤도 한 몫 한다. 여수만의 밤 정취에 마음껏 빠져드시길.
문득 시장기가 돌면 그제야 후각을 자극하는 포장마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포장마차를 들어가도 좋겠지만, 좀 더 제대로 된 ‘바다 음식’을 먹고 싶다면 수산시장으로 가면된다. 수족관에는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활어들의 싱싱한 유영을 볼 수 있다. 만 원짜리 몇 장만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현란한 솜씨로 막 뜬 회를 담아 갈 수 있다. 아이스박스를 손에 들고 이제 뷰포인트가 좋은 좌석(?)을 찾아갈 차례. 바닷가 바로 앞의 벤치나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여수 최고의 레스토랑이 따로 없다.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분위기가 또 새롭다.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밤바다를 운행하는 크루즈를 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배 위에서 직접 쏘아 올리는 화려한 불꽃 아래 있으면 겨울 칼바람일랑 무슨 상관일 듯싶다. 옛날 여수를 찾는 관광객은 밤에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을 찾았지만 이제 그런 곳이 아니어도 여수의 밤은 즐겁다.
명품 트레킹코스, 금오도 비렁길
이제 밤을 즐겼으면 섬으로 가자. 흡사 제주 같은, 평온하고 예쁜 풍경을 가진 섬이 많다. 여수에는 모두 317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아름답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금오도(金鰲島)다. 시내에서 차로 30분, 다시 배를 갈아타고 30분이면 금오도에 닿는다. 2000년 이후 경남과 전라도의 많은 섬들에 다리가 놓이기 시작했지만 금오도는 육지가 되기보다 섬으로 남길 원했다.
금오도는 생긴 게 큰 자라와 같아서 ‘자라 오(鰲)’자를 써서 이름이 금오도가 됐다. 숲이 우거진 게 검게 보인다고해서 ‘거무섬’이라고도 불린다. 1891년 대동여지도에는 거마섬(巨磨島)으로 표기돼 있다. 이곳 주민들은 예부터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전복·해삼·톳·멸치 등 자연산 수산물이 풍부하고, 낚시꾼의 가장 사랑하는 어종인 ‘감성돔’의 최대 산란지이기도 하다.
최근 이보다 금오도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이 있다. 명품길이라고 부르는 비렁길이다. 비렁은 이곳 방언으로 벼랑이라는 뜻이다. 아찔한 해안절벽을 따라서 걷는 길이다. 비렁길을 걸으려면 함구미선착장에서부터 시작하면 좋다. 모두 18km, 5구간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하루에 다 걷겠다고는 각오로, 새벽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걷기 시작하면 한 시간 뒤에 조릿대(시누대, 해장대) 숲에 다다른다. 운이 좋다면 에메랄드빛 눈에 파랑색 깃털을 가진 지진새를 볼 수도 있다.
다시 길을 재촉해 3코스 중반 무렵 한 차례 고비가 찾아온다. 몸이 지쳐 ‘내가 과연 이 길을 다 걸을 수 있을까’란 의심이 들 때 작은 라면집이 나타난다. 쥔장 아주머니가 끓인 전복을 넣은 라면에 막걸리를 곁들인 상을 받으면 수랏상 부럽지 않다. 직접 걸어보니 아무래도 추천하는 것은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금오도를 즐기라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하루쯤 섬에서 묵어도 그 역시 좋을 것이다.
이름도 낭만적인 ‘꽃섬’ 하화도
이번에는 하화도(下花島)로 가보자. 상화도와 하화도 두 개의 섬을 통칭해 부르는 ‘화도’라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꽃섬’이다. 아름다운 섬이지만 외부인들이 관광을 목적으로 찾아오게 된 지는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주민의 대다수가 칠순이 넘는 할머니들이었다. 남편을 바다에서 잃고, 홀로 뒷바라지해 키운 자식들은 섬으로 돌아오지 않아 1인 주택이 많았다.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된 사정은 이렇다. 섬에서 나고 자라 외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한 사내가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 것. 그는 꽃섬이라 불리는 고향을 테마로 지원금을 받아 어르신들의 집에 벽화를 그리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을 만들었다. 이제 곧 출렁다리까지 놓여 섬의 명물이 될 예정이다.
하화도에도 ‘꽃섬길’이란 트레킹 코스가 있다. 금오도의 해안절벽처럼 장쾌하지는 않지만, 남녀노소 모두 편안하게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동백, 유채, 부추꽃, 구절초 등 사계절 아기자기한 꽃이 피어 심심하지도 않다. 걷는 중간 마을회관에서 섬 아주머니들이 해주시는 서대회파전과 돌문어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꽃섬길의 재미다.
돌산도, 향일암… 여수의 재발견
또 하나의 여수 볼거리를 추천하자면, 돌산대교로 이어진 돌산도라는 섬이다. 와, 와, 와-. S자 해안도로를 따라 감탄사를 계속 터트리게 하는 절경이 이어져 드라이브 코스로 일품이다. 남해 바다 풍경을 즐기다가 우연히 만난 소박한 커피숍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그윽한 커피 한 잔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돌산 끝자락에 위치한 향일암도 가봐야 한다. 원효대사가 수양했던 널찍한 바위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절이다. 흙길을 대리석 계단으로 교체해 편안하게 올라가게 됐지만, 멋을 잃은 듯해 못내 아쉽기도 하다. 땀을 흘리며 계단을 모두 오르면 한 쌍의 거대한 바위가 보이는데, 딱 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좁은 틈을 통과해야한다. 그곳을 지나면 어떻게 여기에 절을 지었을지 진기한 절이 나온다. 그곳이 향일암이다. 매해 첫 아침에 열리는 일출제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불교신자들로 늘 북새통을 이루지만, 그래도 또 가고 싶은 묘한 마력을 가진 곳이다.
낮만큼 아름다운 밤과 어느 음식점을 가도 평타를 친다는 맛집이 즐비한 곳, 여수!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면 그만큼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3월 27~30일과 4월 3~7일(3박 4일) 여수의 금오도와 하화도는 물론 남해 바래길, 광양 매화마을, 구례 산수유마을을 걸으며 봄을 맞는 ‘남도의 봄(여수·남해)’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