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은 의학과 예술의 만남
오스트리아 화가 실레(Egon Schiele, 1890~1918)가 그린 그림 <포옹>(1917)은 그의 말년 대작으로 한 쌍의 남녀가 얼싸안고 열렬히 포옹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성은 벌써 황홀감에 몸을 비틀고 있고, 남성은 여성을 굳세게 껴안고 있다. 화가는 지나친 성적 충동을 과장하지 않고 두 사람 간의 사랑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이 그림은 남녀 간의 사랑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거나, 어느 특정한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연출된 사랑 행위를 그린 것은 아니며, 부부간의 사랑행위를 화가가 허락 없이 몰래 숨어서 들여다보고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에로틱 아트가 주인공들의 모습을 화려하게 그리고 주변에 수많은 장식을 통해 에로틱한 분위기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가정적인 평범한 침실의 서정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즉 부부간의 사랑행위를 다루는 그림에 있어서는 주위의 사물과 대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표현하는지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편의 페니실린 복용이 부인을 죽였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필자의 머리를 스쳐가는 것은 미궁에 빠질 뻔한 부부간의 사랑행위 사건이 떠오른다. 중년 부부가 사랑행위를 막 끝내는 순간 부인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부검하게 됐다. 성행위 도중 또는 직후에 사망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 원인이 몸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이 사건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원인이 따로 있은 기상천외한 사건이었기에 그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40세인 중년 부인 P씨는 남편과 동침 중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사망했다. 남녀가 동침 중 급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남자는 ‘복상사(腹上死)’, 여자는 ‘복하사(腹下死)’라 한다. 이른바 복상사의 사인은 주로 심장 병변, 특히 관상동맥경화증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복하사는 뇌동맥류를 지닌 사람이 성행위 중에 동맥류가 파열되어 뇌출혈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P부인도 뇌출혈이 아닌가 싶어 뇌혈관을 철저하게 검사했으나 별 이상이 없고, 그 외에도 사인이 될 만한 소견이 없어, 결국 부검을 통해서는 사인을 밝힐 수 없게 되었다. 단지 이상하다면 인두부(咽頭部)의 수종(水腫)과 울혈이 심해져 있는, 이른바 급사(急死) 때 보는 일반적 소견뿐으로, 이런 소견은 약물에 의한 과민성 쇼크 때 흔히 보는 소견 이외에는 특이한 소견은 없었다.
P부인의 소지품을 검사하던 수사관이 의사의 소견서 한 장을 들고 왔다. 그 소견서에는 ‘본인은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니 본인에게 페니실린은 절대로 투여하지 말라’는 경고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P부인의 남편에게 혹시 P부인이 요사이 병원에 간 적이 없는가, 또는 약국에서 약을 사 먹은 일이 없는지 등을 자세히 물었으나, 그런 사실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끝에, 자기 아내는 그러한 사실이 없으나 자기는 편도선염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으며 일주일째 치료받고 있는데, 병원에서는 주사도 맞았으며 약도 받았다고 했다.
남편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의 담당의사에게 남편에게 무슨 주사와 약물을 투여하였는지 조회하였더니 그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부인이 직접 페니실린을 투여받은 사실은 없으나 남편이 투여받아 몸속에 흡수된 페니실린이 동침 시 사정(射精)으로 부인의 질내(膣內)에 들어가 그것이 부인에게는 하나의 과민성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구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만일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사실을 몰랐더라면, 또 P부인이 페니실린에 과민한 특이체질이라는 의사의 소견서를 발견하지 못하였더라면 P부인의 사인은 영영 밝혀지지 못했늘 것이다. P부인의 사인은 페니실린 쇼크라는 감정서를 발부하자, 감정서를 받은 수사관이 전화로 여러 가지를 문의해왔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자, “페니실린이 그렇게 예민합니까?” 하며 혀를 찼다.
페니실린 투여 시 반드시 예비검사를
약품 중에서 정상인에게는 하등 이상한 반응이 없는데 일부 극소수 사람에게만 부작용이 일어나면 그 사람은 그 약품에 대한 특이체질이라고 한다. 의사나 약사가 가장 겁내는 것이 자기가 투여한 약품에 대하여 환자가 특이체질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약품에 대한 특이체질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아내는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적인 것이 페니실린이다. 즉, 페니실린에 의한 특이체질인 사람이 부작용을 일으키면 가벼운 경우에는 두드러기, 구갈, 두통 정도이나, 심한 경우 페니실린을 주사하고 주사바늘을 뽑자마자 과민성 쇼크가 유발되어 그대로 급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과민성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약품을 투여할 때는 반드시 문진(問診)을 해서 과거에 이런 약품을 투여받은 사실이 있는지, 그때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지났는지 등을 자세히 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상이 있었다는 환자에게는 페니실린을 투여하면 안 되며, 만일 주사로 투여할 때에는 예비검사를 반드시 실시할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예비 검사로서 음성을 보이던 사람도 과민성 반응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따라서 의사들 가운데는 애당초 페니실린 주사는 투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페니실린 쇼크사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 제일 먼저 검토되는 것이 문진 및 예비검사의 실시 여부다. 때로는 페니실린을 투여하기에 앞서 예비검사를 하기 위해 묽게 탄 페니실린 용액을 안 결막에 몇 방을 떨어뜨린 것이 그만 과민성 쇼크를 일으켜 사망하는 예도 있다. 이러한 것은 물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로 취급받게 된다.
그런데 임상에서 경험되는 페니실린 쇼크는 주사를 놓고 주사바늘을 뽑는 순간 환자가 꽝 하고 쓰러져 그대로 사망하게 되는데, 이때 보는 과민성 반응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전격성 반응’이라고도 한다. 페니실린 과민성 쇼크가 일어났을 때 보게 되는 상태와 유사한 모습으로 표현된 작품이 있어 소개한다.
영국의 화가 휴슬리(Johann Heinnrich Fussli, 1741~1825)가 그린 그림 <악몽>(1781)은 누가 보아도 오싹하는 느낌을 받는 그림이다. 한 여인이 침대에서 정신을 잃고 있다. 정신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쇼크 상태에 빠져 전신의 근육에서 힘이 빠져 이미 머리와 양팔은 침대에서 떨어져 있으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죽은 것 같다.
화가는 2년 전 한 여성에게 구애하였다가 거절당해 실패로 끝나게 되자 그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그린 것이라 한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정신을 잃고 졸도한 여인을 묘사한 것이다.
페니실린 쇼크에 빠지면 이런 상태로 졸도하여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먼저의 실레 화가의 그림과 뒤의 휴슬리의 그림을 연결하면 페니실린을 주사 맞은 남편이 페니실린 특이체질인 부인과 사랑의 행위로 사정하자마자 그대로 쇼크를 유발한 실상을 설명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실감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약물에 의한 과민성 부작용문제는 개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가족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인 과제라는 것을 부언하고 싶다.
문국진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