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힐링 라이프
안심항아리 안영미 대표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을 앞서나가기 바쁘기 마련이건만, 오히려 멈춰 서서 느리고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 ‘안심항아리’의 안영미 대표는 16년 넘게 운영해오던 IT 기업을 뒤로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경기도 연천에서 장 담그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장을 담그는 것은 물론 건강한 식재료로 먹거리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려 노력 중이다. 어머니가 전수한 전통의 맛을 현대로 연결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좋은 먹거리를 좋은 사람과 교류하며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심항아리의 안영미 대표는…
IT회사 (주)프로텔컴을 16년째 운영해온 사업가로 현재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2013년도에 ‘안심항아리’를 오픈했으며, 농작물과 장을 담그는 농장인 안심총농원은 경기도 연천에 있다.
자연에서 나는 음식은 건강지킴이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을 꼬박 달려 도착한 연천에는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공기와 바람이 있었다. 안영미 대표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기자를 맞이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어요. 요 앞에 애기똥풀이 활짝 피었던데, 꼭 소풍길 같지 않았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이른 점심부터 먹자고 한다.
그가 차려준 밥상은 건강과 정성이 가득했다. 안씨 가족이 직접 일군 논밭에서 난 쌀과 잡곡으로 밥을 짓고, 재래식 된장을 퍼다가 찌개를 끓여냈다. 재래식 된장찌개에선 구수한 냄새가 났고, 여린 부추로 만든 부추김치는 아삭한 맛이 살아있었다. 다이어트한다고 밥 반공기도 제대로 먹지 않는 여기자 두 명이 한 공기씩 뚝딱 해치웠으니, 맛은 두말할 필요 없다.
공기 좋은 곳에서 난 신선한 식재료는 건강한 밥상의 기본이 된다. 경기도 중앙 최북단에 있는 연천은 천혜 자연이 보존된 공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있어 이곳에서 나는 식재료들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연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안영미 대표는 거의 평생 연천에서 나는 먹거리와 함께했다. 매일 이런 밥상을 마주 하는 안영미 대표가 부러워졌다.
“건강하게 밥 먹으려면 첫째로 재료가 중요해요. 재료 다음에 손맛이 있고, 그리고 입맛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가 외부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 이 지역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다.
어머니 손맛 전수받아 재래식 장 담그기 시작
안영미 대표가 직접 장이며 김치며 각종 전통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30대 초반부터 IT 사업체 ‘프로텔컴’을 직접 운영해온 그는 어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김치 등 먹거리를 가져다 먹기만 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 없는데다, 어머니가 가진 전통의 맛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맘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법을 전수해 직접 담그는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재래식 장을 담그는 건 녹록지 않다.
그의 어머니는 안 대표가 지레 겁부터 먹을까 한 번에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장장 3년에 걸쳐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했다. 첫해는 그저 보조로서 보기만 하고, 어머니가 직접 장을 담갔다. 두 번째 해에는 어머니 옆에서 안 대표가 도왔다. 세 번째 해가 되어서야 안 대표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꼼꼼한 가르침 덕분에 이제 장 담그는 것은 자신 있단다.
그는 장 담글 때 들어가는 콩부터 직접 재배한다. 일렬로 늘어선 장독대 옆에는 밭이 있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밭을 일궈 정성껏 콩을 키워낸다. 콩뿐만 아니라 각종 농작물을 키운다. 여름엔 가지와 양파를 수확해 효소를 담근다. 효소를 담글 때 거르고 남은 찌개미는 고추장 만드는 데 재료로 쓰인다.
“장을 만드는 것은 사춘기 자녀를 돌보는 일과 같아요.”
사랑과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나친 관심을 자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햇볕이 너무 뜨거우면 항아리 뚜껑을 덮었다가, 다시 또 자연광을 쬘 수 있도록 투명한 뚜껑을 씌운다. 비가 오고 나면 얼룩진 항아리를 반들반들하게 닦아주기도 한다. 그렇게 그의 정성이 가득 담긴 된장을 맛보기 위해 항아리 뚜껑을 살짝 열었다. 묵은 장의 색깔은 시판되는 된장처럼 옅은 갈색이 아니라 더 짙은 갈색에, 끈기도 더 끈끈했다. 한 입 맛보자 약간의 신맛과 떫은맛이 어우러지며 깊은 맛이 났다.
나눔이 즐거운 ‘안심항아리’ 만들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리 진귀한 음식이라도 못 찾아 먹을 음식은 없다. 하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찾을 수 없는 맛이다.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하는 이가 어디 한둘일까. 안영미 대표는 전통의 맛을 이어내는 마음으로 먹거리 전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안심항아리가 탄생했다. 안심항아리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뜻과 가족끼리 나눠 먹는 마음으로 ‘안씨의 마음을 정성껏 담아낸다’는 뜻이다.
안심항아리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사업이 아니다. 전통의 맛을 간직한 좋은 먹거리를 사랑하는 이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이곳에서 먹거리를 판매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된장 한 통, 김치 한 포기를 그냥 팔지 않는다. 된장, 고추장, 간장등 항아리 한 통 단위로 지분을 주는 회원제로 운영한다. 장이 든 항아리는 안심항아리의 농장 안심총농원이 있는 연천에서 관리된다. 장이 잘 숙성되고 나면 먹을 만큼만 포장해 배달해준다. 주변 지인이나 다른 식구들과 나눠 먹는 것도 가능하다.
매달 제철 먹거리를 받아볼 수 있는 ‘줌 박스’도 있다. 무엇을 배송할지는 안 대표 마음이다. 쌀, 잡곡, 김치, 참깨, 볶은 소금, 말린 찻잎 등 다달이 달라진다. 여름에 부추가 자라면 여린 잎일 때 잘라서 싱싱한 부추김치를 절여 회원들에게 보낸다. 말린 찻잎을 보낼 때는 차의 효능과 어떻게 우려 마시는지 등을 일일이 손으로 적은 편지를 동봉한다.
장 담글 때부터 포장해서 배송하는 것까지 안영미 대표의 손이 가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도리어 기자에게 질문했다. 차를 고를 때 엔진이 좋은 것과 브레이크가 좋은 것 중에서 무얼 고르겠느냐는 것이다. 고민하는 사이 그는 답했다.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며 종횡무진했던 젊은 시절에는 당연히 엔진을 선택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있게 브레이크를 선택할래요.”
앞으로만 가는 것보다 천천히 느리게 가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산다는 것,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통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천천히 가는 삶을 선택한 그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성공을 바라보기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꿈을 그리고 있었다.
“향후에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전국의 손맛 지닌 어머니들을 모아, 그 맛을 전수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