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의학을 연 92세 문국진 박사의 ‘인생 이모작’

열정은 인생 2막을 춤추게한다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설멤버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의대 3학년 때 소나기를 피해 잠시 들른 헌책방에서 발견한 일본 법의학자 후루하타 다네모노가 쓴 《법의학 이야기》라는 책의 한 구절을 보고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법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990년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아직도 부검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부검의 대상이 사람에서 책이나 그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세계적인 문호나예술가의 사인과 작품을 의학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해석하는 ‘법의탐적학(法醫探跡學, Medicolegal Pursuitgraphy)’은 그가 세계 법의학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학문이다. 세계 유일의 법의탐적학자로서의 청춘을 보내고 있는 문국진 박사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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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박사

문국진 박사는…
의사이자 의사평론가다. 1925년생으로 호는 ‘도상’이며, 그의 호를 딴 ‘도상법의학상’이 제정했다. 올해 4회째 수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서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명예회장, 고려대 명예교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고려대 교수 학술상과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법의학 전문서적으로 《최신법의학》, 《고금무원록》 등이 있으며 교양서적으로 《새튼이와 지상아》 등 9권, 예술과 의학을 다룬 서적 《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등을 포함해 총 53권의 책을 출간했다.

 

문국진 박사의 자택에 들어서자 커다란 흉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90년 고려대 의대 교수 퇴임을 기념해 제자들이 만들어준 흉상이다. 훤칠한 키에 아직도 꼿꼿한 자세를 감탄하고 있던 차에, “내가 학생 시절에는 국가대표급 배구선수였다”며 사진기자의 무거운 장비를 손수 옮겨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대중에게 ‘법의학’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매스컴의 영향이 컸다고 봐요.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지만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CSI>라는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도 있고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고발프로그램이나 <싸인> 같은 법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영향이 컸습니다. 실제로 드라마가 히트한 해에는 법의학과 입학지원자가 많이 늘어나기도 했어요.

국내 최초의 법의학자십니다. 임상의로 남지 않고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도 일본의 헌책방에서 본 《법의학 이야기》의 서문이 생생합니다. ‘사람에게는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고문수사는 절대 안 되고 반드시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법의학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발달된 민주국가에서만 발달한다’는 글귀죠. 저는 지금도 이 구절을 떠올리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 있다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 그때까지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책을 사서 다 읽고는 법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당시에 유학을 떠나셨습니까?
아뇨. 당시에는 일본과 국교 수립이 안 되어 있어서 일본으로 가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책의 저자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죠. 홍콩에서 일본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친구의 형이 서신 왕래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편지를 보냈죠. 편지가 오가는 데 한 달씩 걸렸어요. 물론 후루와타 교수는 제 열의에 감동했는지, 친절하게 제 스승이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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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박사

스승의 응원을 받지 못해 많이 섭섭했겠어요.
네, 물론이죠. 서울대학이 경성제대 시절에는 법의학교실이 있었어요. 광복 후에 의학교육이 미국식으로 바뀌면서 법의학교실이 없어졌죠. 당시 우리나라 사찰단이 미국에 가보니 의대에 법의학교실이 없으니 귀국해서 없앤 거예요. 사실 미국은 국가 단위에서 법의학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거죠.

답답했어요. 일본으로 밀항할까도 생각했는데, 당시 의과대학장인 이제구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죠. 병리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사실 법의학을 위해서 왔다고 하니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교수님이 사흘 뒤에 연락이 왔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독립기관으로 발족하는데 법의관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법의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법의관에 대한 대우는 어땠습니까?
법의학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 검사들의 횡포는 정말 참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월급이 당시 돈으로 3000원 쌀 한 가마니 값이었거든요. 제 의대 동기들이 1만5000원을 받을 때니 생활이 궁핍했죠. 생활고 때문에 다시 외과의사를 하겠다고 장기려 박사를 찾아갔는데, 당신 말 듣지 않고 갔다며 안 받아주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한 우물을 5년을 팠으니 계속 파면 후회하지 않을 날이 올 거라고 하셨어요. 만일 그때 장 박사님이 저를 받아주셨으면 제가 법의학자의 길을 걷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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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박사

문국진 박사는…
의사이자 의사평론가다. 1925년생으로 호는 ‘도상’이며, 그의 호를 딴 ‘도상법의학상’이 제정했다. 올해 4회째 수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서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명예회장, 고려대 명예교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고려대 교수 학술상과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법의학 전문서적으로 《최신법의학》, 《고금무원록》 등이 있으며 교양서적으로 《새튼이와 지상아》 등 9권, 예술과 의학을 다룬 서적 《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등을 포함해 총 53권의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