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21개 코스 346km 완주기

제주올레를 따라 제주도를 세 바퀴 걸은 사람이 있다. 길을 걸으며 생기는 육체적 고통은 잠시, 자연이 주는 위로와 안식 그리고 제2의 인생이란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는 강보식 대표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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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0코스 송악산에서 바라본 제주 바다 전경. 올레길은 2007년 9월 1코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정규 21개 코스와 비정규 5개 코스를 모두 개장했다. 정규 코스를 모두 돌면 제주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순탄치 않은 제2의 인생
“절박했습니다.” 누군가 “제주올레를 왜 그렇게 걷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2011년 5월, 처음 제주올레를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걸었을 때(당시 올레의 제주 동북쪽 구간 약 4분의 1은 채 개설되지 않았다) 심정은 분명 그랬다.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많은 사람이 힐링하려고 ‘제주도 이민’ 내지 ‘제주도 한 달 살아보기’로 제주를 찾는다. 나 역시 2009년 말 간절히 바라던 제2의 인생을 아름답지만 낯선 땅 제주도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40년 넘게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던 몸은 제주도로 건너온 후 한두 해 동안 날씨와 사투를 벌이느라 고생이었다. 여름이면 습기 속을 걷고 있는 듯 허우적댔고, 겨울이면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무기력해졌다. 오직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만이 속절없이 타올랐다.

그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위해 나름의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제주 한 바퀴 돌아보기’. 새 삶의 터전으로 삼은 제주를 좀더 피부 깊숙이 느끼고 싶었다. 두 발로 직접 바다와 오름, 들판, 마을을 만나고 싶었다. 때가 된 것을 직감했다. 완주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욕을 충전하고, 여전히 준비되지 못한 몸을 이끌고 나섰다. 내가 사는 곳과 인접한 올레 10코스에서부터 제주 한 바퀴 돌기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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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옆 푸른 청보리밭은 17코스를 걷다보면 만난다. 파란 바다와는 또 다른 빛깔의 푸른 들판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인생에 한 번은 제주 걷기
첫 일주일은 제주도 남서쪽 끝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 제주시까지 걷는 일정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모질었다. 덕분에 매일 밤은 거의 죽을 정도의 고통이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 천근만근인 몸뚱이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고역밖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다. 태어나 처음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행군에 발바닥은 물집 투성이였다. 걸을 때마다 지옥을 맛보아야 했지만 며칠을 걷는다고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꾸려 넣은 배낭의 무게는 갈수록 무거워져 어깨는 무너져 내릴 듯 아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10일 정도 되자 뭔가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발과 어깨의 고통은 그대로였고, 매일 밤 숙소에서 기진맥진 지쳐 쓰러지기는 매한가지였지만, 희한하게도 다음날 신발끈을 동여매고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채 30분도 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제야 내가 걷는 제주올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로운 바다와 부드러운 오름, 푸른 들녘, 정겨운 마을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바닥만 보고 걷지 않고 길가의 풀과 이름 모를 꽃과 벌레, 새의 지저귐과 파도 소리, 바람소리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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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코스 지미봉에서 종달리로 내려가는 길. 제주의 밭과 바다 풍경이 그림 같다.

출발한 지 어느덧 2주. 나는 제주의 동쪽을 돌아 남쪽 방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제는 올레 위의 쓰레기도 줍고 길 위의 여행자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여유까지 생겼다. 몸도 마음도 걷기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내친 김에 내리 3주간 쉬지 않고 일정을 이어갔다.

마침내 도착점이자 출발점에 돌아왔다. 무기력했던 몸은 눈에 보일 정도로 건강해졌다. 어깨부터 허리, 배, 허벅지, 종아리까지 단단해졌다. 몸과 마음은 하나였다.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니 자유로움을 얻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제주올레 완주로 인해 내 삶이 바뀌리라고는. 몇 년 지난 2013년, 우연한 기회에 헬스조선의 ‘제주올레 완주걷기’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면서 제주올레를 두 번 더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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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을 일컫는 말. 사계절 푸른 들녘과 마을, 제주바다를 끼고 걷는 정겨운 길이다.

21개 코스, 저마다 색다른 매력
제주올레를 완주한 뒤로 코스 중 가장 좋은 길이 어디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길마다 색이 다르고, 저마다의 좋은 점이 다르다. 그래도 꼽자면, 전체 21개 코스 중 몇몇이 떠오른다.

제주올레를 만들 때 가장 좋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도 그렇다. 2007년 9월 처음으로 선보인 제주올레 1코스는 제주의 상징인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시작한다. ‘시흥리’는 제주가 시작되는 마을이란 뜻이다. 예부터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가 순찰할 때 여기서부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1코스로 선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셈이다. 1코스에서 걷기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말미오름과 알오름 위를 지난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이지만 가장 높은 곳에 서면 에베레스트 등정과 맞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옥빛 제주바다의 기막힌 절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코스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제주에서 손꼽히는 바다 절경이 몇 곳 있는데, 금호리조트 앞 산책길을 끼고 걷는 큰엉해안경승지도 그중 하나다. ‘엉’이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 그늘이나 굴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큰엉해안의 풍경은 올레꾼의 발목을 붙잡고 한참동안 놓아줄 줄 모른다. 하염없이 바라보면 마음속 짐도 스스르 바다에 잠겨 사라질 것만 같다. 7코스도 좋은데, 이곳을 가려면 시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단골 방문지라서 늘 붐빈다.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은 참이 낫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외돌개를 지나 돔베낭길에 이르는 이 길은 제주올레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손색없다. 길에 집중해 걸을 수 있는 힐링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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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코스 중 화순해수욕장에서 산방산 앞 용머리해안으로 올라오는 부근.

훌쩍 건너뛰어 마지막 코스인 21코스를 소개하고 싶다. 이 길은 ‘제주의 숨은 보물’ 하도해수욕장을 지나, 땅끝마을에 있다고 해서 ‘지미봉’이란 이름이 붙은 오름에 오르면 저 멀리 올레의 첫 출발지던 시흥리가 보인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올레코스의 종착지인 종달리 마을과 멀리 우도 풍광이 그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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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가 보이는 생이기정길을 지나 용수포구로 접어드는 올레 12코스 구간.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올레꾼에게 가장 적절한 위안과 격려라 해도 좋을 풍경이다. 사실 올레를 모두 돌면 제주를 한 바퀴 돌게 된다. 21코스는 마지막이지만, 첫 구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때문에 길이 끝났다는 서운함 대신 가슴속에는 새로운 여정을 꿈꾸는 희망이 자라는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중문해수욕장을 지나는 8코스와 산방산 앞에서 출발해 사계리해안과 송악산둘레길을 모두 걸을 수 있는 10코스, 가장 아름다운 제주 낙조를 볼 수 있는 수월봉에서 시작하는 12코스, 금릉해수욕장과 협재해수욕장을 끼고 걷는 14코스, 쪽빛바다의 함덕서우봉해변이 있는 19코스, 풍력발전단지의 바람개비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20코스 등을 내가 사랑하는 제주올레 10코스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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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를 지나는 7코스 중간중간 봄꽃이 만발했다.

올레꾼을 위한 조언
올레안내소에서 올레 패스포트와 가이드북을 구입해 자신의 기록을 남기면 좋다. 조랑말을 본떠 만든 인형을 배낭에 매달면 ‘올레꾼’으로 완벽한 변신을 할 수 있다. 처음 완주에 도전한다면,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단체로 참여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코스마다 한두 시간 정도는 단체로 어울려 걸으며 대화도 나누고, 서로 의지를 하다 오후에는 일행과 거리를 둬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식이다. 말하는 것을 멈추고, 맑은 제주의 공기를 깊이 호흡하며 걷기에 집중하다 보면, 바람과 파도 소리가 나를 사로잡는다. 뜨거웠던 머리가 맑아지고 답답했던 가슴이 녹아내린다. 그때 마음속으로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수고 많았어. 사랑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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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코스의 낙천리 의자마을을 걷고 있는 올레꾼들.

철저한 복장 준비는 필수! 그냥 평지길이라고 생각하고 얇은 양말에 운동화차림으로 오면 고생하기 십상이다. 하루 정도면 괜찮지만 최소한 3일 이상 연이어 걷는 일정이라면 두꺼운 등산 양말에 이왕이면 발목까지 받쳐주는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준비한다. 제주는 화산섬으로 곳곳에 바위와 돌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대신 발에 익숙하도록 신던 것을 신어야지, 새 신발을 길들이려고 생각했다간 물집으로 더 고생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를 배출하는 음식(인스턴트 식품)을 먹지 말자.

2016년이 밝았다. 오는 3월 네 번째 제주올레 완주를 앞두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제주에 내려왔을 때 첫 마음가짐을 되새길 작정이다. 이번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나의 삶은 또 어떤 길로 접어들게 될까. 잔잔한 기쁨과 설렘이 푸른 바다와 함께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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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면 19코스의 함덕 서우봉해변의 옥빛 제주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TIP. 헬스조선 ‘제주올레 완주 걷기’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매년 ‘힐링의 섬’ 제주에서 올레를 걸으며 심신을 힐링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3월 20일부터 4주에 걸쳐 ‘봄맞이 제주올레 완주걷기’를 진행한다.

제주올레가 조성된 지 10년째를 맞아 유채꽃과 벚꽃이 핀 올레를 따라 제주도를 완주하는 특별한 이벤트다. 총 21개 코스를 4구간으로 나눠 총 4차에 걸쳐 진행하는데, 모두 참여하면 제주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제주올레는 코스당 8~20km이며, 스태프가 동행하기 때문에 평소 운동을 꾸준히 했다면 중장년이라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원하는 차수만 선택해 참가할 수 있고, 2회 이상 연속으로 참가하면 각 회차 사이의 숙박을 제공한다. 전 차수 참가 시, 프리미엄 건강 매거진 《월간 헬스조선》 1년 구독권(11만7600원)과 헬스조선 비타투어 제주 프로그램 50% 할인권(1인 1회, 다음 여행부터 적용)을 증정한다.

문의 1544-1984 www.vitatour.co.kr (헬스조선 비타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