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와인 이야기
명화 <라 미에서> 속의 남과 여, 그리고 와인
깊고 짙은 레드 와인이 담긴 와인병과 잔 그리고 나이 프로 먹다 남은 음식이 놓인 테이블 앞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의 제목으로 그림 속 남녀의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 보스 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소장하고 있는 <라 미에서(At the Cafe La Mie)>로, 이 작품의 제목은 19세기 매춘부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 손님을 일컸던 속어를 옮겨왔습니다.
<라 미에서>는 세잔, 고갱, 반 고흐와 함께 후기 인상파의 대표 화가인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이하 툴루즈)의 작품입니다. 그의 이름 중 툴루즈와 로트레크는 각각 남프랑스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으로 그가 귀족의 일원으로 고귀하게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촌 관계이던 부모의 근친혼으로 인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그는 13세 때 오른쪽 대퇴골이 골절되고 다음해에는 왼쪽이 골절 되어 결국에는 다리 성장이 멈춥니다. 현대 의사들 역시 그의 병이 유전 질환의 일종이라고만 추측할 뿐 정 확한 병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남성으로서의 활동이 불가능하자 예술에 몰입하게 된 그는 작품을 통해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보헤미안(Bohemian)을 표현합니다.
와인은 병 모양으로 그 와인의 생산지와 와인의 스타일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병목에서 몸통까지 곡선을 이루는 모양의 와인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라 미에서> 에 그려진 와인같이 병목에서 몸통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각진 와인은 보르도 와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보르도는 불규칙한 날씨 때문에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e) 그리고 프티 베르도(Petit Verdot) 등 여러 가지 품종을 블랜딩해서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포도는 두꺼운 껍질의 품종들로 양조 중 침전물이 생성됩니다. 보르도 와인 병의 각진 어깨는 와인 따를 때 침전물이 잔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보르도는 도르도뉴(Doedogne)와 가론(Garonne), 그리고 그 두 강이 합해진 지롱드(Gironde) 삼각강(三角江)에 의해 세 개의 지역으로 나뉩니다. 가론과 지롱드의 서쪽을 좌안(왼쪽 언덕), 도르도뉴와 지롱드의 동쪽을 우안(오른쪽 언덕), 그리고 가론과 도르도뉴 사이를 ‘두 개의 바다 사이’라는 의미의 앙트르 두 메르 (Entre-Deux-Mers)라고 부르고 각각의 구역별로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됩니다. 프리미엄 드라이 레드 와인 산지인 좌안과 우안의 와인 한 병씩을 추천하겠습니다.
탄닌감에 허브 풍미가 감싸는 샤또 딸보
‘샤또 딸보(Chateau Talbot)’의 라벨에서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e)’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와인 상인들로 하여금 공식 보르도 포도주 분류법을 정리하게 합니다. 생줄리앙(Saint-Julien) 지역에서 뛰어난 떼루아를 가진 포도밭에 위치한 샤또 딸보는 1885년 그랑 크뤼 클 라쎄 4등급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리고 라벨에 ‘탤벗 장군이 1400년에서 1453년 사이에 소유했던 기옌(Guyenne) 지방에 위치한 오랜 영지’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프랑스식 발음인 딸보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와인 은 존 탤벗(John Talbot)이라는 영국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백년전쟁 당시 이곳에서 프랑스와 싸운 적장의 이름을 프랑스에서 기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탤벗 장군은 1449년 인질로 잡혔을 때 프랑스 왕에게 다시는 갑옷을 착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 후 그는 영국의 장군으로 군대를 지휘하지만 약속대로 직접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보르도 좌안 지역의 와인은, 풍미가 뛰어나고 탄틴이 강한 포도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을 주품종으로 만들 어집니다. 샤또 딸보 역시 까베르네 소비뇽을 주품종으로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과 프티 베르도가 블랜딩 됩니다. ‘샤또 딸보 2009’는 글라스에서 깊은 가넷(석 류석이라 불리는 보석)색을 보여줍니다. 코끝에서는 짙은 담배와 블랙 베리류의 검은 과일 향으로 시작해, 다양한 향신료를 거쳐 오크와 허브 풍미로 마무리됩니다. 입안에 머금자 잇몸 바깥쪽에서 탄탄한 탄닌감이 느껴집니다. 입안에서 역시 코에서 느껴졌던 풍미와 비슷한 담배와 검은 과일 그리고 약간의 허브 풍미가 혀를 감싸며 안정적인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부드럽고 다크 초콜릿 풍미 느껴지는 샤또 피쟉
‘샤또 피쟉(Chateau Figeac)’의 라벨에서는 ‘프리미어 그랑 크뤼 클라쎄(PREMIER GRAND CRU CLASSE)’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떼밀리옹(Saint- milion) 지역에서는 1955년에 공식적인 와인 등급 체계를 정비합니다. 1855년 공식 보르도 포도주 분류법은 지정된 이래로 현재까지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 그대로 통용되지만, 생떼밀리옹 포도주는 10년마다 재심사를 거쳐 재분류됩니다. 샤또 피쟉은 프리미어 그랑 크뤼 클라 쎄 B에 이름을 올립니다.
쌩떼밀리옹 지역에서는 서기 2세기부터 포도 재배가 시작됩니다. 1943년 마농쿠르(Manoncourt) 집안은 좋은 떼루아로 명성을 가지고 있던 3개의 자갈 언덕을 인수해 그 지역의 오래된 귀족 가문 중 하나인 ‘피작’ 을 그들의 와인 이름에 붙입니다. 그들은 ‘피작’을 설립한 후 전문 와인 양조가에게 관리를 맡겨오다가 띠에리 마농쿠르(Thierry Manoncourt)가 직접 와인 양조에 참여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블랜딩 비율을 완성합니다. 보통 우안에서는 와인에 부드러운 텍스쳐와 바디 감을 주는 메를로를 주품종으로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샤또 피쟉은 메를로 30%와 함께 카베르네 소비뇽 35%, 카베르네 프랑 35%가 블랜딩됩니다. ‘샤또 피 쟉 2009’는 ‘샤또 딸보’에 비하면 옅지만 중심부에서는 여전히 깊은 가넷색을, 그리고 주변부는 옅은 벽돌색을 가집니다. 잔 위로 짙은 보라색을 가진 제비꽃 향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기 시작해 버섯과 시거의 풍미가 뒤따릅니다. 입에 머금으면 우안의 와인답게 텍스처가 부드러우며, 제비꽃에서 시작해 감초와 다크 초콜릿의 풍미까지 더해져 입안이 호화스로워집니다.
서민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문화정보디자인학과 강사 겸 금 속공예작가로 개인전을 5회 개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금속공예와 주얼리를 전공했고 템플대학교 에서 CAD-CAM 학위를 받았다. 영국 와인전문교육기관 WSET를 수료한 와인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