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밀퍼드 트레킹 - ‘걷는 자들을 위한 천국’

하루 90명에게만 허락되는 밀퍼드 트레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영국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50선’ 중 하나,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될 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 밀퍼드 트랙을 검색해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들을 믿고 밀퍼드 트랙으로 떠났다. 기대와는 달리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모기의 습격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밀퍼드 트랙이 그립다. 4박5일 동안 보고, 느끼고, 체험한 그곳은 내게 엄청난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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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키논 패스 정상에 서있는 메모리얼 탑. 삼삼오오 모인 트레커들은 가이드가 나눠준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밀퍼드 트랙의 하이라이트를 만끽한다.
걷는 자들을 위한 천국, 밀퍼드 트랙
뉴질랜드 남섬 피오르드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밀퍼드 트랙은 자연 보호와 안전을 이유로 1년 중 6개월(11~4월) 동안만 개방한다. 하루에 단 90명(가이드 트레킹·Guided Walk 50명, 개별 트레킹·Independent Walk 40명)만 입장이 가능하고, 가장 걷기 좋은 시기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엔 전 세계 수많은 트레커의 경쟁이 치열하다. 최소 3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걷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밀퍼드 트레킹에 대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밀퍼드 트레킹은 비가 자주 내리고 핸드폰과 라디오가 터지지 않는 숲 속에서 4박5일 동안 53km를 걷는 일정이다. 걷는 동안은 이층침대가 있는 다인실 산장에서 숙박을 한다. 현지 가이드가 영어로 안내하며, 산행에 필요한 물품은 각자 배낭에 짊어지고 걷는데 짐을 아무리 줄인다 해도 무게가 기본 15kg 이상이다. 게다가 비라도 내리면 옷과 가방의 무게가 두 배로 무거워지고, 저체온증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맑은 날에도 샌드 플라이(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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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자연의 모습이 이랬을까? 오솔길을 따라 양치식물과 야생화가 지천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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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니콜라스 서크.
4년 전, 밀퍼드 트랙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접했을 때는 가선 안 될 곳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걷는 자들을 위한 천국’이라지만 감내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물론 산을 좋아하고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많은 산악 동호회나 등산 애호가들이 입산 허가와 무인 산장 예약만 하고 음식을 들고 다니며 자유롭게 걷는 ‘개별 트레킹’ 프로그램을 통해 밀퍼드 트랙을 완주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이번 여행 참가자들은 그런 불편을 감수할 만큼 열정적으로 산행하는 축은 아니었다. 밀퍼드 트랙을 걷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갈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전 일정이 영어로 진행되는 소통의 어려움, 산악전문 여행사를 쫓아다니기엔 부담스러운 체력, 큰 맘 먹고 신청해도 장담할 수 없는 여행사의 출발 일정, 가늠할 수 없는 난이도 등이 장애물이었다. 그런 이들을 위해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한국인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고, 여행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태프인 내가 함께하는 여행팀을 꾸렸다. 그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꿈을 꺼낼 수 있도록 약간의 배려를 더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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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퍼드 트레킹 중 첫날 머물게 되는 글레이드 하우스 산장.
22시간 만에 만난 글레이드 하우스
불편함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일행은 한국인 가이드가 한국어로 안내해주는 ‘가이드 트레킹’ 프로그램으로 참가했다. 가이드 트레킹은 4명의 가이드가 50명의 인원을 이끌며 걷는 동안 세심한 케어와 안내를 해준다. 4박5일 동안 머물 곳과 먹을 것까지 챙겨준다. 참가자는 산행에 필요한 옷과 장비만 들고 다니면 되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도 줄일 수 있어 걷기에 부담이 덜하다. 매일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깨끗한 산장과 무한정 제공되는 차와 쿠키, 하루면 뚝딱 마르는 세탁·건조실도 이용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인 가이드가 우리 팀을 전담으로 맡아줘 밀퍼드의 자연과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한국어로 듣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끼니마다 흰 쌀밥과 고추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눈물겹게 감사했다.
기대와 염려를 뒤로하고 긴 여정 끝에 밀퍼드 트랙에 입성했다. 22시간. 인천에서 밀퍼드 트랙 입구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인천에서 오클랜드까지 12시간, 오클랜드에서 퀸즈타운까지 3시간, 퀸즈타운에서 밀퍼드 트랙이 있는 테아나우 호수까지 버스로 5시간, 테아나우에서 밀퍼드 트랙의 시작점인 글레이드 워프까지 배로 2시간을 가서야 비로소 밀퍼드 트랙의 입구에 다다랐다. 바다를 건너, 버스와 배를 타고 꼬박 하루가 걸렸다. 지나고서야 하는 말이지만 밀퍼드를 걷는 것보다 밀퍼드까지 가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

밀퍼드 트랙의 첫 번째 산장인 글레이드 하우스에 짐을 풀고 가볍게 주변을 둘러봤다. 4일간 함께 걸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50명 중 한국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호주,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캐나다, 스페인,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었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함께여서 즐겁다는 분위기와 유쾌함이 산장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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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덜랜드 폭포 앞에서 만난 키아새. 앵무새과로 장난기가 많다
태초에 밀퍼드 트랙이 있었다
밀퍼드는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폭포와 나무, 이끼로 뒤덮인 곳이 많다.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란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원시림으로 빽빽이 둘러싸여 어둡거나 음침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뉴질랜드의 청명한 여름 햇살이 나무와 이끼로 뒤덮인 길을 밝혀주니 걷는 내내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군데군데 진입이 불가능해 우회로를 둔 곳이 눈에 띄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쓰러진 나무는 쓰러진 대로 의미가 있다. 눈사태와 홍수로 길이나 산장이 훼손되더라도 그 자체가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에 보수 공사를 안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대목에서 뉴질랜드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보존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반면 매끈한 나무 데크를 깔아놓은 우리나라 등산로가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다.

출발 전 많은 사람이 가장 걱정한 부분은 배낭의 무게였다. 걷는 동안 어깨로 쏠려 있는 배낭의 무게를 허리와 골반으로 분산되도록 가이드들이 배낭을 메는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이 때문에 86세 할아버지부터 11세 아이까지 모두 각자 배낭을 메고, 하루 6~7시간의 산행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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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커들은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에 발을 담그거나 수영을 하며 쉬어간다. 밀퍼드 트랙을 홍보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폭포다.
신이 내린 선물
3일 째 밀퍼드 트랙의 하이라이트인 맥키논 패스를 오르는 날이 밝았다. 초록 터널과 같은 숲길이 지루해질 때 쯤 하얗고 노란 야생화가 하나둘 마중을 나왔다. 야생화들의 환대를 받으며 지그재그로 된 길을 천천히 올랐다. 약간 힘에 부쳤는지 한동안 발아래만 보고 걸은 것 같다. 어느 순간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원시림으로 뒤덮인 클린턴 계곡과 흰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설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니콜라스 서크의 장관이 펼쳐진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맥키논 메모리얼 탑에 도착하니 아름다움은 이곳이 절정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 구름과 설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거울처럼 반사되는 산정 호수의 영롱한 물빛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조금만 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폭포의 향연이었다.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할 만큼 많은 수의 크고 작은 폭포 소리는 상쾌했다. 배낭의 무게는 어느새 사라졌고,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나는 이번 여행 참가자 중 최고령인 분과 함께 걸었다. “20년 전부터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생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잡혀 있던 심장 수술 날짜도 미루고 참가했다는 그는 걷는 데 부담이 될까 봐 짐도 거의 못 가져왔다고 했다. 후일담이지만, 여행을 끝마치고 일주일 뒤 그분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여행 전보다 건강해져 수술하지 않고 퇴원하게 됐다”며 “함께 걸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전화기 너머로도 반가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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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 올라 바라본 밀퍼드 사운드의 풍광. 남반구의 피오르드 중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꼽힌다.
고된 산행의 위로와 보상은,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풍광이다. 아무리 걷기 좋은 길이라도 어떤 순간과 마주하는 지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밀퍼드 트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이란 찬사가 결코 아깝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밀퍼드 트레킹이 힘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힘들고 불편하지만 그걸 감내할 만큼의 가치와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다시 한 번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TIP. 헬스조선 ‘뉴질랜드 밀퍼드 환상 트레킹’ 떠나볼까?
헬스조선은 걷기 여행자의 로망인 밀퍼드 트레킹과 루트번 트레킹을 엮은 ‘밀퍼드 환상 트레킹’을 진행한다. 가장 걷기 좋은 시즌인 12월부터 이듬해 1, 2월 사이 진행하며, 한국인 전문 가이드가 팀을 이끌고, 헬스조선 스태프가 동행한다. 밀퍼드 트랙은 지구상 가장 온전한 형태의 자연이 남아 있는 곳 중 하나로, 계곡의 물을 그대로 마셔도 될 정도다.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도착한 밀퍼드 사운드에서는 세계 3대 피오르드의 장관을 크루즈 위에서 감상한다. 루트번 트랙은 핵심 구간만 걷는다. 원주민이 옥을 나르기 위해 만들었다는 길에서 보석보다 귀한 알파인 지대의 초원과 강, 루트번 폭포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문의 헬스조선 비타투어 1544-1984, www.vitatou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