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힐링 여행
지구에서 가장 잘 보존된 뉴질랜드의 대자연은 가끔,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어느 낯선 별의 경치가 실제로 이럴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3월 중순, 전국에서 모인 14명의 여행자와 함께 이 외롭고 신비로운 나라로 떠났다.
지구 끝에 있는 나라, 뉴질랜드. 둥근 지구의 끝이라니…. 하지만 가본 사람은 이러한 표현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도 고립돼 있지만, 그보다 이 섬나라의 자연과 지형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헬스조선과 함께 ‘자전거로 떠나는 느린 여행’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뉴질랜드였다. 승용차나 버스가 아닌 자전거로, 때로는 두 발로 느리게 천천히 체험하고 여행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6개월이 넘는 기획과 현지 자전거여행 전문 운영업체와의 프로그램 조율을 마치고 14명의 모객 인원이 채워졌다.
드디어 떠나는 날, 멀리 경남 울산, 함안에서부터 전남 광주, 대구, 경기도, 서울에서 모인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인천공항에 집결했다. 체격과 옷차림, 심지어 억양도 다양했지만 14명 전원을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위해 기꺼이 지구 끝으로 떠나겠다는 의지가 얼굴 표정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뉴질랜드 자전거여행은 하루하루가 하이라이트였다
“키아 오라(Kia Ora, 영어와 함께 뉴질랜드의 공용어인 마오리어로 ‘안녕하세요’)!” 현지 가이드인 팀(Tim)이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전거여행 가이드 경력 30년이 넘는 50대 후반의 오리지널 ‘키위(Kiwi, 뉴질랜드인의 애칭)’다. 자전거여행을 위해 한국을 두 번 다녀간 후 소주와 한국음식에 푹 빠져있는 팀은 다른 외국인 자전거 여행 그룹을 마다하고 우리 그룹을 맡겠다고 자원했다.
첫날 첫 일정은 자전거 피팅이었다. 사전에 전달받은 팀원들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15대의 투어 전용 자전거가 준비돼 있었다(자전거 사이즈도 의류처럼 S, M, L, XL 등으로 분류된다). 최종적으로 안장과 핸들 높이 등을 타는 사람에게 맞게 조율하는 과정도 거쳤다.
다음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해글리(Hagley Park)’에서 약 10㎞ 테스트 라이딩이 이어졌다. 각자 새로운 자전거의 브레이크, 기어 등을 익히고 가이드의 안전규칙 강의를 들었다.
드디어 오랜 시간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오던 뉴질랜드 자전거여행 출발 준비가 완료됐다.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열흘 뒤 다시 이 ‘정원의 도시’로 귀환할 때까지의 시간은 팀원 모두에게 아쉬울 만큼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여정은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만큼, 두 발로 걷는 속도에 맞춰 느리게 흘러갔다. 중간에 자전거 라이딩이 어렵거나 위험한 구간은 전용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을 제외하곤 하루 평균 3시간(약 40㎞) 자전거로 여행하고 평균 2시간(약 9㎞) 트레킹을 했다.
그날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지나치기보다는 가는 길 주변의 대자연을 최대한 느리게 온몸으로 체험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귀국길에 한 참가자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없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하이라이트였다”라고 표현했다.
매일 새롭게 펼지는 풍광, 자전거와 트레킹에 익숙해져가는 온몸의 근육, 낯설지만 맛있는 다양한 음식, 라이딩을 무사히 마치고 서로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참가자, 하루 일정을 마치고 성취감을 느끼며 저녁식사와 함께 와인이나 맥주로 건배하는 기쁨…. 아름다운 추억은 혼자 체험하고 간직하면 외롭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 그 가치가 더 빛난다.
이번 ‘자전거로 떠나는 느린 여행.뉴질랜드·호주’의 세세한 내용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해, 사진을 중심으로 여행 일정과 상관없이 정리해봤다.
1. 테카포 운하, 푸카키 호수 그리고 마운트 쿡
호텔에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챙겨먹은 후 테카포 운하를 따라 비포장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린다. 숲과 구름, 산과 하늘이 모두 정지되어 있는한 곳. 우리는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뉴질랜드는 계절이 한국과 반대여서 3월이 초가을이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전 공기가 유난히 맑고 상큼하다. 때로는 앞뒤로, 때로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참가자들은 경치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살아온 인생을 공유하기도 한다.
하루 이틀 함께 자전거여행을 하다보면 서로의 실력과 체력 차이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잘 타는 사람은 조금 양보해서 속도를 늦추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욱 분발해서 함께 라이딩을 즐길 수 있게 한다. 두세 개 그룹으로 나뉘어 비슷한 수준의 참가자들 끼리 부담 없이 타기도 한다. 35㎞ 구간을 중간 쉬는 시간을 포함해 모든 참가자가 3시간 안에 마친다.
도착지는 빙하가 녹아 흘러 채워진 푸카키 호수. 두 명의 뉴질랜드인 가이드가 정성스레 준비한 싱싱한 연어회를 곁들인 점심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전용차량에 싣고 다니는 캠핑의자를 하나씩 펼치고 앉아 식사를 하는데 모두가 의외로 조용하다. 앞에 펼쳐진 독특한 청색의 푸카키 호수 풍경에 압도된 것인지 아니면 반주로 마신 뉴질랜드산 화이트와인 때문인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평화롭고 풍만한 점심식사 후 어쩌면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풍경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후 일정은 트레킹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아오라키 마운트 쿡 국립공원 내 후커밸리(Hooker Valley). 왕복 3시간 코스로 뉴질랜드 최고봉인 쿡산(해발 3754m)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의 계곡을 따라 걷는다.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오전에 이미 3시간가량 자전거를 탄 상태여서 약간 걱정이 됐다.
하지만 참가자 모두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전거로는 뒤처지는 참가자 몇 명이 이번엔 가장 앞장선다. 두 개의 구름다리를 건너고 후커 빙하 말단의 호수에 도착하기까지 행복한 산행이었다. 그 지역에서 1년에 몇 번 경험하기 힘든 화창한 가을 날씨는 행복감을 더해주었다.
2. 노천온천과 뉴질랜드 팜스테이
오전에 약 20㎞ 자전거 라이딩을 마치고 테카포호수가 내다보이는 노천온천에 몸을 담갔다. 참가자들은 각자 준비해온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남녀 혼탕에서 서로 마주하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곧 주변의 자연과 40℃에 가까운 온천물에 어색함은 사라졌다.
매일 자전거 타기와 트레킹으로 지친 근육을 풀었다. 수돗물이 세계 유명 생수보다 더 깨끗하다는 뉴질랜드의 따뜻한 온수 덕분에 온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이번 자전거여행을 기획하면서 팜스테이(Farm Stay) 일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해외여행 중에 현지인 가정에서 숙박하며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직접 체험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지만 언어 장벽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스트 가족과 진지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아니고 서로 눈을 마주하고 보디랭귀지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참가자들 중에 몇 명은 영어가 유창해 그 멤버들 중심으로 여섯, 여섯 그리고 세 명으로 나눠 서로 다른 마을에 있는 뉴질랜드 가정집 세 곳에서 하루를 숙박했다.
기대 이상으로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한 호스트 가족은 주인 남자가 양털깎기 전 세계챔피언으로 손님들에게 직접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또 다른 가정에서는 요리사 출신부부가 성대한 저녁식사를 대접했고, 내가 두 고객과 함께 묵은 가정집은 퇴역한 공군장교 부부의 100년 넘은 저택이었다. 대지가 5000평이 넘는데 기르는 양은 100마리. 그냥 재미로, 애완동물로 키운다고 한다.
3. 피오르드랜드와 밀퍼드 원더러 크루즈
뉴질랜드의 최대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피오르드랜드. 이곳은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뉴질랜드의 자연경관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공해에 취약한 이끼로 뒤덮인 고목 숲과 바위, 웅장한 절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폭포가 ‘과연 여기가 지구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용차량을 이용해 밀퍼드 사운드로 이동하면서 거울호수(Mirror Lakes) 등 경치가 뛰어난 지점에서 내려 짧은 트레킹을 즐긴다.
오후 4시 15분, 우리가 승선한 ‘밀퍼드 원더러(MilfordWanderer)’ 크루즈가 1박 2일 여정으로 출항한다. 객실인원 기준으로 최대 36명이 탈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의 배다. 참가자들은 각자 배정된 캐빈에 짐을 풀고 갑판으로 나와 청정자연 뉴질랜드의 숨은 보석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코발트빛 바다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 말보다는 침묵이 더 어울리는 시간이다.
4. 와키티푸 호수와 퀸스타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와키티푸 호수 주변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린다. 출발하기 전 더 이상 자전거 안장에 오를 일이 없다는 아쉬움을 안고단체 기념촬영을 한다. 차량도 아니고 비행기도 아닌 자전거로 ‘여왕의 도시’ 퀸스타운에 입성하는 길은 참 예쁘다. 호수 주변에 예쁜 집들도 보이고 자전거길 주변에는 다양한 식물과 숲이 있다.
8일 전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도시 분위기를 느낀다. 일단 양떼보다 사람 무리가 더 많이 보이고 상점과 식당이 즐비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삭막한 도시와는 달리 분위기가 차분하고 평화롭다. 행인들의 발걸음도 느린 것 같고, 주변의 호수와 산이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다. 참가자들은 자전거 라이딩 일정이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된 것을 자축하면서 한나절을 자유롭게 퀸스타운의 힐링 분위기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5. 호주 시드니와 블루마운틴
뉴질랜드로 가는 길에 들른 호주 시드니와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들른 블루마운틴은 이번 프로그램의 특별한 보너스였다. 인천공항을 떠나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다음날 아침 도착한 시드니. 화창한 가을날씨, 시드니 하버 유람선에서의 해물 점심뷔페, 간단한 시티투어는 이번 여행에서 만끽할 힐링의 시작이었다.
귀국길에는 짧지만 인상 깊은 블루마운틴 트레킹을 마치고 시드니 시내 야경투어를 즐겼다. “이틀만 더 머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라는 한 참가자의 푸념은 참가자 모두의 아쉬움을 대변하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최범석
자전거투어 전문 여행사 ‘바이크 오아시스’ 대표.
80여 개국을 여행한 자전거여행 전문가이자 여행 칼럼니스트다.
헬스조선과 뜻을 같이해 자전거와 트레킹을 접목한 ‘자전거로 떠나는 느린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