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불안정한 삶 속에서 예술적 감성을 꽃피운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그는 한평생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고뇌를 음악에 담아왔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에선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말러가 남긴 마지막 선물, 교향곡 제9번 D장조를 소개한다.

말러는 선천적인 심장질환과 불안정한 성장 배경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작곡가다. 그는 유년시절에 겪은 정신적인 긴장감,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절망감을 음악으로 표출시켰다. 어릴 적부터 11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들이 질병과 죽음으로 시달리는 것을 봤는데, 이들의 사망 원인은 성홍열(Scarlet Fever)과 그 합병증인 심장병이었다. 성홍열은 사슬알균 감염에 의해 인후통, 발열, 피부 발진을 만드는 급성 세균성 전염병이다. 치료가 가능하지만 시기가 늦어지면 류마티스성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말러도 잦은 인후염에 시달렸고, 결국 류마티스성 심장병과 감염성 심내막염으로 사망했다. 이런 불안정한 초기의 성장 배경은 말러의 삶과 음악에 팽배해 있는 정신적 긴장, 회의주의,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끊임없는 추구 등으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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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장병진
9라는 숫자를 두려워했던 말러

말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대지의 노래’를 교향곡으로 인정하고도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교향곡 작곡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9번이라는 숫자가 그에게 부담을 준 것이다. 평소 말러가 9라는 숫자에 대해 두려움을 있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쇤베르크는 말러를 의식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9번이라는 것은 하나의 한계로 보인다. 그 너머로 가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그 숫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마치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는 무엇이 10번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처럼 보인다. 9번을 쓴 사람은 내세에 이미 너무 가까이 서있는 셈이다.”

‘대지의 노래’에 9번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그는 곡을 만들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번호를 붙이든 붙이지 않든 말러는 이 곡이 자신의 마지막 곡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말러는 ‘대지의 노래’를 마치고 나서도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다음 교향곡에서 또 한 번 죽음을 준비해야만 했다. 결국 교향곡 제9번 속 놀라운 마지막 악장을 보고, 사람들은 말러가 정말 세상과 고별을 준비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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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의 DISCOGRAPHY)/01.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CBS, 1959) /02.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DG, 1979) /03.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82)

그가 사랑했던 예술과 삶, 음악에 대한 이별

생의 마지막 작품이 된 교향곡 제9번을 작곡할 때 말러의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활동적이었다. 빈 국립오페라의 감독 자리를 사직한 이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를 맡으면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분주한 생활과 관계없이 교향곡 제9번에는 이별과 죽음에 대한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말러는 이 곡을 “죽음이 내게 들려준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자필 악보에는 ‘아,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아, 사랑이여 떠나갔구나!’ ‘아, 세계여 이별을!’ 등의 글이 써있다. 지휘자 멩겔베르크는 ‘대지의 노래’가 친구에 대한 이별이라면 교향곡 제9번은 그가 사랑했던 예술과 삶, 음악에 대한 이별이라고 해석했다.



제1악장 Andante Comodo
봄의 아지랑이 같은 나른함을 주는 첼레스타의 살랑거림을 배경으로 제1악장이 시작한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장례행진은 악장의 마지막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팀파니가 장례행진 분위기를 잡아가고 이를 배경으로 트럼펫의 기상나팔과 종이 울리면서 말러 특유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제2악장 In Tempo Eines Gemachen

조금 서두르고 거칠어 ‘죽음의 무도’라고 하는 이 악장은 크게 세 가지 무곡으로 돼있다. 편안한 렌틀러 춤, 거친 왈츠 그리고 느린 렌틀러 춤곡이다. 마지막은 피아니시모로 끝나면서 ‘무도회는 끝났다. 인생의 유희는 끝났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3악장 Rondo-Burleske

이 악장의 제목은 ‘농담(Burlestke)’이지만 이는 역설적 표현 같다. 주제가 퉁명스럽고 거칠어 전반적으로 완고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제4악장 Adagio

중간의 웅변적인 클라이맥스 후에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로 끝난다. 이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대해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마지막에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숨어있는데 제1바이올린은 다음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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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
오재원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이자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국제이사.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키론오케스트라’ 지도교수이며, ‘오재원 교수의 오페라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한다. <의사신문>, 월간지 <휴플러스> 등에 클래식 얘기를 연재하면서 고전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음악 가이드 <필하모닉의 사계 1·2권> <한국의 알레르기 식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