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증권맨에서 바이오 벤처 대표로 변신 "NK세포 검사로 癌 발병 예측하는 키트 개발"

헬스&피플 ‘에이티젠’ 박상우 대표

국내 ‘바이오 연구’ 발전 위해 전직

간단히 피만 뽑아 암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검사법이 나왔다. 이 검사법을 개발한 ‘에이티젠’의 박상우 대표는 약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때 증권가에서 잘나가던 사람이다.

‘증권맨’이 어떤 이유로 암진단 키트까지 개발했을까? 박상우 대표는 증권맨으로 일할 때 늘 이런 의문을 가졌다. ‘국내 의료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바이오 연구 시장은 왜 이렇게 척박한 것일까?’ 그는 “우리의 뛰어난 기술이 거대 외국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해 국내 바이오 연구 시장을 살리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마음 속 깊이 품고 있던 꿈은 연세대의대 미생물학교실 김종선 교수를 만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박 대표는 김 교수를 통해 암 발병을 예측할 수 있는 세포가 있고,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면 암도 예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 대표는 가능성을 따져 보기도 전에 김 교수의 아이디어를 샀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 교수는 원치 않았지만 계약금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액수의 돈을 억지로 건넸다”고 했다.

‘엔케이뷰 키트’ 개발 위해 100회 넘게 자기 피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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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세포와 엔케이뷰(NK Vue) 키트
박 대표는 검사방법 개발 과정에서 자기 피를 100회 이상 뽑아야 했다. 실험을 하려면 혈액이 필요한데, 매번 혈액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자가 채혈(자기 피를 뽑는 것)을 해야 했다. 한쪽 팔에서만 100회 이상 채혈을 하는 바람에 혈관이 제 자리에서 이탈하는 후유증을 겪었다.

의사가 당분간 채혈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듣고 가족과 지인들이 채혈에 동참했다. 그런데 친지 중 한 명의 NK세포 활성도 수치가 10pg/mL(1조분의 1 g/mL)이 나왔다. 수치는 250pg/mL 이상이어야 건강한 상태며, 성인 평균 수치는 600pg/mL 안팎이다.

100pg/mL 미만이면 암 발병 및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은 상태다. 곧바로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게 한 결과, 피부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 대표는 “그 일이 있고 난 뒤 NK세포 활성도 검사가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매달 한 번씩 NK세포 활성도 검사를 받는다.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 활성도는 200~300pg/mL로 별로 높은 편은 아니었다. 암 발병 가족력이 있는 박 대표는 겁이 덜컥 났다. 곧바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담배를 끊고 체중을 8kg 줄였다. 요즘 박 대표의 NK세포 활성도는 700~1000pg/mL대를 유지한다.

NK세포와 엔케이뷰(NK Vue) 키트
우리 혈액 속에는 암세포를 보면 즉시 파괴하는 자연살해(NK)세포가 있다. 성인 기준으로 50억개가 넘는다. 이 중 1억 개 정도는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면서 암세포를 감시한다. 최근 ‘NK세포 활성도가 높으면 암이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면서, NK세포를 활용한 암 예측 검사법이 주목받고 있다.

NK세포 활성도란 우리 몸에 있는 NK세포가 ‘암세포를 발견해 잡아먹는’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수치로 측정한 것이다. 군인을 예로 들어 보자. 신체조건이 뛰어나고 잘 훈련받은 군인은 ‘일당백(一當百)’의 전투력을 발휘한다. 반면 체력이 달리거나 총 쏘는 기술이 부족한 군인은 전투가 벌어지면 백전백패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체력과 전투기술을 합한 게 ‘NK세포의 활성도’이다.

NK세포 활성도 검사는 원래 방사선 동위원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급이 어려웠지만, NK세포에서 분비되는 면역물질인 감마 인터페론을 이용해 활성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개발된 덕분에 검사가 간편해졌다.

엔케이뷰 키트를 통해 NK세포 활성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2012년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2014년 6월 보건복지부 신의료 기술로 인정받았다. 유럽연합, 캐나다에서도 안전성을 인증 받아, 2015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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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으로 큰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다. 이익이 생기는 대로 국내 바이오 연구에 재투자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세계 50개국에 특허 출원

엔케이뷰 진단 키트는 현재 세계 50여 개국에 특허 출원이 돼 있다. 국내 30여 개 대학병원과 건강검진센터도 이 진단법을 도입했다.

박 대표는 “미국은 물론 중국, 캐나다, 유럽 등에서 엔케이뷰 진단 키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은 식품의약국이 표적항암제 개발 시 진단제품을 요구하는 추세여서 NK세포 활성도 검사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티젠은 현재 미국 내 유명 병원들과 임상실험을 계획 중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유방암 표적치료제였던 허셉틴의 적응증을 위암으로 확대시키는 데 필요한 진단용 임상실험을 엔케이뷰 진단 키트로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은, 순수한 국내 바이오 기술을 세계에 수출할 수 있어 기쁘다”며 “사람을 살리는 국내 바이오 기업의 대표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