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베이트·성범죄 등 지금 현실에도 재현
필자는 1968년 의학기자 출신 소설가 정을병이 쓴 《유의촌》을 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의사와 일반인의 가장 중간자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다)들에게 읽게 한 후 감상문 90편을 받아 정리해 봤다. 《유의촌》은 당시 의료계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들을 소설 형식으로 고발하고, 의사들의 부도덕함에 일침을 가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가난한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 제약회사로부터 제공받는 리베이트, 환자에게 저질러지는 성범죄, 의사들의 권력 남용, 면허 대여 등 의료계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부정한 범죄들은 모두 다루고 있다.
50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재 국내 의료현실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한 편의 옛 소설로 치부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설문에 답한 학생 중 63.2%(응답자 57명 중 36명)가 소설 속의 부정한 의료 현실이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 의사 문제도 있지만 사회 문제도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이러한 의사의 부정행위들에 대해 사회 문제(64.4%)이기도 하지만, 의사 문제(35.6%)이 기도 하다고 말했다. 의사 문제라는 답변에서도 의사 개인의 문제라는 답변이 절반 이상(60.7%)이었다. 의사의 절대적인 집단성 문제라는 답변은 21.1%에 그쳤다. 사회 문제로 보는 시각에는 ‘의사를 바라보는 비의료인의 왜곡된 시각’과 ‘의료제도로 인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답이 주를 이뤘다.
◇ 당신은 ‘김평정’으로 살 수 있는가?
소설의 주인공 ‘김평정’은 부조리한 의료 현실에 맞서는 단 한 명의 양심과 소신을 지킨 의사다. 김평정의 활약상은 최근 메디컬드라마에 나오는 젊고 의협심 강한 주인공들의 활약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결국 다수의 부도덕한 의사들이 장악한 의료계에서 좌절하고, 현실에 굴복하게 된다.
실제 의사들은 김평정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일반인도 그렇다. 메디컬드라마의 좌충우돌 의협심 가득한 주인공이 항상 인기 배우 반열에 오르는 현실을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로망인 것 같다. 실제로 그들에게 ‘김평정처럼 살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속시원하게 말하는 사람이 드문 것을 보면 말이다.
이번 감상문 분석에서는 “앞으로 도덕적 규범과 이타적인 사고를 지닌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 학생이 37.8%였고, “도덕적 규범은 있으나 적당한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겠다”는 응답이 15.6%였다. 당연히 “도덕적 규범이 없는 이기적인 의사가 되겠다”는 응답은 전무했다. 희망적인 결과다. 이들이 정말 의료 현실에 뛰어들었을 때도 이런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를 위한 이익집단이 될 것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를 함께 생각하는 국민 속 의사 단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 인문학이 의사·환자를 살린다
이번 감상문 분석에서 학생들은 ‘의료계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탈피하기 위해 무엇을 노력해야 하겠느냐’에 대한 질문에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꼽았다. 인성교육 측면에서 보면 인문학만 한 것이 없다. 실제로 얼마 전 한 기관에서 갱생 의지가 없는 노숙자 결핵 환자들에게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시행한 결과, 큰 효과를 봤다고 보고한 자료를 봤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환자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그의 심리적인 변화와 자신의 심리적 변화를 동일시하면서 갱생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조리한 일을 저지르는 부정한 의사의 모습을 객관적인 독자 처지에서 바라보다 보면 자정(自淨)에 대한 의지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 이 글은 <문학과의학>지에 실렸던 '의학전문대학원생들이 바라본 의료계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 정을병의《유의촌》감상문 분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
황건
ㆍ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과장
ㆍ성형외과 전문의
ㆍ시인 수필가
ㆍ문학과 의학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