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한민국 보건의료 밑그림 그립니다”

통일이라고 하면 정치, 경제, 이념의 얘기로 들린다. 그런데 지난 9월 ‘통일보건의료학회’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단체가 창립됐다. 의료사회학, 의료인류학, 심리학, 의료행정, 보건행정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8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분야도 각기 다른 이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첫 이사장직을 맡은 전우택 교수를 만났다.

이미지
전우택 이사장

◇ 통일국가에 보건의료가 얼마나 중요한가

1999년 전우택 교수가 미국 하버드대 의대 난민건강센터 연구원으로 있을 때 일이다. 난민들의 정신건강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마케도니아 서부 지역의 코소보난민촌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코소보 난민촌에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과 세르비아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유혈 충돌사태를 피해 국경을 넘은 60만 명의 코소보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치안이었다. 외부로부터 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했다. 둘째는 의식주였다. 치안과 먹고 자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다 음 가장 많이 원하는 욕구는 무엇일까. 그때 사람들의 욕구가 가장 컸던 부분이 보건의료 문제 해결이었다. 전 교수는 “안정을 찾은 난민들이 그 다음에는 자신과 가족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 것처럼 한반도의 통일도 마찬가지”라며 “통일이 되면 당장 중요한 것은 전쟁이 없고 의식주가 해결되는지 여부겠지만, 남북한 통일이
궤도에 오르게 되면 북한에서 해결돼야 할 시급한 과제는 보건의료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통일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정치·경제·안보 등에 국한돼 있는데, 통일이라는 뚜껑이 열리는 순간 보건의료는 이들 못지 않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전 교수는 전망했다. 독일의 사례를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동독과 서독은 통일 15년 전인 1974년부터 ‘보건협정’을 맺어 보건의료 영역의 교류 및 의료지원 활동을 미리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 통일보건의료학회를 창립하다

전 교수는 통일보건의료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리고, 그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9월 통일보건의료학회를 창립했다. 전 교수는 이 학회가 그동안 흩어졌던 전문가들의 생각을 한 자리에 모아 공동으로 논의하는 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 교수는 “통일보건의료 영역에 있어 다양한 보건의료 사업이 많이 전개되고 있지만, 체계적인 연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사업이 없는 연구는 의미가 없고, 연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원하는 사업 역시 의미없이 사라질 수 있기에 학회에서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대북 보건의료사업을 펼치는 각종 단체를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 학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라며 “통일보건의료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연구를 시작하지 못한 이들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일보건의료학회는 앞으로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학술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 “북한사람 곁 똑같이 지키겠다”

정신과 전문의인 전우택 교수가 처음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정신상태를 분석하는 사회문화정신의학이라는 특수 분야를 전공하던 중,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인의 소개로 동갑내기 탈북자를 만나게 됐다. 전 교수는 “그와 대화하면서 ‘똑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도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며 “그 이후 북한의 문제 해결에 뛰어들어 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작 단계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탈북자를 연구하는 전문 인력이 많아졌으며, 탈북자에 대한 사회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전 교수는 “북한 사람도 우리와 똑같다. 통일시대에 북한 사람들이 아프다면, 우리가 남한 사람과 ‘똑같이’ 곁에 있어 줘야할 것이고 그들에 대한 관심도 마음속에 갖고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한국에서 의료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소명 중 하나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우택 이사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학교 의학교육학과 교수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