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통스러웠던 투병의 시기... 벗과 함께 기쁨의 합창을 부르다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9'Choral'D Minor Op.125

<참고이미지> 베토벤 '9번 교향곡'
<참고이미지> 베토벤 '9번 교향곡'

“아, 벗들이여, 이러한 가락이 아닌 더 쾌활하고 기쁨에 가득 찬 노래를 함께 부르자.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낙원의 처녀들이여! 우리 모두 황홀감에 도취해 빛이 가득한 성지로 들어가자. 엄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시킨다. 포옹하라! 만민들이여! 온 세상에 그대의 입맞춤을 전하라! 형제여, 별의 저 편에는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는 곳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베토벤이 곡을 붙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1793년 이전이었으나, 완성된 때는 30년 뒤 1823년 겨울이었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1817년, 베토벤은 런던 필하모닉협회로부터 교향곡을 의뢰받았다. 당시 교향곡에 성악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처음이자 새로운 시도였다. 4악장 서두에서 바리톤이 서창하는 ‘아, 벗들이여… 함께 부르자’라는 부분은 실러가 쓴 것이 아니고 베토벤이 직접 쓴 부분이다.

초연 당시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의 연주가 끝나 청중들의 박수가 울릴 때까지도 귀가 들리지 않아 지휘를 계속했고, 알토를 맡았던 독창자가 그를 돌려 세워 인사하게 했다. 그날 베토벤은 청중들에게서 다섯 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당시 황제 부부가 공연장에 입장할 때 세 번의 ‘기립박수’를 받던 통례에 비추어 볼 때, 귀족도 아닌 베토벤이 다섯 번의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있을 수 없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오재원의 추천 Discography
오재원의 추천 Discography 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지휘) 빈 필(EMI, 1951, 바이오이트실황) / ②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지휘) NBC심포니(RCA, 1952) / ③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DG, 1976) / ④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베를린 필(DG, 2001)

‘제9번 교향곡’은 베토벤 질병이 극에 달하던 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곡을 시작하던 1824년 황달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이무렵 베토벤은 모든 장기가 정상이 아니라고 편지에서 밝힌 바 있다. 정신과 전문의 메이가 쓴 <베토벤의 생애와 질병>을 보면 베토벤은 26세인 1796년경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고, 만성설사와 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고통을 받았다. 청력상실은 가장 널리 알려진 베토벤의 질병이지만, 아직까지도 논란이 있다. 젊을 때 청력을 상실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청력을 잃게 된 가장 유력한 원인 질병은 이석화증(중이에 비정상적으로 뼈가 자라나는 증상)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베토벤은 고주파 영역에서 청력장애를 호소했는데 이석화증의 일반적인 증상은 고주파 영역에서의 청력장애가 아니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그의 부검에서 위축된 제8번 뇌신경, 전정신경 등이 발견됐는데, 이는 파제트병(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와 수명이 다한 뼈를 청소하는 파골세포의 균형이 깨지면서 비정상적으로 뼈가 두꺼워져 신경조직을 압박하는 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제트병 때문에 두꺼워진 두개골이 청력과 관계된 8번 뇌신경을 위축시킨 것이다.

베토벤의 사인은 요한 바그너 박사의 부검결과 알코올 남용으로 인한 간기능부전이다. 알코올 남용에 의한 간경화와 함께 복수, 비장비대증, 췌장염이 있었다. 그 외의 원인으로는 납중독을 의심했는데 이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높은 농도의 납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납중독은 당시 매우 흔했는데, 와인을 담는 용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1824년 베토벤의 혀는 노랗게 변했고 자주 코피가 나고 토혈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간병변 합병증의 하나인 식도 정맥류 파열로 추정된다. 1825년에는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고 그 이듬해엔 류머티스 질환과 통풍을 앓았고, 다리에 부종이 생기고 복수가 차기 시작하더니 죽기 1년 전인 1826년부터 복수가 심해지면서 그해 12월 감기 후 폐렴을 앓고는 황달과 복수가 더 악화되었다. 1826년 12월 20일에는 복수를 뽑기 위해 복수를 빼내는 시술을 4회 시행했다. 그 후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1827년 3월 26일 사망했다. 베토벤의 죽음은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당시 빈의 인구가 29만 명이었는데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이 모였다.

[More Tip]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 합창’ 악장별 소개

제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규모가 상당히 크지만, 본질적인 구성은 아주 뚜렷하다. ‘전원’ 교향곡 같이 화성의 변화 속도는 아주 느린 경우가 많아서 그 음악에 웅장한 폭을 제공한다.

제2악장 Molto vivace
스케르초가 당돌하게 시작한다. 다섯째 마디에 등장하는 팀파니는 독창적인 발상이다. 불과 몇 초 안에 오케스트라 전체가 있는 힘을 다해 연주한다. 그러다가 돌연 눈부신 새로운 주제가 꽃피고, 잠시 느긋한 휴식이 찾아온다.

제3악장 Adagio molto a cantabile
정교하고 치밀해 베토벤의 가장 낭만적인 음악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 깊은 표현 기법은 말러의 음악을 예언한다. 여린 한숨처럼 시작돼, 제1주제까지 나아간 후 새 조성의 제2주제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뒤이어 멀리서 들리는 짧은 팡파르가 이 숭고한 악장이 지닌 엄청난 고요를 깨뜨리려고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제4악장 Finale Presto Allegro ma non troppo-Allegro Assai
이례적일 만큼 난폭한 메시지로 시작돼 조성이 위기를 맞는다. 오페라 주인공이 갑자기 무대에 등장하듯 낮은 현악기 음이 최초의 극적인 악구를 웅변조로 외쳐 댄다. 두 번째로 오케스트라의 울부짖음이 일어나고, 거기에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다시 응답 후 바로 베이스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베토벤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적합한 언어의 도입부로 극히 단순한 명령 형식을 선택했다. “아, 벗들이여, 이러한 가락이 아닌 더 쾌활하고 기쁨에 가득 찬 노래를 함께 부르자.” 모든 사람들은 형제여야 한다는 이상을 선언하면서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오재원 교수
오재원 교수

오재원 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국제이사.
한양대 의대 키론오케스트라 지도교수이며, ‘오재원 교수의 오페라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의사신문>, 월간지<휴플러스> 등에 클래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고전음악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음악 가이드 베스트셀러인 《필하모니아의 사계 1·2권》, 《한국의 알레르기 식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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