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수술의 시대 ‘촉진(觸診)’ 정보는 어떻게 얻을까
촉감이란 외부의 자극이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느낌인데, 사람의 오감(五感) 중 최고의 ‘다기능 감각’이다. 사물의 부드럽고 딱딱한 정도는 물론이고 성질과 모양새까지 맞출 수 있는 매우 예민한 감각이다. 사물의 객관적인 판단을 넘어서 행복한 느낌, 성적인 자극, 불쾌한 간섭 등을 두루 느끼게 하는 오묘한 감각이다. 온갖 첨단 의료장비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돕고 있지만, 의사는 이처럼 복잡 오묘한 촉감을 활용해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아낸다.
복통 수술 여부 진단엔 의사 손바닥이 기본
촉진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신체 부위는 복부다. 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의사는 우선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지 내과적 치료를 받아야 되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를 알아보는데 복부 촉진이 필수다. 복부 경직도를 확인하고 배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가 재빨리 뗄 때 발생하는 반발통이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복통과 함께 배가 딱딱하게 경직돼 있고, 배를 눌렀다가 뗄 때 통증이 발생하면 복막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누군가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들이닥치면 아무리 급해도 의사는 복부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영상검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배를 눌러 본다. 소화기 중에서는 간·비장·신장 등이 주요한 촉진 대상인데, 신장은 의사가 왼손 손바닥을 신장 부위에 대고 오른손 주먹으로 왼손 등을 쳤을때 환자가 통증을 느끼면 신장에 염증이 있는 것이다.
촉진은 흉부외과에서도 유용하게 이용한다. 사람의 가슴은 딱딱한 갈비뼈가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진단을 위한 촉진은 별로 쓸데가 없다. 흉부외과 의사의 촉감은 진단보다 응급치료 과정에서 중요하다.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할 때 의사의 손끝 느낌은 환자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다. 심폐소생술 상황에서 의사는 심장을 가능한 세게 눌러서 심장 운동을 되살려내야 하는데, 이 와중에도 환자의 갈비뼈 손상은 최소화하는 수준으로 압박 강도를 유지해 야 한다. 의사들은 실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적절한 심폐소생술 압박 강도를 교육받는다.
하지만 일반인이 급성심근경색 등으로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심폐소생술 할 때는 이런 고민을 하면 안 된다. 그저 ‘갈비뼈야 부러져라’ 최대한 세게 눌러야 한다. 일반인이 누르는 정도의 강도로는 갈비뼈가 심각하게 손상되지 않는다.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어설프게 누르면 멈춘 심장이 되살아날 수 없다.
환자 인권 강조되면서 촉진보다 CT·MRI로
최근 환자의 인권보호가 중요시 되면서, 의사들은 되도록 이성(異性) 환자에겐 촉진을 덜 하려고 한다. 불필요한 오해와 분쟁에 휩쓸리지 않게 방어 진료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촉진으로 진단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환자 상태가 급하지 않다면 컴퓨터단층촬영(CT)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검사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남성 의사는 여성 환자의 유방암을 촉진할 때가 가장 조심스럽다. 의사로서 진찰할 뿐인데, 환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방암이 의심되는 여성 모두에게 촉진을 생략하고 전부 초음파나 맘모그램부터 찍으라고 할 수 없다. 유방암 전문의들은 “간호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환부노출을 최소화하고, 민감한 부위를 피해서 세 손가락 끝에 암 조직이 느껴지는지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며 촉진하기 때문에 환자가 오해할 만한 느낌은 아예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유방암 조기진단을 위해 여성 스스로 매달 한 번씩 유방 촉진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자가 촉진을 해도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정상 유선이 평소보다 조금 크게 느껴지면 “없던 멍울이 생겼다”며 지레 겁먹고 병원에 달려오는 여성도 있다. 의사가 아닌 일반 여성이 자가 촉진으로 유방암 여부를 정확히 진단할 수는 없다. 일반 여성에게 자가 검진을 권고하는 것은 암을 찾아내라는 것이 아니라, 지난달과 다른 변화가 느껴지면 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진찰을 받으라는 뜻이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여성에게 많은 갑상선암 촉진도 민감한 이슈다. 갑상선암은 국내에서 과잉진단, 과잉수술논란이 이어지면서 의료계 일부에서“증상이 있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갑상선암만 치료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굳이 초음파검사를 해서 미세한 갑상선암까지 들춰내 수술을 유도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갑상선암 전문의들은 촉진으론 한계가 있다고 반박한다.
갑상선 종양은 위치와 크기, 환자의 목두께,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촉감의 정도가 달라지며, 의사 촉진만으로는 평균적으로1cm 이상 자란 갑상선 종양의 절반도 찾기 어려우니, 필요한 경우 초음파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암이 아닌 정상적인 인체 구조물은 대부분 의사의 촉진만으로 걸러진다. 갑상선 근처의 정상 연골을 만져 보고 ‘암이 아닐까’ 걱정하며 병원에 달려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 초음파검사까지 할 필요 없이 촉진 경험이 많은 갑상선 전문의가 만져 보면 바로 감별할 수 있다.
로봇수술 100% 시대 오면 촉감정보 어떻게 얻나?
외과 의사는 진단보다 수술할 때 촉감을 많이 활용한다. 집도의는 수술하는 동안 환부 상태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메스와 집게를 잡은 양손의 감각으로 체크한다. 자신이 자르고 꿰매는 환부의 조직이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봉합사를 적당한 강도로 잡아당겨서 단단히 묶고 있는지 등을 느껴야 한다. 피부를째고 환부에 손을 놓고 집도하는 전통적인 수술(개복.개흉 수술)을 할 때 이런 정보가 양 손에 직접 전달된다.
그런데 내시경수술이나 로봇수술을 하면 ‘촉감정보’가 제한된다. 내시경 수술할 때는 의사의 손이 환자 몸 바깥에 있더라도 수술용 집게나 가위를 손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이나마 촉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에게서 멀리 떨어진 로봇 조종석에 앉아 ‘원격 집도’하는 로봇 수술할 때는 그마저 못 느낀다. 로봇 팔이 수술 부위를 얼마나 강하게 잡아당기는지, 환부가 딱딱하게 부었는지 물렁거리는지 등의 촉감정보를 모니터에 뜨는 시각정보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물론 노련한 의사는 손으로 수술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도하기 때문에 시각정보만 있어도 내시경이나 로봇 수술에 무리가 없다. 내시경수술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보편화됐고, 로봇수술은 2000년대 중반에서야 국내 처음 소개됐다.
그 이전에는 모든 수술을 직접 피부를 째고 진행했기 때문에, 요즘 의사들은 수술 시 촉감 정보가 충분히 있다. 만약 미래 어느 날 개복수술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수술을 내시경이나 로봇으로 하는 시대가 온다면, 집도의는 수술 부위의 촉감정보를 어떻게 얻어야 할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환자 인권 문제 때문에 촉진이 많이 사라졌지만, 촉진만큼 복잡오묘하고 예민한 감각도 없다. 내시경이나 로봇으로 수술을 대신하는 요즘 시대에 촉감정보를 의사가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6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