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도 박세리도 걸린 멘털블록

골프 스윙을 할 때 동반자가 갑자기 기침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실수가 잦은 사람을 두고 ‘멘털(정신력)이 약하다’고 한다. 반대로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좋은 스윙을 하는 골퍼라면 ‘멘털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골프장에서 골프를 관람하는 갤러리들은 선수들의 집중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 숨 죽여야 한다.

골프는 ‘멘털(Mental)게임’이다. ‘심리 7할, 기술 3할’이라고 할 정도로 멘털은 골프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세계적인 프로골퍼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그레그 노먼도 멘털로 인해 웃고 울었다. 국내 프로골퍼 최경주, 박세리, 박인비도 예외가 아니다.
‘멘털블록(Mental Block)’이란, 부정적인 감정의 틀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골프는 매우 섬세하고 다양한 상황에 민감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골프 선수는 누구나 멘털블록에 걸릴 수 있고, 한번 걸리면 긴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누가 빨리 빠져나오느냐에 따라 뛰어난 선수인지 아닌지 갈린다.

2009년 11월, 우즈는 아내 엘린 노르데그린에게 불륜이 발각된 뒤 성적이 급락했다. 세계 언론과 팬의 지탄을 받은 우즈는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그는 결국 이혼했고, 2010년 대회에 다시 출전하지만 컷오프를 거듭했다. 2010년 브리지스톤인비테이셔널에서는 18오버파(72위)의 초라한 성적을 보였다. 스윙, 체력, 기술에 아무 문제 없는데도 우즈의 슬럼프는 이어졌다. 오랜기간 반성과 치료를 거쳐 4년 만에 첫 승을 거둔 뒤에야 우즈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7개 대회에서 4승을 거뒀다. 결국 멘털이 문제였다.

세계적인 프로골퍼 커티스 스트레인지는 한 동안 한 골프장의 17번 홀에서 비슷한 상황을 맞았는데, 한 번은 우승했고 한 번은 실패했다. 팀 대항전에서는 세컨드 샷을 보기 좋게 그린에 올려 버디를 기록한 반면, 우승을 앞둔 투어대회에서는 세컨드 샷을 해저드로 날려 우승컵을 내줬다. 팀 대항전에서는 ‘팀을 위해 최고의 샷’만 생각한 반면, 투어대회에서는 ‘미스 샷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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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국내에서는 이종임이 멘탈블록을 겪은 대표적인 여자 프로골퍼다. 이종임은 아마추어 시절 랭킹 1위의 국가대표 선수로, 드라이버 샷 평균 거리가 250야드로 국내 최장타자였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단체 금메달, 개인 은메달을 딴 준비된 대형급 선수였다. 그런데 이종임은 1m 이내 거리의 퍼트에는 유독 울렁증이 심했다.

그녀도 이유를 몰랐다. 너무 고통스러워 골프를 포기하려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도피하듯 일본으로 갔지만 퍼터 ‘입스현상(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한 불안한 상태)’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박세리 역시 2004년 미국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뒤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언론과 팬들은 “배가 불러서 그렇다”, “이제 한물 갔다”며 비난도 했다. 2005년엔 상금 순위 99위까지 밀려났다. 그녀의 슬럼프 역시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됐다. 드라이버 샷에 이어 퍼팅까지 붕괴됐고,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박세리는 나중에서야 휴식과 충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 그녀는 완전 방전 상태였다.

정점을 찍고 나면 묘하게도 선수들 대부분이 슬럼프를 겪고, 멘탈블록에 걸려든다. 아니카 소렌스탐의 전성기는 박세리에 의해 점령당했다. 박세리 역시 캐리웹에게 정상을 내주었고, 캐리 웹은 또 로레나 오초아에게 점령당했다. 영원할 것 같은 오초아 역시 무서운 기세의 청야니에게 정상을 내줬다. 2012년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거둔 청야니는 2013년 메이저 3개 대회를 석권하며 나타난 박인비에게 정상을 내줬다.

프로 선수가 이럴진대 아마추어 골퍼는 더 심하지 않겠는가.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몇 배 더 멘털의 영향을 받는다. 스스로 징크스를 만들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스코어를 망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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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팅은 골프 심리의 정점에 있다. '안 들어가면 어쩌나‘ 생각하면 숏 퍼팅도 반드시 놓친다.(사진=헬스조선DB)
누구에게나 멘털 위기는 오는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분명한 것은 긍정적이고 좀더 집중하는 사람이 위기에서 빨리 벗어난다는 사실이다.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팀 뉴욕 양키즈에서 방출된 직후 이런 글을 올렸다.

‘시련이 많다는 것은 운이 좋은 일이다. 시련은 성장의 기회이며 행복은 성장의 대가이다.’ 그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최초, 최다승인 124승이란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와 해답은 내 정신 안에 있다.

2006년 우즈는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 퍼트를 하고 아내의 품에 안겨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불과 2개월 전에 그의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 얼 우즈가 세상을 뜬 뒤 반드시 우승컵을 아버지에게 바치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만들어 낸 값진 우승이었다. 크리스 디마르코(미국)도 브리티시오픈 출전 직전 어머니를 여의고 대회에 나와 우즈에 이어 준우승을 거둔 바 있다. 현재 일본투어에서 활동 중인 허석호 역시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일 때 오히려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우승컵을 더 많이 들어 올렸다.

4급 지체장애가 있는 최호성은 2008년 하나투어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두고 이후 2승을 더했다. 최호성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첫 마디가 없다. 다른 선수보다 불리한 신체 조건이지만 강한 정신력을 발휘했다. 이스라엘 시각장애 아마추어 골퍼 조하르 샤론은 2005년 홀인원을 기록한 뒤 “지구상에서 밤에 나보다 더 골프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생각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고 했다. 한 팔로 그림을 그리고 골프를 치는 박철홍 화백은 80대 중반 스코어를 낸다. 자신의 핸디캡을 끝없는 노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상쇄시켜 비장애인보다 나은 실력을 보여 준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해도 멘털이 붕괴되면 골프는 끝이다. 일본 도쿄대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는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를 다루는 태도에 있다”고 했다. 많은 노력과 연습이 있어도 마인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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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교육학자들은 무엇을 가르칠 때 ‘그것은 잘못이다’, ‘그런 것은 하지 말라’ 등의 언어를 쓰면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헤드업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말은 오히려 헤드업을 불러일으킬 확률이 더 높다. 차라리 ‘헤드업 하지 말라’보다는 ‘머리를 고정하면 좋다’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미스 샷을 날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최고의 샷을 날리겠다’는 생각을 스위치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볼 수 있다.

골프를 잘 치려면 우선 기본(스윙, 체력)에 충실하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20세기 골프는 장비 발전과 기술의 결과라면 21세기 골프는 멘털이라고 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집중력과 절실함을 뛰어넘는 ‘즐기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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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이종현
레저신문 편집국장으로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시인이다. 골프・여행 칼럼니스트다. 《골프장으로 간 밀레와 헤르만 헤세》, 《시가 있는 골프》 등 저술.